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아니 워닝 : 이 포스트에는 영화 [스카우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잔뜩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셨거나 앞으로 볼 의향이 있는 분들께서는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찍이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월드컵 결승전이 벌어지는 일요일에는 테러단체가 무장 투쟁을 벌이는 일조차 불가능하다"고 썼습니다. 모든 사회적 이슈와 사람들의 관심이 스포츠 경기에 빨려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설사 테러가 일어날지라도 원했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정치를 멈추게 하고 사회적 의식을 잊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이 에코의 결론입니다. 한국만 해도 그렇죠. 월드컵 기간 동안 어디 무인도로 도망이라도 가지 않는 이상, 축구 중계와 광고와 붉은 티셔츠의 무리들을 마주치지 않기란 불가능합니다. 월드컵 때 죽으면 부조금이 절반밖에 안 걷힌다는 우스개소리는 그냥 농담이 아니죠.
야구는 예외일까요? 저는 여기서 한국프로야구의 탄생, 아니 창조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애초에 한국 프로야구는 전두환 씁숑구리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슬픈 사실이죠. 한국프로야구 총재는 재벌 회장들과 독대할 수 있는 힘있는 자리였고, 구단들의 프로야구 참여는 상당부분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루어졌어요. 프로야구는 섹스와 더불어 정권이 국민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도구였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프로야구에 열광하는 동안 정치는 멋대로 주물러지고 삼성팬과 해태팬이 대립하는 동안 지역감정의 골은 깊어져 갔습니다. 원하던 바를 어느정도 달성한 셈이죠.
흔히 사람들은 1980년대 해태 왕조가 호남의 울분을 대리만족으로 달래 주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과연 해태 선수들은 얼마만큼 그런 의식을 갖고 필드에서 '싸웠'을까요. 영화 [스카우트]를 보면 5.18 하루 전날 우리의 고등학교 3학년 선동렬 군은 고기집에서 갈비 30인분을 뚝딱 해치우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 속 광주가 내내 지글지글 거리는 폭발 직전의 분위기인 반면에, 유독 선동렬과 그의 가정, 그리고 야구부만은 모든 쟁의와 최루탄에서 따로 격리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지죠. 선수 출신의 야구부 직원인 주인공 호창(임창정)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그가 선동렬을 스카우트하러 발이 닳도록 쫓아다니는 동안 그가 있는 장소에는 전경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영화니까 어느정도 픽션이 가미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야구선수에 대한 묘사는 야구와 정치, 스포츠와 사회 의식에 대한 상당히 의미있는 견해를 제시합니다. 호창이 야구에 완전히 빠져있던 시절, 연애(섹스)는 스포츠와 공존이 가능하지만 정치-사회적 행동은 야구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호창은 본의 아니게 사랑하는 여자 세영(엄지원)의 앞에서 학내 '백골단'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고 세영은 이별을 통보하죠. 연애의 실패는 야구의 실패로 직결되고, 유망한 투수이던 호창은 평범한 대학 야구부 직원으로 전락합니다. '연애=스포츠' 이지만 '정치≠스포츠'라는 등식이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호창이 본격적으로 정치-사회적인 책임감을 갖고 광주에 뛰어드는 때는, 이미 스포츠 -선동렬을 스카우트하는 임무- 는 잊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리고 호창은 광주 건달들과 함께 경찰서에서 세영을 구해내고, 광주의 피바다 속에서 그녀를 보호하는데 성공하죠. 뒤늦게 선동렬 스카우트를 떠올리고는 동렬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때는 자신의 책임을 다한데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때입니다. 호창은 경찰에게 붙잡히고, 그뒤로는 영화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수십년 뒤 이제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세영은 TV에서 해주는 WBC 중계에 비친 선동렬의 모습을 보고는 호창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짓습니다.
[스카우트]는 다소의 과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암혹했던 시절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일말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스포츠가 정치에 지배당하던 시절, 상명하복의 문화가 사회 곳곳에 퍼져있던 시절, 노동이라는 말은 빨갱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여겨지던 시절에 스포츠와 정치-사회적 의식이 공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호창은 백골단 노릇을 하고 선동렬은 갈비를 뜯고 있는 것이죠. 게다가 한국의 야구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죽어라 운동만 하고 자라납니다. 자아를 형성하고 의식을 갖게 되기도 전에 슬라이더를 던지거나 레벨스윙을 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되죠. 그리고 프로에 들어가면 높은 연봉을 받으며 1년 365일 잠시도 쉴새없이 훈련과 경기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사회적인 의식을 갖출 수 있는 여유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이런 구도가 처음으로 깨진 것이 바로 선수협 창립 때입니다. 야구선수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기득권을 포기하는 모습도 보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승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선수는 "자기 권리를 찾아 주장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 알았다"면서 "삼성에 노조가 없는데 그때 우리가 만든게 아마 그 회사 최초의 노조일 것"이라고 뿌듯해 하기도 했습니다. 선수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사회적 약자에 불과하고, 계급 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여기,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과 센테니얼이라는 실체가 모호한 회사 간의 줄다리기가 한 차례 벌어졌습니다. 선수들은 프런트부터 코칭 스태프, 선수단까지 완전한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버텼고 회사 측은 프로야구 참가 철회까지 내비치며 강경하게 맞섰습니다. 결과적으로 협상은 타결되고 선수들에 대한 100% 고용 승계가 합의되었습니다. 몇년간 힘겨운 구단 살림에도 똘똘 뭉쳐 끈끈한 팀워크로 좋은 성적을 유지해온 현대 선수들에게 분열이나 개인주의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 선수도 나만 살겠다며 이탈하는 일이 없었고, 모두가 연봉 삭감을 감수하겠다며 고통을 분담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이번 사례는 인수 합병되는 측의 직원들이 '쟁의'를 벌여 승리를 거둔, 노동운동으로 치면 기적과도 같은 사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센테니얼 사태를 바라보는 야구팬들의 시선은 그다지 선수들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퇴출되는 선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사측'의 이해를 반영한 발언을 하기도 하고, 고액 연봉자들이 신인급들을 볼모로 잡는다며 선수들을 비난하는 의견도 볼 수가 있습니다. [스카우트]의 시대로부터 28년이 지난 지금, 야구선수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생계를 걸고 한데 뭉쳐 투쟁할 만큼 의식이 발전했는데, 왜 일반 대중들의 의식은 이 지경으로 추락했을까요? 어쩌다가 우리가 약자의 피해를 동정하기는 커녕 강자를 옹호하고, 경제권력의 지배 논리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따라서 외는 바이-센테니얼맨이 되어 버렸을까요? 언제부터 사람들이 8개 구단이 유지되려면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마치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논리를 연상시키는 전체주의적 주장을 당당하게 내뱉게 된 것일까요?
이건 어쩌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두환이 프로야구를 통해 대중의 사고를 마비시키려 했듯, 우리 시대에는 스포츠에 침투한 자본의 논리가 다시 한번 대중들의 의식을 멈추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야구선수들이 어려서부터 야구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이 야구하는 기계로 성장하듯, 지금의 우리 역시 비인간적인 경쟁 속에서 오직 먹고사는데 필요한 기술만을 익히며 경제 기계로 늙어갑니다. 고전 한 권 읽을 시간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시간을 갖고 성찰할 여유도, 자아를 형성하고 사회적 의식을 기를 기회도 박탈당한채 어찌보면 야구선수들보다도 더 각박한 환경 속에 내몰려 있다는 것이죠. 야구선수들은 오프시즌에 쉬기라도 하지만 일반인들은 쉬는 날에도 영어를 배우러 학원에 다닙니다. 야구선수들이 보여주는 의식의 변화와 야구팬들이 보여주는 의식의 추락이 교차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여기에 대해 [스카우트]는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먼저 호창이 세영을 구하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안하던 짓을' 하게 되는 데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무지했던 과거를 속죄하고 싶다는 마음과 세영에 대한 사랑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죠. 또한 호창이 세영을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동안, 그가 선동렬과 야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동안은 무장 투쟁이 불가능'하다는 에코의 언급과 반대로, 호창은 야구를 잠시 접어두고 '무장 투쟁'에 나서는 쪽을 택한 겁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우리는 스포츠에 대한 열광과 몰입과 자신과의 동일시로부터 잠시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좋을지 모릅니다.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우리의 사회적인 의식을 마비시키지 않도록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죠. 가령 현대 선수단 문제도 '야구'의 차원을 넘어 '노동'이나 '기업윤리'와 같은 더 넓은 차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문제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가 정치-사회적 맥락과, 또는 경제 권력과 분리되어 존재하던 시기가 이미 지났기 때문입니다. 5.18에서 완벽하게 보호받던 [스카우트] 속 선동렬 군은 오늘날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선수들은 초인이나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와 같은 약자이고 생활인입니다. 그들 역시도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돈버는 기계로 조련되고 잠시도 생각할 여유를 부여받지 못한채 경쟁으로 내몰리는 - 우리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팬으로서, 더 나아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같은 사회적 약자로서 우리는 그들이 벌이는 경기장 안에서의 싸움만이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의 투쟁까지도 -그게 정당한 싸움이라면- 응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구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할 때만이 사회적인 의식과 조화가 가능해 집니다. 마치 [스카우트]의 마지막, 중년이 된 세영의 흐뭇한 미소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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