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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윤 님의 배려로 [팀 블로그]의 일원이 된 Trotzky입니다. 닉네임으로 이미 아시는 분들은 많이 아실 듯 싶네요. 더구나 ** 사이트에서 이 필명을 써서 글을 끄적이노라면 심지어 제가 소속된 국민생활체육협의회(이하 생체협) 산하 서울시 야구연합회의 사무국장으로 계신 김 모 국장님이나 심판부 총무일을 보시는 분 등이 핀잔섞인 멘트를 날리기도 하더라는...
  95년에 KBO 심판학교의 과정을 이수한 일을 계기로, 97년부터 사회인 야구심판의 길로 접어든 지도 어언 11년(이틀 남았군요)... 내년에는 이 일을 잠시나마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12년으로 접어들게 되겠죠.
  미디어몹에서 심판보며 겪은 이야기라던지 TV로 MLB 경기를 보며 느낀 점들 및 일상잡사들을 끄적이고는 했는데 그 글들이 어찌어찌 인연이 되어 위의 첫 문단의 멘트대로 손윤 님의 눈길을 받아 그분의 배려를 통해 이곳에 한 자리를 마련하게 됐네요. 주로 쓰게 될, 아니 쓰는 글들은 앞에서처럼 미디어몹 체재 당시에 쓰던 것들과 큰 차이는 없을 거라 생각돼네요. 뭐... 그라운드에서 심판으로 임하면서 겪게 될 판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거기서 제가 느끼는 감상, 바깥에서 대기심으로 있거나 상급자로 초심자로 입문한 분들과의 교류 등이 주된 이슈가 되지 않을까(물론 내년에 제가 마음먹었던 쪽의 성취가 있게 되면 이쪽은 약해질 수도 있다는)... 그리고 (사회인야구계에서) 많은 이슈가 되곤 하는, 또는 TV로 보는 야구경기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투게 되는(실제로 저희 심판들끼리도 모임 때마다 주된 말다툼거리가 되곤 하죠. 저야 직장 다니는 동안은 그런 자리에 참석할 시간이 거의 없지만) 룰-규칙-에 대한 논의도 할 수 있을 테고 2심 이상의 심판이 들어갔을 때-물론 3명, 4명이 투입될 때도- 상황마다 움직여야 하는 심판들의 포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제 스스로의 존재를 그다지 대단하다 여기지는 않는 편이라(물론 그라운드에서 심판으로 일하는 동안만큼, 그리고 특히 심판으로서의 재정에 대한 제 스스로의 자부심은 높지만) 그 시절에 끄적였던 글들보다 더 좋은 포스팅을 이곳에 들르시는 분들께 선보일 수 있을지는 솔직이 자신은 없지만, 어찌 되었건 내 스스로가 하고 싶어서 그리고 쓰고 싶어 손 가는 대로 키보드를 끄적이는 부분에 대해 이해해 주시고 그저 "이런 시각과 관점으로 일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살펴 보신다면 그보다 고마울 일은 없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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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제가 다녔던 대학의 야구동아리 팀의 OB멤버(Old Boys, 졸업생이라는 뜻)들이 만든 OB 팀의 송년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생업에 매달려 있는 때였다면 여타의 모임들에 대한 참석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심지어는 지인의 결혼식까지도), 백수 생활로 접어든지도 어언 보름 가까이에 접어들면서 가뜩이나 올 시즌 심판배정도 지난 11월 초 이후로 나간 적이 없던 터라 감이 무뎌져 가는 터에 야구로 묶여진 후배들과 이야기라도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하면 남사스러울까요?

  OB팀의 산파 역을 맡았고 현재 감독으로 있는 후배(야구에 관계된 스포츠용품 판매를 취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는 올해 뛰었던 *** 리그를 접고 내년에는 ** 리그에 가입하기로 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술을 몇 잔 마신 후 그 후배의 옆자리에 가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는데 올해 하반기에 일산 모 구장에서 ** 리그 경기들이 열린 것에 우리 쪽 심판부 사람들이 경기 진행을 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다른 조직의 사회인 심판들에 비하면 형(저를 이야기하는)이 소속된 심판부가 제일 낫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형만한 심판은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제 앞이라 비난을 하기가 내키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진심이 담겨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뭐라 반론하기도 그렇더군요. 그저 할 말이라고는 "...나도 실수 많이 한다. 요즘 같아서는 계속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점점 하락세다..."라고 밖엔 달리 할 말이 없더라는.

  1차(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저녁 10시에 파하고 2차로 이동하는 다른 후배들에게 작별 인사를 보내고 99년에 입학한, 부천에 산다는 졸업한 후배와 함께 2호선 전철을 타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그 후배는 신도림역에서 갈아타야 했죠. 그래도 전철을 탄 30여 분 동안 멍하니 음악만 듣거나 혼자 구석에서 책을 읽으면서 보내는 것보다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니 시간이 길다는 생각은 안 들더군요. 이럴 때는 확실히 길동무가 있는 것이 좋은 듯.
  전철을 같이 타고 가는 동안 주로 나누었던 주제는 후배 본인이 느끼는 YB(Young Boys, 재학생) 시절의 경기와 OB 팀에 들어와서 일반 사회인 경기에서 느끼는 차이점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자주 들어가는 프리챌(freechal) 쪽의 대학아마야구연합회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면서 해가 가면 갈수록 무언가 사람들의 생각이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 제 스스로도 속이 울컥하더군요... 물론 대학 재학생들의 시야가 현재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보다 넓어지는데 어려움이 있겠고나하고는 생각하지만서도 확실히 근시안적인 시각에 글 포장 기술만 배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인야구에만 존재하는 시간제한에 대한 부분, 그리고 심판의 판정 및 포메이션이 갖는 나름의 한계에 대한 부분 등이 주였죠. 그리고 양념삼아(라고 하면 싫은 소리 들을지 모르지만) KBO 심판의 연봉체계(제가 알고 있는)와 팀 체제, 그리고 그들과 MLB 심판들을 비교할 때 어떤 면을 주시해야 할 것인지 TV 모니터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측면에 대해서 언급했다죠. 몇 주 가까이 이런 류의 이야기는 하질 않았는데 입이 근질거리기는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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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otz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