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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 한국, 타이완, 멕시코, 푸에르토리코나 도미니카 등의 윈터리그 등 한 시즌의 경기수는 제각각이지만, 세계 각지에서 프로야구가 행해지고 있다. 그런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최다 홈런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배리 본즈가 2001년에 기록한 73홈런이다. 사실 니그로리그의 전설적인 강타자인 조쉬 깁슨이 한 시즌에 무려 84홈런을 친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하지만, 조쉬 깁슨의 홈런 기록 중에서 정확하게 그 숫자가 남아 있는 한시즌 최다 홈런은 75개인데, 그 연도가 책에 따라서 1930년부터 1932년까지 제각각이다. 즉, 그가 한 시즌에 정확하게 몇 개를 기록했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 다들 잘 알고 있지만 - 이승엽과 오 사다하루가 기록한 56홈런과 55홈런이다. 한 시즌에 치루는 경기 수에 차이가 있지만, 이것을 그대로 메이저리그에 대입하면, 공동 16위와 19위에 해당한다. 결국,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서 한 시즌에 기록한 최다 홈런은 배리 본즈의 73홈런이다. 그렇다면, 2위는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이 참 바보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당연히 1998년에 마크 맥과이어가 기록한 70홈런이라고 누구나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마크 맥과이어보다 더 많은 한 시즌에 72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1954년에 롱혼 리그의 로스웰 로케츠에서 활약한 조 바우먼이다. 그의 이름을 단 한번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조 바우먼은 만년 마이너리거였다. 1954년에 72홈런이라면, 로저 매리스가 61홈런을 치기도 전인 점을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이런 거포가 메이저리그에 단 한번도 승격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마이너리그를 대표하는 희대의 슬러거였던 짐 바우먼은 왜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의문의 답을 찾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과거로 여행을 떠나도록 하자.

잊혀진 불운한 홈런왕

1922년 4월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난 조 바우먼은 고교시절에 보인 재능이 눈에 띄어서 졸업1941년에 독립리그인 노스이스트 아칸소리그에 있던 뉴포트에 입단하였다. 당시의 독립리그는 유망한 선수들을 영입해서, 그 선수를 키워서 메이저리그에 판매하는 중계상인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예를 들면, 메이저리그의 메시아적인 존재인 베이브 루스도 독립리그에 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지금 메이저리그에 있는 팀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에 스카우트되면서, 프로 야구 선수가 되었고, 그를 눈여겨 본 레드삭스가 그의 계약을 사들였다.

하지만, 그의 직업 야구 선수로서의 인생은 처음부터 꼬였다. 1942년에 세미 프로 팀에서 활약하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필드가 아닌 군수 공장이나 전장을 누빌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운 좋게도 살아서 돌아온 그는 1946년에 웨스트 텍사스 - 뉴 멕시코리그에 있던 애머릴로에서 48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을 차지하였고, 타율 0.301, 159타점 등을 기록하였다. 1947년에는 홈런수가 격감한 38홈런에 머물렀지만, 고타율인 0.350 등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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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으로 웨스트 텍사스 - 뉴 멕시코리그를 초토화시킨 그는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았고, 보스톤 브레이브스가 그의 계약을 매입하였다. 일단 그를 브레이브스는 3A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에서 전년도에 우승을 차지한 밀워키에 보냈다. 하지만, 그의 포지션인 1루에는 전년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하인즈 베커가 있었고, 주전 경쟁에서 밀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2A인 이스턴리그의 하트퍼드로 강등되었다.

한번 꼬이면 더욱 더 꼬인다는 머피의 법칙은 조 바우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하트퍼드에도 메이저리그 출신인 레이 샌더스가 주전 1루수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결국, 조 바우먼은 대타나 백업 멤버로 겨우 276타수의 타격 기회를 가지면서, 타율 0.275, 10홈런 등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당시 그의 월봉은 마이너리그에서는 높은 수준인 600달러였는데, 브레이브스는 400달러로 삭감하려고 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천문학적인 연봉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라고 해도 생활 자체가 보장되는 선수는 매우 드물었다. 사실 월봉 600달러는 다른 직업보다 더 많은 급여였지만, 야구를 할 수 없는 겨울에는 모아둔 것을 까먹거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봉도 매년 계약을 갱신하던 시스템이었기에,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는 한 더 많은 돈을 거머쥘 수는 없었다. 실제로는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도, 선수의 소유권이 완전히 구단에게 종속되어 있었기에, 연봉 상승은 거의 기대할 수 없었고, 약간만 성적이 하락해도 구단은 바로 삭감하고 있었다.

무한착취가 상식이던 시대

이 시절을 그는 "플레이를 펼치는 곳이 밀워키던지, 애머릴로던지, 아니면 하트퍼드던지 급료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또한, 메이저리그에 승격된다고 해도, 테드 윌리엄스와 같은 슈퍼스타가 되지 않는 한 밥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회상하였다. 도저히 연봉 삭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길거리에서 구두끈을 파는 것이 낫겠다"고 항의했지만, 구단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삭감된 금액에 계약을 갱신하던지, 아니면 임의탈퇴다"는 대답이었다.

구단의 처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 바우먼은 그대로 짐을 챙겨서 오클라호마로 낙향하였다. 즉, 그의 계약은 여전히 브레이브스에 묶인 상태로, 그가 다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브레이브스에 복귀하던지, 아니면 그를 영입할 의도가 있는 팀이 계약을 브레이브스로 매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번 계약을 맺으면, 구단이 방출하지 않는 한 은퇴할 때까지 그 구단에 묶일 수밖에 없는 노예와 같은 신분이 당시의 야구 선수들이었다.

조 바우먼이 돌아왔을 때에 오클라호마는 오일 붐으로 돈이 넘쳐나고 있었다. 특히, 엘크 시티에서는 이 주체할 수 없는 돈으로 최강의 세미 프로팀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조 바우먼에게 영입을 타진하였다. 브레이브스와의 계약이 문제가 되었지만, 메이저리그의 구단이 지방의 세미 프로팀까지 신경을 써고 있지는 않았기에, 조 바우먼은 엘크 시티에서 1949년부터 1951년까지 3년간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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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 프로팀에서 받는 급료도 많지는 않았다. 이것은 메이저리그라고 해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연봉이 1만 달러 이상을 받는 선수는 극소수의 스타 플레이어에 한정되었다. 자신의 신분이 오로지 구단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기에,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구단이 제시하는 금액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임의탈퇴될 뿐이었다. "누가 얼마를 받으니까 이 금액의 만족하라"는 주먹구구식의 연봉 제시가 그 시대의 상식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열정을 쏟은 것은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가졌던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제안이 들어온 것은 1951년 시즌이 끝났을 때였다. 이제 선수로서는 황혼기에 접어든 30살이 된 그에게 아테시아에 있던 구단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브레이브스의 계약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신에, 1년간 아테시아에서 활약하는 조건이었다. 여전히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있던 그로서는 불만이 없는 호조건이었다.

새로운 역사를 세우다

1952년 조 바우먼은 롱혼리그의 아테시아에서 139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371, 50홈런, 157타점 등으로 2관왕(홈런과 타점)에 올랐다. 1953년에도 132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375, 53홈런, 141타점 등을 기록하였다. 시즌이 끝난 후에 아테시아는 달라스라는 구단과 합병을 하게 되었고, 조 바우먼은 약간의 보너스를 받는 조건으로 로스웰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노후를 대비해서 이전부터 모아둔 돈으로 텍사코에 주유소를 구입하였다. 낮에는 주유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구를 할 생각이었다. 안정된 생활의 보장이 그를 최고의 시즌으로 이끌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후에 그는 그 특별했던 시즌에 대해서 "아마도 그 해는 능력의 한계를 훌쩍 초월했던 내 야구 인생의 전성기였는지 모르겠다. 부상은 커녕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볼을 펜스 너머로 넘겨 버린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로서도 도저히 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고 회상하였다. 이전까지 마이너리그에서 한 시즌 최다 홈런은 1933년에 미니애폴리스 밀러의 조 하우저가 기록한 69홈런이었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도 그렇고, 시즌 중에 믿을 수 없는 홈런 페이스를 보였지만, 조 바우먼 자신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조 하우저의 69홈런을 갱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8월 30일까지 64홈런을 기록하고 있던 조 바우먼에게 남은 경기는 6경기였다. 한 경기 당 한개를 쳐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8월 31일 조 바우먼은 믿을 수 없게도 4개의 홈런을 몰아쳤고, 9월 2일에는 시즌 69호를 담장 너머로 날려 버렸다. 이제 남은 경기수와 홈런수는 각각 4경기와 1개의 홈런이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화되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빅 스프링에서 가진 더블 헤더에서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포수가 일어서지만 않았을 뿐 도저히 칠 수 없는 볼만 주구장창 던졌다.

시즌 최종전은 전년도까지 자신이 몸 담았던 아테시아와의 더블헤더였다. 이미 경기 결과와는 상관이 없이 우승을 확정짓고 있던 아테시아의 감독은 조 바우먼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하라고 투수들에게 지시했다.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지 여부는 오로지 너의 방망이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로스웰의 감독도 한번이라도 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를 1번타자로 기용하였다. 더블헤더 제1차전 1회말 리드오프로 타석에 선 조 바우먼은 2스트라이크 2볼에서 제5구를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고, 배트에 맞은 볼은 쭉쭉 뻗어서 우측 펜스를 훌쩍 넘어갔다. 기록의 압박감에서 벗어난 그는 2차전에서도 2개의 홈런을 추가하면서, 마이너리그 역대 한시즌 최다 홈런을 72개로 늘렸다. 그리고, 그의 시즌 성적은 138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400, 72홈런, 224타점 등이었고, 당연히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였다.

Year Player G AB R H 2B 3B HR RBI SO BB BA
1954 Joe Bauman 138 498 228 199 35 3 71 224 - 150 .400
2001 Barry Bonds 153 476 129 156 32 2 73 137 93 177 .328

마이너리그를 완전히 초토화시켰지만, 그의 적지 않는 나이 탓인지 메이저리그로부터의 영입 제안은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조 디마지오가 있었던 것으로 유명한 3A인 샌프란시스코 실즈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지만, 조 바우먼 자신이 거절하였다. 부인이 지금의 안정된 생활에 변화를 주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1955년에는 타율 0.336, 46홈런, 132타점 등을 기록하였지만, 1956년에는 부상으로 52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는 가운데 17홈런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 해를 끝으로 조 바우먼은 메이저리그를 단 한번도 밟지 못한 채로 유니폼을 벗었다. 세미 프로팀과 전쟁 등으로 6년을 허비한 그의 마이너리그 통산 성적은 1919경기에 출전해서, 1166안타, 337홈런, 1057타점, 타율 0.337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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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자가 2001년에 배리 본즈가 73홈런을 친 것에 대해서 느낌을 물었을 때에, 그는 "배리 본즈가 그 홈런을 치는 것을 TV로 봤다. (나의 기록이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 등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이것으로 '나의 기록도 깨졌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 누구로부터도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마이너리그 한시즌 최다 홈런의 주인공인 조 바우먼은 2005년 9월 20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조 바우먼은 베이브 루스나 조쉬 깁슨, 로저 매리스, 윌리 메이스 등과 진정한 홈런타자를 가리는 홈런 더비를 펼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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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손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