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에 열린 제42회 슈퍼볼에서 와일드 카드로 진출한 뉴욕 자이언츠가 파죽의 18연승을 기록하고 있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꺽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NFL의 챔피언에 올랐다. 엎치락뒤치락하던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종료 39초를 남겨두고 10 : 14로 뒤지던 자이언츠가 와이드 리시버인 플라시코 버레스의 13야드 터치다운이었다. 이 경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미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불린 보 잭슨을 떠올렸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한 것이지만, 1991년 1월 13일에 있었던 NFL의 플레이오프에서 그가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이라고 지금도 생각할 정도로 진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디온 샌더스와 함께 MLB와 NFL에서 활약한, 게다가 디온 샌더스가 메이저리그에서는 형편없는 성적을 거둔 것에 비해서, 보 잭슨은 양쪽에서 올스타전에 출전했을 정도로 톱 레벨의 스타 플레이어였다. 고교시절부터 야구와 아메리칸 풋볼, 육상 등에서 월등한 기량을 뽐내던 보 잭슨은 고교를 졸업하던 1982년에 양키스로부터 드래프트 2라운드(전체 50순위)에 지명을 받았다. 대학과 꿈에 그리던 핀스트라이프를 놓고서 고민을 하던 그는 "프로에서 돈은 언제던지 벌 수 있지만,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는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서, 지역의 오번 대학에 진학하였다.
2학년이던 1984년에는 팀을 '슈거볼' 정상으로 이끌었고, 1985년에는 대학 풋볼 최고상인 '하이즈먼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풋볼의 경기가 없는 오프 시즌에는 야구와 육상을 즐겼다. 야구에서는 1985년에 42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401, 17홈런, 43타점 등을 기록하였고, 200파운드가 넘는 거구인데도 100m를 10초대라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면서 올림픽대표 후보에 뽑히기도 하였다. 세간의 관심은 보 잭슨이 야구와 풋볼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에 집중되었다. 일단 4월에 있었던 NFL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를 가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가 그를 지명하였다. 게다가, 5년 계약에 760만달러라는 거액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6월에 있었던 MLB의 드래프트에서는 캔자스시티로부터 4라운드(전체 105순위)에 지명을 받았다. 그가 4라운드에 지명을 받은 것은 그의 기량이 그정도였던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풋볼을 선택할 것이라는 우려로 드래프트 픽을 날릴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에서 고교나 대학에서 보 잭슨과 같이 야구나 농구, 풋볼, 아이스하키 등 복수의 종목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경우는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보 잭슨과 같이 복수의 리그로부터 드래프트 지명을 받은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2007년 통산 300승을 달성한 톰 글래빈이 NHL의 LA 킹스로부터 지명을 받은 적이 있었고, NFL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존 엘웨이는 1981년에 양키스에 2라운드에 지명을 받고 1982년에는 마이너리그에서 활약을 펼치기도 했지만, 1983년에 전체 1순위로 지명을 받은 볼티모어 콜츠에 입단하면서 NFL을 선택하였다. 또한, 안타제조기의 대명사인 토니 그윈도 대학을 졸업하던 1981년에 MLB와 NBA에 동시에 드래프트 지명을 받으면서, 자신의 진로를 놓고서 고심을 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스포츠 관계자들을 비롯한 팬들이나 그를 지명한 로얄스도 그가 야구를 선택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좀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종목을 선택하길 바란다"는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뜻밖에도 풋볼이 아닌 야구를 선택하였다. 그의 선택에 로얄스조차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6월 30일에 로얄스 산하의 2A에서 프로야구 데뷔전을 가진 그는 초반에는 적응하지 못하였지만, 서서히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면서 52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277, 7홈런, 25타점 등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9월에는 확장 로스터의 일원으로 메이저리그에 초고속 승격되었다. 9월 2일 메이저리그 데뷔전인 화이트삭스와의 경기에서 전설적인 좌완투수인 스티브 칼튼으로부터 첫 타석에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한 그는 9월 14일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는 마이크 무어로부터 145m의 대형 홈런으로 첫 홈런을 신고하였다.
메이저리그에서 25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207, 2홈런, 9타점 등에 그쳤지만, 그 누구도 그의 장래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특히, 니그로리그의 대부인 벅 오닐이 그의 타격을 보고서, "이 타격음을 아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바로 그는 조쉬 깁슨이다."고 말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다. 185cm의 키에 100kg을 훌쩍 넘는 몸무게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와 100m를 10초 초반에 끊을 수 있는 스피드 등 이른바 5툴 플레이어가 바로 그였다. 그런 그에게 1987년은 스포츠 역사에 남을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1987년에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시즌을 시작한 그에게 뜻밖에도 4월에 NFL의 드래프트에서 LA 레이더스로부터 7라운드에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사실 레이더스의 지명은 사전에 그와 접촉을 한 결과가 아니라, 오너인 알 데이비스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보 잭슨은 처음에는 매우 황당하게 생각했지만, 알 데이비스가 "야구 시즌이 끝난 후에 파트 타임으로 풋볼을 해도 괜찮다"고 말한 것에 고무되어서 야구와 풋볼을 겸임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화였다. 실제로 과거에 야구와 풋볼을 함께 하면서 뛰어난 성적을 남긴 사례도 있었다. 바로1912년에 스톡홀름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5종 경기와 10종 경기에서 2관왕에 올랐지만, 과거에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한 것이 발각되어서 메달을 박탈당한 것으로 유명한 짐 소프로, MLB와 NFL에서 플레이를 펼쳤다.
마침내 보 잭슨은 7월에 NFL의 레이더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의 결단에 로얄스는 부상의 위험성으로 인해 반대의 입장이었지만, 그가 야구를 포기할 수도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할 수도 없었다. 또한, NFL에서도 그가 "본업은 야구이고, 풋볼은 알바"라고 말한 것에 자존심이 상하였지만, 룰 상으로 문제가 없었기에, 그의 양수겸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보 잭슨이 입단한 레이더스는 NFL에서 캔자스시티를 프랜차이즈로 두고 있는 치프스의 라이벌이였기에, 지역 팬이 받은 충격은 더욱 더 컸다.
여하튼 MLB와 NFL이라는 전혀 다룬 두 종목의 프로리그에서 활약을 펼치게 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야구에서는 1989년에 32홈런과 105타점을 기록하면서, 그 해에 열린 올스타전에 스타팅 멤버로 출전해서 1회에 선두 타자 홈런을 포함해서 4타수 2안타 2타점 등으로 MVP에 선정되었다. 또한, 풋볼에서는 1987년 11월 30일에 먼데이 나이트 기록인 221야드 러싱을 기록하였고, 1990년에는 NFL의 올스타전인 프로볼에 출전하였다. MLB와 NFL에서 올스타전에 출전한 것은 보 잭슨 외에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렇게 두 프로리그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치명적인 위기가 닥친 것은 모두에서도 말한 것처럼 1990년 1월 13일이었다.
신시네티 벵갈스와의 플레이 오프에서 보 잭슨은 상대의 태클로 엉치뼈 골절이라는 스포츠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였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파워풀한 스피드를 낼 수 없게 된 보 잭슨은 단 4년으로 특급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다. 게다가, 로얄스로부터도 스프링캠프에서 방출을 당하는 등 설상가상의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화이트삭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지만, 단 23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1992년에는 4월에 다시 한번 수술을 받게 되면서, 그의 선수 생활도 이제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라고 말해졌다.
그러나, 보 잭슨은 그렇게 사라지기에는 그 재능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1993년에 1년만의 메이저리그 복귀전이 된 4월 9일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6회 2사후에 대타로 등장해서 라이트 펜스를 훌쩍 넘기는 홈런을 기록하면서, 그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결국, 85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232, 16홈런, 45타점 등을 기록한 그는 이 해에 컴백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에는 엔젤스로 이적해서 타율 0.279, 13홈런, 43타점 등을 남긴 것을 끝으로 현역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메이저리그에서 7시즌을 뛴 보 잭슨은 타율 0.250, 141홈런, 415타점 등 평범하기 그지없는 통산 성적을 남기는데 그쳤다. 어떤 의미에서는 3.35타수마다 1탈삼진을 기록했을 정도로 극악의 공갈포가 보 잭슨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인미답의 50홈런 - 50도루를 달성한 유일한 존재라고 말해졌을 정도로 그의 재능은 특별하였다. 아마도 그가 풋볼에 전념하였다면, NFL 역대 최고의 런닝백은 그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야구에 전념하였다면, 기대대로 50홈런 - 50도루 등을 달성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저 부상만 없었다면, 우리는 MLB와 NFL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서 노력한 한 인간을 계속해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부질없는 가정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두마리의 토끼를 쫓다가 한마리도 잡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과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 중에서 어느쪽이 보 잭슨에게 어울리는 평가일까?
한국 최고의 스포츠 전문 잡지 Rookie에 기고한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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