메이저리그에서 1970년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은 빅 레드머신이다. [빅 레드머신]은 프로팀의 원조인 신시네티 레즈의 유니폼이 붉은 색인 점과 말도 안되는 강력한 타선을 빗대어서 나타낸 말이다. 타이 콥의 통산 최다 안타를 돌파한 피트 로즈와 역대 최고의 포수인 자니 벤치, 공수를 겸비한 최고의 2루수인 조 모건, 토니 페레스, 켄 그리피 Sr., 조지 포스터 등이 빅 레드머신의 멤버였다. 흔히들 빅 레드머신이라고 하면 막강한 타력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기동력과 수비력 등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보였다. 공수주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가장 이상적인 팀이 빅 레드머신이 활약한 1970년대의 신시네티 레즈였다.
입단 동기인 피트 로즈와 토니 페레즈에 메이저리그 역대 최강의 포수로 평가받고 있는 자니 벤치가 1968년에 본격적으로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를 잡으면서 빅 레드 머신은 구축되기 시작했다. 1970년에는 베네수엘라가 배출한 명 유격수 중의 한 명인 데이브 콘셉시온이 정착하였고, 또한 결정적으로 빅 레드 머신의 선장격인 스파키 앤더슨이 지휘봉을 잡았다. 필리스에서 1959년 단 한 해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무명의 선수에 불과했던 스파키 앤더슨은 1978년까지 9년간 신시네티 레즈의 감독을 역임하면서 2번이나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후에, 1984년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챔피언의 자리에 등극시키면서 양대리그에서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1970년대를 빨갛게 달군 빅 레드 머신
1970년에 신시네티 레즈는 9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황금시대를 맞이한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71년에는 리그 5위로 추락했지만, 트레이드로 조지 포스터를 자이언츠에서 영입하였다. 1972년에는 또 다른 부속품들인 조 모건과 세자르 제로니모를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레즈는 2년만에 지구 수위에 복귀하였고, 리그 챔피언 쉽에서는 혈전 끝에 피츠버그 파이러츠를 3승 2패로 물리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였다. 1972년의 월드시리즈는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7차전까지 가는 혈전 속에서 6경기가 1점차 승부로 끝났을 정도로, 지금도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벼랑 끝에서 만난 7차전에서 1 : 1이던 6회초에 어슬레틱스가 구원 투수인 페드로 보본 Sr.의 난조를 틈타서 2득점하면서 동점의 균형을 깼고, 결국 8회에 1점을 만회하는데 그친 레즈를 따돌리고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아깝게 월드시리즈 챔피언 자리에 등극하기 일보 직전에 실패한 레즈는 1973년에도 지구 수위를 차지하였지만, 리그 챔피언 쉽에서는 뉴욕 메츠에게 덜미를 잡히는 불운에 울었다. 1974년에는 다저스에게 밀리면서 지구 2위에 머문 레즈는 1975년에는 빅 레드 머신의 마지막 부속품인 켄 그리피 Sr.가 가세하였고, 레즈는 구단 역대 최다승인 108승과 함께 35년 만에 월드시리즈를 제패하였다. 1975년에도 102승을 거둔 레즈는 양키스를 제압하고 월드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였다.
또한, 1970년 이후로 각종 타자 부분 개인 타이틀은 빅 레드 머신의 독차지였다. 1968년부터 1977년까지 10년 연속 포수부분 골드글러브를 독점한 자니 벤치가 2번의 홈런왕과 3번의 타점왕, 그리고 리그 MVP를 2회 수상하였고,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최다안타를 기록한 피트 로즈는 각각 1번의 골드글러브와 타격왕, 리그 MVP를 차지하였다. 또한, 1973년부터 5년 연속으로 2루수부분 골드글러브를 낀 조 모건도 리그 MVP를 2번이나 수상하였고, 조지 포스터 역시 2번의 홈런왕과 3번의 타점왕, 그리고 리그 MVP를 한 번 수상하였다. 게다가, 데이브 콘셉시온과 세자르 제로니모 등도 각각 5번과 4번 골드글러브의 주인공이었다. 결국, 1970년부터 1979년까지 10번의 리그 MVP 중에서 빅 레드 머신이 총 6회를 차지하였다.
| - | 1975 | R | H | HR | RBI | BA | OBP | SLG | 1976 | R | H | HR | RBI | BA | OBP | SLG |
| 1 | P. Rose | 112 | 210 | 7 | 74 | .317 | .406 | .432 | P. Rose | 130 | 215 | 10 | 63 | .323 | .404 | .450 |
| 2 | K. Griffey Sr. | 95 | 141 | 4 | 46 | .305 | .391 | .402 | K. Griffey Sr. | 111 | 189 | 6 | 74 | .336 | .401 | .450 |
| 3 | J. Morgan | 107 | 163 | 17 | 94 | .327 | .466 | .508 | J. Morgan | 113 | 151 | 27 | 111 | .320 | .444 | .576 |
| 4 | J. Bench | 83 | 150 | 28 | 110 | .283 | .359 | .519 | G. Foster | 86 | 172 | 29 | 121 | .306 | .364 | .530 |
| 5 | T. Perez | 74 | 144 | 20 | 109 | .282 | .350 | .466 | J. Bench | 62 | 109 | 16 | 74 | .234 | .348 | .394 |
| 6 | G. Foster | 71 | 139 | 23 | 78 | .300 | .356 | .518 | T. Perez | 77 | 137 | 19 | 91 | .260 | .328 | .452 |
| 7 | C. Geronimo | 69 | 129 | 6 | 53 | .257 | .327 | .363 | C. Geronimo | 59 | 149 | 2 | 49 | .307 | .382 | .414 |
| 8 | D. Concepcion | 95 | 141 | 4 | 46 | .305 | .391 | .402 | D. Concepcion | 74 | 162 | 9 | 69 | .281 | .335 | .401 |
빅 레드 머신이 완성된 1975년과 1976년의 타순과 성적을 보면 왜 사람들이 그들을 [빅 레드 머신]이라고 불렀는지를, 또한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번부터 8번까지 쉴 곳이라고는 단 한 곳도 없는 상대 투수들에게는 엄청난 두통을 준 역대 최강의 라인업이었다. 게다가, 이 선수들이 FA 영입이 아닌 드래프트와 트레이드라는 자체적인 수단만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더 커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빅 레드 머신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선수는 자니 벤치나 조 모건, 조지 포스터 등이 아닌 야구계에서 추방된 피트 로즈였다. 원래 2루수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피트 로즈는 팀 사정으로 1967년에는 외야로 컨버트하였고, 켄 그리피 Sr.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1975년에는 다시 3루수로 포지션을 이동하였다. 선수가 자신의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게다가 이미 박힌 돌로 스타플레이어였던 자신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한 그의 희생 정신이 없었다면 빅 레드 머신의 완성 또한 없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은 빅 레드 머신이라는 이미지로 인해서 이 당시의 레즈가 오로지 타선만이 강한 팀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투수진 역시 투수왕국이던 LA 다저스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특급 에이스는 없었지만, 잭 빌링햄, 개리 놀란, 프레드 노먼, 돈 굴렛 등 선발진은 1975년과 1976년에 2년 연속으로 6명이 10승 이상을 거두는 안정감을 보였다. 또한, 선발진 이상으로 강력한 포스를 보인 것은 불펜진이었다. 마무리 투수인 롤리 이스트윅을 중점으로 해서, 페드로 보본 Sr.와 윌 매키내니 등으로 이루어진 레즈의 불펜은 리그 최강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스톤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를 연파하면서 월드 시리즈 챔피언을 2연패하는 등 전성시대를 구가할 것 같았던 신시네티 레즈가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투수왕국을 앞세운 LA 다저스와 같은 지구에 있었다는 점과 FA 제도의 시행으로 더 이상 빅 레드 머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1976년을 끝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쳐준 토니 페레즈를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빅 레드 머신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1978년을 끝으로는 선장인 스파키 앤더슨은 2년 연속 지구 2위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 레즈에서 감독을 맡은 9년 동안 스파키 앤더슨은 863승 586패라는 놀라운 성적(승률 0.596)을 거두었고, 1971년의 79승과 1977년의 88승을 제외하고 7번이나 92승 이상을 기록하였다. 5번의 지구 수위와 4번의 리그 우승, 2번의 월드시리즈 제패 등을 이끌었다. 또한, 찰리 허슬인 피트 로즈도 FA로 필리스로 이적하였다.
1979년과 1980년을 끝으로는 조 모건과 세자르 제로니모 등이 FA로 풀렸고, 1981년과 1982년에는 켄 그리피 Sr.와 조지 포스터가 각각 양키스와 메츠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빅 레드 머신의 안방 마님이었던 자니 벤치는 1983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고, 빅 레드 머신의 흔적을 마지막까지 지키던 데이브 콘셉시온도 1988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면서, 1970년대를 장식했던 빅 레드 머신은 완전히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승부 도박 혐의로 피트 로즈가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을 당하였지만, 감독인 스파키 앤더스을 비롯해서 자니 벤치, 토니 페레즈, 조 모건 등 4명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4명과 함께 데이브 콘셉시온의 백넘버는 신시네티 레즈에서 영구 결번되었다. 지금과 같은 돈 놓고 선수 먹기인 FA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드래프트와 트레이드 등 자체적인 팜 시스템을 활용해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강타선을 구축했던 빅 레드 머신은 FA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한다. 막대한 자금력의 차이가 격심해지면서 구단 간의 전력 차이가 커져만 가는 지금의 시대에서 빅 레드 머신은 아련한 아쉬움과 함께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노스탤지어로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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