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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는 미국의 "내셔널 패스타임(국민적인 오락)"으로서, 무려 1세기 반 이상이나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시간만큼이나 갖가지 각본없는 드라마가 연출되었고, 또한 수많은 기록들이 세워졌다. 흔히들 야구를 "기록의 스포츠"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구상에 수많은 스포츠들이 있었고, 있었지만, 야구만큼이나 '기록'을 중시하는 스포츠는 없다고 단언해도 틀린 말이 아닐정도로, 야구에서 '기록'을 뺀다면 그것은 '안코없는 찐빵'이다.

기록 경기로서의 야구

야구에서 '기록'은 단순히 한 시즌에 달성된 전인미답의 성적뿐만이 아니라, 선수가 생애에 걸쳐서 필드 위에서 흘릴 땀과 정열의 결정체인 '통산기록'도 포함하고 있다. 야구의 '기록'에는 '역사'가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1927년에 베이브 루스가 기록한 한 시즌 60홈런은 1961년에 로저 매리스가 갱신하였고, 그 기록은 1998년에 마크 맥과이어에 의해서 깨졌다. 마크 맥과이어의 70홈런도 2001년에 배리 본즈에 의해서 갱신되었다. 또한, 베이브 루스가 22시즌 동안에 이룩한 통산 714홈런을 1974년에 마지막 니그로리거인 행크 아론이 갱신하였고, 행크 아론의 통산 755홈런은 2007년에 배리 본즈가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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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MLB.com

한 시즌 한 시즌 선수들이 쌓아올린 기록에, 그것이 역사에 남을 이정표가 되던지 그렇지 않던 관계없이 우리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일희일우하기도 하고, 선수들이 필드에 표출하는 희노애락은 그대로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선수들과 우리는 그라운드와 관중석이라는 서로 분리된 공간에 존재하지만, 서로 그 감정을 소통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는 야구가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메이저리그가 일반화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1994년에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신인으로서 통산 14번째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를 잡은 박찬호가 맹활약한 시기에 한국은 IMF라는 위기가 닥치면서,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단순한 개인을 넘어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인 프로스포츠의 선수에게 지나치게 국가주의가 투영되면서 그 폐해도 적지 않다. 무리하게 이른바 '코리안리거'에게 태극기를 그 어깨에 붙임으로서, 메이저리그는 야구가 아닌 국가간의 전쟁터로 각인되고 있는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자체가 '코리안리거'를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기에,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모른다고 해서 메이저리그를 즐기는데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이 펼치는 화려한 플레이 등을 보면서, 메이저리그라는 또 하나의 '프로야구'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쓰여진 그 역사를 알게 될 경우에는 더 많은 즐거움을 메이저리그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메이저리그를 흔히들 "또 하나의 미국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듯이, 지난 시간들 속에 함축되어져 있는 의미는 단순히 야구나 그라운드에 한정되지 않는다.

미국에서의 MLB, 미국밖에서의 MLB

인지 생물학자인 움베르토 마투라나는 "이 세계에 흐르고 있는 규칙성들은 모두다 우리가 겪어온 생물학적 사회적 역사의 산물"이라는 요지의 말을 하였다. 야구 - 여기에서는 좁은 의미로, 메이저리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글러브나 배트, 볼, 헬멧 등 야구장비를 비롯해서, 야구장, 투구폼, 타격폼, 주루플레이, 룰 등 야구와 관련된 모든 것이 진화해왔고,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또한, 야구는 사회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해왔다. 반세기 이전에 메이저리그는 오로지 백인들만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종과 국적 등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로 융화되고 있다.

사실 메이저리그가 미국에서 '국민적인 오락'으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유도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분열을 딛고 사회적 대통합을 이루는데 공헌한 것이 야구였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러시아 등에서 연간 100만명 이상의 이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들의 대부분은 탄광이나 공장 등에서 육체노동자로서 최하층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에서 야구볼과 배트로 돈과 명예를 거머쥔 메이저리그의 스타는 "아메리카 드림"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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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MLB.com

이 "베이스볼 드림"은 100년 전의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지금 현재도 메이저리그의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통해서 중남미의 수많은 청소년들이 꿈꾸고 있고, 또한 극소수는 그 꿈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노모 히데오나 박찬호, 왕첸밍 등 아시아출신의 메이저리거가 속속 탄생하면서, 이 꿈은 태평양을 건너서 아시아와 오스트렐리아 등 전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하지만, 이 "베이스볼 드림"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적 대통합, 혹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세계에 인식시킬 수 있지만, 그 반대쪽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정치적으로는 군사 독재에, 경제적으로는 다국적 기업에게 완전히 예속된 중남미에서 야구는 마약 그 자체이다. 중남미에 세워진 메이저리그의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는 오로지 정치적으로 거세된 야구기계만을 만들어낸다. 중남미에서 "양키 고 홈"은 들을 수 있어도, "양키스 고 홈"은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일확천금을 받을 수 있는 메이저리그에 인생을 건 중남미의 청소년들은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야구와 구단이나 상급자에 대한 복종만을 배우고 있다. 거의 아동착취에 버금가는 야구 교육 속에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숫자의 몇 배가 부상으로 평생 고통을 받고 있거나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인이 아닌 우리에게 MLB는 무엇인가

또한, 이 어두운 현실이 중남미를 넘어서 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다. 리그의 톱스타 플레이어 등의 유출로 일본이나 한국의 프로야구는 위기를 맞고 있고, 다저스와 파드레스의 시범경기를 갖는 등 메이저리그의 중국진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한 손에는 압도적인 자본과 또 다른 한 손에는 스타 플레이어를 앞세운 메이저리그의 진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일본의 경우처럼 단순히 메이저리그의 경기를 미국에 가지 않고서도 볼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고 기뻐하기에는 상황이 그렇게 편치만은 않다.

이것은 단순히 메이저리그의 진출로 인해 일본이나 한국, 타이완 등의 독자적인 프로리그가 메이저리그의 하부조직화된 중남미의 프로리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그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펠리페 알루는 "야구(메이저리그)는 100% 자본주의 사업이다. 착취할 수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착취가 벌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의 중국진출은 단순히 세계 최대 시장을 공략한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중남미보다 더 싼 값에 노동력(플레이어)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다. 전지구적인 제로 섬적인 무한경쟁을 내세운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되고 있는 사회적인 상황과 맞물려서 세계 야구계는 메이저리그에 빠른 속도로 종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메이저리그에 열광하거나 좋아한다는 것은 어쩐지 뒷통수가 따가울 수밖에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메이저리그를 하나의 보는 야구로서 즐긴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야구는 야구일 뿐이다"고 합리화시키기에는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 부족한 부분을 바로 메이저리그의 지난 시간들, 즉 역사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는 야구의 매력은 필드의 선수와 함께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희노애락은 승패나 성적에 따른 감정이라는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으로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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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MLB.com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는 말이 있는데, 백인의 입장에서 인디언은 죽어야만 좋은 인디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말처럼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대부분의 메이저리그와 관련된 글은 "좋은 선수는 죽은 선수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로지 구단이나 기득권을 가진 백인 사회의 시각으로만 메이저리그를 바라보고 있는 글들이 양산되었고, 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흑백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에 의해서 1947년에 20세기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인 재키 로빈슨이 탄생할 수 있었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선수의 대명사격인 히스패닉계 메이저리거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푸에르토리코의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자신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니카라과의 난민을 위해서 구호활동을 펴다가 생에 종지부를 찍은 사실 등은 무시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FA제도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커트 플러드가 법정에서 "9만달러라는 거액의 몸값을 연봉으로 받고 있지만, 자신은 100년 전의 노예와 같은 신분"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구단에게 완전히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노예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단 한줄의 언급도 없이, 단지 그 결과물인 FA를 통한 대박만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역사만이 아닌 과거의 역사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서 주류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의 눈으로서 메이저리그를 바라보고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메이저리그는 미국의 내셔널 패스타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야구의 인터내셔널 패스타임을 향한 일부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 H. 카는 역사를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고 정의하였다. 이 말은 메이저리그나 프로야구와 같은 보는 야구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프로야구란, 팬과 사실의 끊임없는 대화이다고 ... ...



이 글은 미디어다음 해외야구에 기고된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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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손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