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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의 전신으로 가장 오래된 리그인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이 시작된 것은 1871년으로, 메이저리그의 역사는 대략 137년 정도가 된다. 137년은 인간의 나이로 환원하면,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는 장수 중의 장수이다. 오랜 메이저리그의 역사 속에서 가장 안타를 잘 만들어낸 이른바 안타제조기는 누구일까? 아마도 타격의 신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4할타자인 테드 윌리엄스가 첫 손가락에 꼽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윌리 킬러라고 생각한다. 윌리 킬러라는 이름은 메이저리그의 팬이라고 해도 상당히 생소한 이름이다. 지금보다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60여년 전인 1941년이나 앞으로 있을 미래인 2008년에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었고, 또한 이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윌리 킬러는 1940년대에 활약한 선수일까? 또한, 2008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그의 이름이 친숙해진다는 것일까?

윌리 킬러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00 여년 전인 1890년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1892년에 데뷔해서, 양대리그가 정착한 후인 1910년까지 선수로서 활약하였고, 키가 163cm나 166cm에 불과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단신 선수 중의 한 명으로 작은, 조그마한 등을 의미하는 Wee가 그의 별명일 정도였다. 1872년 브룩클린에서 태어난 윌리 킬러는 1892년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하면서, 메이저리그로서 그 첫 발을 내딛었다. 데뷔 당시에는 팀의 백업 멤버로서 몇 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뉴욕 양키스의 전신인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한 1894년부터 주전으로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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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풀타임으로 시즌에 나선 그는 무려 219안타를 몰아치면서 0.371라는 고타율과 함께 94타점, 165득점 등을 기록하였다. 그의 활약 속에 1892년에는 12팀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한데 이어서 1893년에도 중하위권인 8위에 그친 오리올스는 1882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하였다. 윌리 킬러의 방망이는 이후로도 스탑을 모르는 듯이 안타를 매시즌마다 양산하면서 1901년까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인 8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했다. 당연히 그의 활약 속에 오리올스는 1895년과 1896년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3년 연속 리그를 제패하였다.

시즌 200안타 이상을 연속으로 기록한 선수들(성적은 2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연속 시즌의 합계임)
Player Year - G AB R H 2B 3B HR RBI SO BB SB CS BA OBP SLG
W. Keeler 1894-1901 8년 1057 4552 1120 1719 150 108 21 544 - 268 347 - .378 .421 .472
W. Boggs 1983-1989 7년 1079 4196 772 1479 300 35 59 479 318 719 13 22 .352 .446 .485
S. Ichiro 2001-2006 6년 957 4096 671 1354 155 50 61 359 384 280 235 58 .331 .376 .438
A. Simmons 1929-1933 5년 709 2923 600 1039 176 57 141 720 242 203 25 10 .355 .401 .604
C. Klein 1929-1933 5년 759 3114 658 1118 232 46 230 693 245 283 51 - .359 .413 .635
C. Gehringer 1933-1937 5년 757 3044 637 1055 224 34 71 552 106 419 42 21 .347 .428 .512

하지만, 윌리 킬러는 개인 타이틀과는 큰 인연이 없어서 1897년과 1898년에 타격왕을 2연패한 것이 전부이다. 1941년 조 디마지오에 의해서 깨지기 전까지 역대 최다 연속 경기 안타인 44게임 연속안타를 달성한 1897년에는 역대 한 시즌 최고 타율 5위에 해당하는 0.424를 기록했다. 1896년 시즌 최종전을 포함하면, 메이저리그 역대 2위인 45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펼쳤다.

Year Player Team hits
1941 Joe DiMaggio NYY 56
1896-97 Willie Keeler BLN 45
1978 Pete Rose CIN 44
1894 Bill Dahlen CHC 42
1922 George Sisler SLB 41
1911 Ty Cobb DET 40
1987 Paul Molitor MIL 39
2005-06 Jimmy Rollins PHI 38

그리고, 1898년에는 216안타 중에 206개의 싱글 히트로 2004년 스즈키 이치로가 225개의 단타를 치기 전까지 한 시즌 역대 최다의 기록이었다.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양대리그가 정착하기 이전을 대표하는 안타제조기가 윌리 킬러였다.

한 시즌 단타 최다 기록
Rk Player Year G AB R H 1B 2B 3B HR RBI SO BB SB CS BA OBP SLG
1 I. Suzuki 2004 161 704 101 262 225 24 5 8 60 63 49 36 11 .372 .414 .455
2 W. Keeler 1898 129 561 126 216 206 7 2 1 44 - 31 28 - .385 .420 .410
3 L. Waner 1927 150 629 133 223 198 17 6 2 27 23 37 14 - .355 .396 .410
4 W. Keeler 1897 129 564 145 239 193 27 19 0 74 - 35 64 - .424 .464 .539
5 I. Suzuki 2001 157 692 127 242 192 34 8 8 69 53 30 56 14 .350 .381 .457
6 J. Burkett 1896 133 586 160 240 191 27 16 6 72 19 49 34 - .410 .461 .541
7 W. Keeler 1899 141 570 140 216 190 12 13 1 61 - 37 45 - .379 .425 .451
8 W. Boggs 1985 161 653 107 240 187 42 3 8 78 61 96 2 1 .368 .450 .478
9 J. Burkett 1898 150 624 114 213 186 18 9 0 42 - 69 19 - .341 .415 .399
- I. Suzuki 2006 161 695 110 224 186 20 9 9 49 71 49 45 2 .322 .370 .416

매년 그렇게 안타를 생산할 수 있는 비법을 누군가 물었을 때에, 그는 매우 간단명료하게 "I keep my eyes clear and I hit 'em where they ain't"라고 말했다. 잘 맞던 빗맞던 수비가 없는 곳으로 친 타구는 안타가 될 확률이 당연히 높다. 단지 그 방향으로 타구를 보내는 능력 - 배트 컨트롤이 타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뿐이다. 지금처럼 홈런이 시대의 트렌드가 아닌 시기였기에, 안타를 생산해내는 능력이 중요했다. 잘 맞은 타구도 야수 정면으로 갈 경우에는 안타가 될 확률이 매우 낮다. 또한, 야구에서 안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볼이 외야로 갈 필요도 없다. 그는 홈 베이스 근처를 강하게 쳐서 높은 바운드를 만들어서 내야 안타를 생산하는 이른바 볼티모어 촙 Baltimore chop의 대표적인 존재로, 자신의 신체적 단점을 뛰어난 야구 감각으로 커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 윌리 킬러였다.

리그 최고의 교타자인 윌리 킬러는 1899년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브룩클린 수퍼배스(현 LA 다저스)로 이적하였다. 그가 유니폼을 바꿔입게 된 것은 당시 오리올스의 구단주가 수퍼배스도 사들이면서, 볼티모어보다 큰 시장인 브룩클린으로 선수들을 빼돌렸기 때문이었다. 오리올스의 주력 선수들이 보강되기 전까지 8년간 하위권을 맴돌던 수퍼배스는 일약 강팀으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1899년과 1900년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반면에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주력 선수들을 빼앗긴 끝에 1899년을 끝으로 팀이 유명무실해졌다가, 아메리칸리그가 창립한 1901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양대리그가 출범한 1901년에 202안타를 치면서, 전무후무한 8년 연속 200안타를 달성한 윌리 킬러는 서서히 노쇠화를 보였고, 1903년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이어받은 뉴욕 하이랜더스(현 뉴욕 양키스)로 당시로서는 최고 대우인 1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조건으로 이적했다. 이미 만 30세를 넘긴 나이였지만, 하이랜더스에서도 녹녹치 않는 기량을 발휘하면서 1906년까지 15년 연속 3할 이상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1907년에는 개인 최저인 0.234의 타율에 머무는 등 급격한 노쇠화를 보인 끝에 만 38세던 1910년을 마지막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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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는 고향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윌리 킬러는 1939년 75.55%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득표율을 얻으면서 조지 시슬러와 에디 콜린스 등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양대리그가 출범하기 이전에 전성기를 보낸 관계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41년 뉴욕 양키스의 조 디마지오가 그의 기록을 넘어서 56경기 연속 안타를 치면서 재조명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잊혀지던 윌리 킬러는 스즈키 이치로의 한 시즌 최다 단타와 6년 연속 200안타 이상을 기록하는 활약 속에 쿠퍼스타운에 있는 그의 명판에도 빛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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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손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