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경기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영예는 완전시합이다. 퍼펙트 게임은 투수가 상대팀에게 안타나 사사구, 실책, 타격방해, 주루방해 등으로 단 1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고 무득점으로 막아낸 경기를 말한다. 실책이나 타격 방해, 주루 방해 등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완전 시합은 단순히 투수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투수가 27명의 타자를 전부다 삼진으로 처리하지 않는 한, 그렇다고 해도 포수가 낫아웃을 범하거나 타격 방해 등을 저지를 수도 있기에, 야수들의 도움이 없다면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아직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선수는 없다. 이글스의 정민철이 1997년 5월 23일에 베어스를 상대로 8회 1사까지 퍼펙트를 기록했지만, 심정수에게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을 허용하면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역시 이글스의 송진우는 1991년에 타이거스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8회 2사까지 단 한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았지만, 정회열에게 베이스온 볼스를 허용하면서 대기록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또한, 2007년 10월 3일에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베어스의 다니엘 리오스가 9회 1사 후에 안타를 허용하였다.
반면에, 메이저리그에서는 지금까지 17명의 선수가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1880년 6월 12일에 우스터 루비 렉스의 리 리치먼드가 클리블랜드 블루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첫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였다. 5일 후인 17일에는 프로비던스 그레이스의 존 워드가 버팔로 바이슨스를 제물로 삼으면서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이 때 존 워드의 나이는 20년 3개월로 역대 최연소 완전시합 달성자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메이저리그가 양대리그로 개편된 후에 첫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것은 전설 그 자체인 사이영으로, 레드삭스 시절이던 1904년 5월 5일에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를 완벽하게 틀어 막았다. 그리고, 양키스의 돈 라센은 1956년에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를 상대로 완전시합을 연출하였다. 최근에는 2004년 5월 18일에 다이아몬드백스의 랜디 존슨이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역대 최고령(40년 7개월)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였다.
레코드 북 상으로는 양대리그가 된 이후로 내셔널리그에서 처음으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것은 1964년 6월 21일에 메츠를 완벽하게 틀어 막은 필리스의 짐 버닝이다. 그런데, 짐 버닝보다 먼저 9회만이 아닌 12회까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고서도 인정(?)을 못받는 불운한 선수가 있다. 바로 피츠버그 파이러츠의 하비 해딕스였다.
행운과 불운은 종이 한장 차이
1959년 5월 26일 밀워키의 카운티 스타디움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던 홈팀인 브레이브스와 4경기 차이로 3위인 피츠버그 파이러츠가 3연전의 첫 경기를 가졌다. 브레이브스의 선발 투수는 전년도에 20승(10패)을 거두었고, 그 때까지 7승 2패의 호조를 보이던 에이스인 루 버데트였다. 이에 맞서서 파이러츠는 이번 시즌에 레즈에서 트레이드로 영입된 하비 해딕스(당시 4승 2패)를 마운드에 올렸다.
사실 하비 해딕스가 감기 몸살로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파이러츠의 감독인 대니 머토프는 5, 6회 정도만 막아주기를 바랬다고 한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하비 해딕스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피칭을 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전년도에 리그를 우승한 브레이브스는 리그 최강의 콤보인 에디 매튜스와 행크 아론 등을 앞세운 막강 타선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하비 해딕스가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해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팀이었다.
하비 해딕스는 닉네임이 '새끼 고양이 Kitten'인 것에 알 수 있듯이 신장과 체중이 176㎝, 70㎏에 불과할 정도로 왜소한 체격의 좌완 투수였다. 21살이던 1947년에 카디널스에 입단한 그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것은 26살이던 1952년 8월 20일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약 6년을 보낸 점과 그의 체격 조건을 더해서 생각하면, 투수로서 재능이 별로 없는 그런저런 선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47년에 19승과 함께 268탈삼진으로 캐롤라이나 리그 MVP에 선정되었고, 1950년에도 투수 부분 3관왕에 최다 완투 등을 기록할 정도로 마이너리그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정상적이라면, 1951년에는 메이저리그로 승격될 그였지만, 한국전쟁에 징병되면서 1951년과 1951년에는 어쩔 수 없이 공백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를 잡은 1953년에 하비 해딕스는 20승 6패 방어율 3.06 등에 리그 최다인 6완봉승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신인왕 투표에서는 단 4표를 획득하는데 그치면서, 11표를 얻은 다저스의 짐 길리엄에게 원사이드하게 눌렸다. 니그로리그 출신인 짐 길리엄이 거둔 성적은 타율 0.278, 6홈런, 63타점, 21도루 등에 불과했다. 신인으로서는 매우 뛰어난 100 베이스 온 볼스를 얻어낸 점이 눈에 띄지만, 지금의 눈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투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가히 충격적인 시즌을 보낸 그는 이후로 수치들이 추락했지만, 1954년에는 18승(13패), 12승(16패) 등을 거두었다. 1956년 5월에는 필리스로 트레이드된 그는 1957년에 10승(13패)을 기록하면서, 5년 연속 두자리 수 승리를 챙겼다. 1958년에는 레즈로 다시 트레이드된 후 8승(7패)에 머무는 부진을 보였던 그는 대형 트레이드로 1959년에는 파이러츠의 유니폼을 입었다.
전년도에 리그 2위에 머문 파이러츠는 젊은 선수를 이끌 팀의 중심 선수를 영입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파이러츠는 팀의 중심 타자인 프랭크 토머스 등 4명의 선수를 레즈로 보내고, 대신에 강력한 리드쉽을 가진 돈 호크와 공수를 겸비한 포수인 스모키 버지스, 그리고 마운드의 강화를 위한 하비 해딕스를 받아들였다. 이 트레이드는 파이러츠 구단 역사상 최고의 빅딜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MLB 역사상 최고의 피칭을 보인 키티쨩
1회말 조니 오브라이언과 에디 매튜스, 행크 아론을 가볍게 삼자 범퇴로 처리한 하비 해딕스는 정규 이닝인 9회를 넘어서 12회까지 단 한명의 타자도 1루로 출루시키지 않았다. 3회 1사 후에 자니 로건이 유격수 키를 살짝 오버하는 라이너를 쳤지만, 딕 스코필드가 살짝 점프하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포구하였다. 11회 1사 후에 웨스 코빙턴의 중전 안타성 타구는 빌 버든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이 정도가 구태여 말해서 12회 퍼펙트 게임을 위협한 상황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비 해딕스는 감기 몸살로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고, 설상가상으로 7회부터는 비가 뿌리는 짖궂은 날씨 속에서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가 역사적인 호투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완벽한 제구력 덕분이었다. 파이러츠의 포수인 스모키 버지스는 "그가 구사하는 4가지 구종 - 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이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핀 포인트 컨트롤을 보였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또한, 실제로 타자와의 승부에서 볼 카운터가 불리한 경우는 한 두번에 불과했다고 한다.
투수로서 생애 단 한번 맞기도 힘든 행운(?)을 거머쥔 하비 해딕스이지만, 신은 브레이브스의 루 버데트에게도 호투를 펼치는 행운을 주면서 공평함을 과시하였다. 루 버데트는 13회까지 12피안타 무사사구 완봉쇼를 펼쳤다. 한 이닝 2안타 이상을 허용한 것은 3회와 9회 단 2번밖에 없었다. 파이러츠와 하비 해딕스로서는 3안타를 치고서도 한 점도 올리지 못한 3회초 공격이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선두타자인 돈 호크가 2루쪽 내야안타로 출루했지만, 로먼 메히아스의 3루 땅볼에 2루에서 포스 아웃되면서 아웃 카운터만 하나 추가되었다. 문제는 하비 해딕스의 투수쪽 내야안타가 터졌을 때에 로먼 메히아스가 3루까지 달리는 무리한 베이스 런닝으로 1사 1, 2루가 될 상황이 2사 1루가 되었다. 게다가, 후속타자인 딕 스코필드가 우전안타를 쳤기에, 로먼 메히아스의 주루 플레이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운명의 13회말 하비 해딕스는 선두타자인 펠릭스 만티야를 볼 세개로 투스트라이크 원볼로 유리한 볼카운터를 만들었다. 궁지에 몰린 펠릭스 만티야는 제4구를 쳤지만, 지극히 평범한 3루 땅볼이었다. 이 평범한 타구를 3루수인 돈 호크가 언제나처럼 잡고서 1루에 던졌다. 그런데, 그 송구가 1루수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악송구였다. 허무하게도 에러로 퍼펙트 게임은 12회로 끝이 났다. 처음으로 1루에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 에디 매튜스의 희생번트로 1사 2루가 되었다. 어차피 퍼펙트 게임이 깨진 상황이기에, 하비 해딕스는 행크 아론을 고의사구로 거르면서 1루를 채웠다.
1사 1, 2루에서 배터박스에 선 타자는 조 애드콕이었다. 그는 앞선 4번의 타석에서 2개의 삼진을 당하였고, 단 한개의 볼도 외야에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스트라이크 노볼에서 던진 하비 해딕스의 제2구를 받아친 조 애드콕의 타구는 높이 치솟아서 좌중간 펜스를 훌쩍 넘어갔다. 40번의 타격 기회에서 유일한 히트, 그것도 끝내기 홈런이 나오자 관중들은 열광했고, 브레이브스의 선수들도 상기되었다.
2루 주자인 펠릭스 만티야가 홈을 밟는 것을 본 행크 아론은 2루를 지난 후에 3루가 아닌 덕아웃으로 직행하였다. 아마도 계속된 대기록으로 인해 심신이 지친 상황에서 나온 본헤드 플레이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던 조 애드콕은 2루에 이어서 3루를 돌았다. 결국, 이 경기의 스코어는 3 : 0이 아닌 1 : 0이 되었다. 또한, 조 애드콕의 타구는 홈런이 아닌 2루타가 되었고, 앞선 주자를 앞질렀기에 아웃으로 처리되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12회 퍼펙트 게임
하비 해딕스는 이후로 1963년까지 5년간 파이러츠에서 활약한 후에 1964년에는 오리올스로 이적하였고, 1965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특히, 빌 마제로스키의 끝내기 홈런으로 파이러츠가 믿을 수 없는 넘버원에 오른 1960년 월드시리즈에서는 2경기에 등판해서 2승과 함께 방어율 2.45 등을 기록하였다. 은퇴 후에는 파이러츠를 비롯해서 메츠, 레즈, 인디언스, 레드삭스 등에서 투수 코치를 역임하였고, 1994년 1월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사실 그의 12이닝 퍼펙트 게임은 지금은 레코드 북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원래는 공인된 기록이었다. 1991년에 메이저리그가 기록을 재정리하면서, 노히트 경기를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 이 재정의로 인해서, 하비 해딕스의 전무후무한 12이닝 퍼펙트 게임은 원히터 게임으로 강등되었다. 어쩌면, 14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면서, 1958년부터 1960년까지 3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낀 것이 유일한 수상 기록인 그에게 어울리는 불운한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날 경기장을 찾은 19,194명의 브레이브스 팬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진 12이닝 퍼펙트 게임을 다음 세대로 다음 세대로 구술 전승시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는 공인받지 못한 대기록이지만, 야구 팬들에게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대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는 면에서 생각하면, 하비 해딕스야말로 '최고의 행운아'는 아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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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번에 좌충우돌! 블로그! 영화와 놀다 2008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기담이 선정되었습니다. 200분에 한해서 볼 수 있는데, 아직 여유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나 이 날 시간이 되시면, 기담을 보고난 후에 야구를 안주 삼아서 맥주나 한잔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청은 여기에서 할 수 있습니다. 신청하신 후에 이메일 주소를 이 포스팅에 비밀글로 남겨 주십시오. 그럼, 제 핸펀 번호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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