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오프시즌에 라이온즈와 타이거스는 유용목과 손지환을 맞 트레이드하였다. 휘문고 시절에 초고교급 유격수로서 각광을 한몸에 받으면서 트윈스에 입단한 손지환이 이렇게 저니맨 신세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손지환과 함께 고교 최고의 유격수를 다투던 마산고의 신명철도 자이언츠를 거쳐서 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간혹 2001년의 트래프트에서 자이언츠가 박한이가 아닌 신명철을 선택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평가, 혹은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박한이도 연고지 우선 지명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선수이지만, 포스트 이종범 시대를 이끌 후보 0순위였던 신명철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였다. 그 당시에 유격수로 김민재가 있었지만, 그는 수비력에 비해서 공격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1999년에는 평균 이상을 했지만). 유격수는 어떤 의미에서 자이언츠의 고질적인 아킬레스 건이었다. 신명철과 박한이의 포지션에 따른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그들이 프로에서 맹활약하면서, 포스트 이종범을 향한 선의의 라이벌을 이루기를 바랬지만, 먼저 프로에 입단한 손지환이 배신을 때리더니 신명철도 빌빌거리는 등 실망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시즌에는 그런 그들이 생각도 하지 못한 라이온즈에서 어쩌면 키스톤 콤비네이션으로 뛰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제발 이제는 가진 재능을 꽃 피우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진정한 원맨쇼 무보살 삼중살
서론이 매우 길었다. 사실 손지환은 라이온즈와는 어떤 면에서 악연을 가지고 있다. 2007년 6월 13일 타이거스와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손지환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무보살 삼중살을 연출하였다. 당연히 그 당시의 손지환은 타이거스의 일원이었고, 지금의 소속팀인 라이온즈는 그 진기록의 제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는 말을 절감할 수 있다. 무보살 삼중살이란, 한번의 송구도 없이 삼중살 - 3아웃을 잡아낸 것을 말한다. 삼중살 자체도한국 프로야구에서 손지환의 무보살 삼중살을 포함해서 46번밖에 없었던 점 등을 생각하면, 무보살 삼중살이 얼마나 보기 어려운 진기록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퍼펙트 게임보다 더 보기 어려운 기록"이라고 말할는 경우도 있다.
70여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무보살 삼중살은 지금까지 단 한번밖에 없었다. 1967년 7월 30일 토쿄 오리온즈와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브레이브스의 2루수인 스미토모 타이라가 그 주인공으로, 상황은 손지환의 무보살 삼중살과 거의 같았다. 2회말 무사 1, 2루의 찬스에서 오리온즈의 오츠카 야스오가 2루 베이스와 2루수 사이를 관통하는 중전 안타성 타구를 쳤지만, 때마침 히트 앤드 런으로 인해 2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던 스미토모 타이라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타구를 잡은 것과 동시에 원아웃, 연속 동작으로 2루를 밟으면서 투아웃, 그리고, 거의 2루에 도달한 1루 주자가 되돌아갈 것을 포기한 채로 서 있는 것을 태그하면서 쓰리아웃을 잡았다.
일본이나 한국의 프로야구에 비해서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지금까지 무보살 삼중살이 13번 있었다. 가장 최근이 2007년 4월 29일 브레이브스스와 로키스의 경기에서 로키스의 유격수인 트로이 투로위츠키가 7회에 무사 1, 2루에서 치퍼 존스의 직선타구를 잡은 후에, 2루 베이스와 2루로 달려오던 1루주자인 에드가 렌테리아를 아웃시키면서 진기록을 달성하였다. 공교롭게도 메이저리그 역대 12번째로 무보살 삼중살을 기록한 팀이 브레이브스였다. 2003년 8월 10일에 브레이브스의 라파엘 퍼칼은 카디널스를 상대로 달성하였다. 결과론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 브레이브스였다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공식적으로 최초로 무보살 삼중살을 성공시킨 것은 1909년 7월 19일에 벌어진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2회에 냅스(현 인디언스)의 유격수인 닐 볼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1907년 뉴욕 하이랜더스(현 양키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는 1909년 5월에 냅스로 트레이드되었고, 1912년 6월에는 손지환의 경우처럼 자신이 진기록을 세운 레드삭스로 이적해서 1913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무보살 삼중살을 달성한 선수 중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경우는 단 한번도 없다. 공수에서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부상하고 있는 트로이 투로위츠키가 이 불운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반면에, 주자 등으로 진기록의 제물이 된 헌액자는 지금까지 3명이 있었다. 1925년 5월 7일에 파이러츠의 2루수인 글렌 라이트가 9회에 이 기록을 달성할 때에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우타자라고 말해지는 로저스 혼스비가 아웃을 당하였다. 또한, 1927년 5월 30일에 컵스의 유격수인 지미 쿠니는 4회에 무보살 삼중살을 기록했는데, 그 중에 투아웃은 역대 최고의 형제 선수인 폴 워너와 로이드 워너가 그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데, 지미 쿠니는 아이러니하게도 카디널스 소속이던 1925년에 로저스 혼스비와 함께 글렌 라이트의 무보살 삼중살에 아웃된 선수 중의 한 명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7시즌을 보내면서, 단 2개의 홈런밖에 치지 못한 지미 쿠니가 그 홈런수와 같은 2번이나 무보살 삼중살과 관련된 것은 불가사의하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게다가, 더욱 더 놀랄 일은 지미 쿠니가 기록한 다음날인 1927년 5월 31일에 타이거스의 1루수인 자니 뉸(Johnny Neun이기에, 독일계라면 자니 노인)이 인디언스를 상대로 이틀 연속으로 무보살 삼중살을 달성하였다. 1년에 한번 보는 것도 어려운 진기록이 이틀 연속으로 펼쳐졌다는 것은 정말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13번의 무보살 삼중살 중에서 유격수(8회)와 2루수(3회)가 11차례를 기록했지만, 자니 뉸의 경우처럼 1루수가 진기록을 세운 것은 2번 있었다. 자니 뉸에 앞서 레드삭스의 조지 번스가 1923년 9월 14일 인디언스를 상대로 1루수로서는 최초로 무보살 삼중살을 기록하였다. 1루수가 무보살 삼중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루로 열심히 달려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무보살 삼중살을 달성하고 말겠다는 노골적인 의지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퍼펙트 게임과 마찬가지로 무보살 삼중살도 월드시리즈에서 딱 한번 펼쳐졌다. 1920년 10월 10일에 열린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인디언스의 2루수인 빌 왐스건스가 로빈스(현 다저스)를 상대로 5회에 달성하였다.
위에서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무보살 삼중살을 완성한 경우는 1909년의 닐 볼이라고 했지만, 그를 수식한 말 중에 '공식적'이라는 표현을 구태여 덧붙인 점을 생각하면서, 비공식적으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유추한 분도 있을 것이다. 1878년 5월 8일에 폴 하인스가 펼친 플레이가 무보살 삼중살인지 여부는 130년이 자닌 지금도 여전히 논란거리로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플레이가 실제로 무보살 삼중살일 경우에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의 기록일 뿐만이 아니라, 믿을 수 없게도 외야수가 무보살 삼중살을 기록한 것이 된다.
그의 플레이를 설명하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둘 부분이 있다. 내셔널리그가 창립한 것은 1876년이었다(내셔널리그가 창립하기 전에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이 5년동안 존재했지만). 또한, 당시의 룰은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물렁물렁한 가벼운 볼을 사용했기에 멀리 치기도 어려운 동시에, 멀리 던지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지금과는 달리 글러브도 없던 시대였기에, 타자가 친 라이너 타구를 직접 포구한다는 것은 거의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런 시대에 폴 하인스가 파인 플레이를 펼친 것이다.
8회 보스톤 레드 캡스는 무사 2, 3루라는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타석에 들어선 잭 버독은 유격수의 키를 넘기는 안타성 타구를 쳤지만, 전진 수비를 펼치고 있던 프로비덴스 그레이스의 좌익수인 폴 하인스가 그대로 잡아내는 파인 플레이를 펼쳤다. 안타라고 판단한 누상의 주자들은 모두다 3루를 돌아서 홈을 향하고 있었고, 폴 하인스는 3루로 송구하는 것보다는 직접 베이스를 밟는 것이 더 빠르다고 생각한 것인지 3루로 달려서 3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리고, 2루로 볼을 송구했다. 지금의 룰로 보면, 폴 하인스의 플레이는 삼중살은 맞지만, 무보살이 아닌 1보살 삼중살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그 당시에 2루 주자는 어느 상황에서 아웃이 되었는지이다. 지금과 같이 2루에 송구한 것으로 아웃이 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2루 주자가 3루를 지나간 상황이기에 폴 하인스가 3루를 밟은 것으로 주자가 전부다 아웃이 선언되었는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놓고서 지금 현재도 무보살 삼중살로 인정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폴 하인스와 관련해서 또 한가지 미스테리가 있다. 이 해에 그는 4홈런, 50타점으로 홈런과 타점에서 2관왕에 오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가 타율 0.358로 타율 부분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기에,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로 타격부분 3관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의 스탯과 관련된 사이트로 널리 알려진 베이스볼 리퍼런스에서는 1878년에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였다고 표기하고 있다.
어느쪽이 진실일까?
어쩌면 좀처럼 볼 수 없는 진기록인 만큼 그에 따른 뒷이야기, 혹은 이론은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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