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루나 수비에서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이없는 실수를 본헤드 플레이라고 부른다. 본헤드 플레이의 대표적인 예로서
다저스의 3명의 주자가 3루에서 자리 쟁탈전을 벌인 일은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다저스가 브룩클린에 있던
1926년 8월 15일에 열린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1 : 1 동점이던 6회말에 무사만루의 찬스에서 다저스의 타자가 친 타구는
홈인 에베츠필드의 라이트 펜스를 직격하는 타구를 쳤다. 당연히 3루 주자는 홈을 밟으면서 2 :1로 다저스가 경기를
역전시켰지만, 그 다음부터 역사에 남을 코메디는 시작되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서 홈을 노렸고, 1루 주자는 2루를 돌아서 3루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타자 주자도 이미 1, 2루를 지나서 3루를 향하고 있었다. 타자 주자가 1루 주자의 바로 뒤를 달리게 된 것은 그의 발이 엄청 빠른 것도 있었지만, 그 타구가 중견수에게 잡힐 것이라고 1, 2루 주자가 판단했기에 스타트가 늦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1루 주자가 3루를 돌아서 홈을 밟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한 3루 코치는 타자 주자를 향해서 "돌아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그 고함 소리에 반응한 것은 홈을 파고 들던 2루 주자였다.
3루로 돌아온 2루 주자인 대지 밴스의 눈에는 3루를 밟고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1루 주자인 칙 퓨스터가 보였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타자 주자도 3루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결국, 타자 주자와 1루 주자는 아웃으로 처리되면서, 추가 득점은 커녕 2사 3루가 되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홈관중들도 배를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경기는 다저스가 4 : 1로 승리했는데, 경기가 끝난 후에 다저스의 감독인 윌버트 로빈슨은 '3루에서의 3자 회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언제나 따로 놀던 3명이 간만에 함께 힘을 합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지만 ..."이라고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역사에 남을 본헤드 플레이의 주인공 중의 한명인 타자 주자는 "모두들 그 플레이로 인해 내가 승리타점을 올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고 당당하게 큰 소리를 쳤다. 이 때의 타자 주자가 바로 베이브 허먼이었다.
레드삭스가 놓친 또 한명의 '밤비노'
베이브 허먼이라는 성과 이름에서 야구 매니아라면, 베이브 루스를 떠올릴 것이다. 베이브 루스의 본명은 조지 루스 허먼으로, 베이브는 그가 마이너리그 시절에 팀 동료들이 부른 별명이었다. 본명이 플로이드 캐버스 허먼인 그가 '베이브'라는 별명을 사용한 것은 '밤비노'와는 약간 관련이 있을 뿐이다. 베이브 루스와 마찬가지로 그도 마이너리그 시절에 가장 어린 선수였던 관계로 팀 동료들이 '베이브'라고 부른 것이 이름으로 정착한 케이스였다. 또한, 베이브 루스와 마찬가지로 좌타자에 우익수를 주로 맡았고, 1930년에는 35홈런을 기록하였고, 컵스 시절이던 1933년에는 리글리필드에서 3연타석 홈런을 친 적이 있지만, 장거리포라기보다는 중거리포였다.
베이브 허먼은 18살이던 1921년에 독립리그인 웨스턴 카나다 리그에 있던 에드먼턴과 계약을 맺어면서,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22년에는 타이거스로 이적해서, 스프링캠프에서 데드볼시대를 대표하는 대타자인 타이 콥의 핀치히터로 출전하는 영광(?)을 누리면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예전에는 그가 대타 만루홈런을 기록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안타를 쳤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 타이거스의 외야진은 감독겸 선수인 타이 콥이 중견수로, 그 전해에 207안타와 타율 0.338를 기록한 바비 비치와 타율 0.394로 타이콥을 제끼고 타율왕에 오른 해리 헤일먼이 각각 좌우익 코너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신예인 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결국, 마이너리그인 오마하로 보내진 그는 92경기에서 타율 0.416를 기록하는 등 시위를 벌였지만, 시즌이 끝난 10월 30일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레드삭스 역시 이제 약관인 그를 메이저리그에서 쓸 생각이 없었기에, 베이브 허먼은 2년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였다.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팔아먹는 최악의 선택을 했던 레드삭스는 또 다른 '밤비노'인 베이브 허먼을 1925년에 독립리그의 시애틀에 그의 계약을 넘겨버렸다. 어영부영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면서 나이만 먹고 있던 그는 우연히 다저스의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서,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926년에 다저스의 주전 1루수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베이브 허먼은 모두에서 언급한 3루에서의 3자회담이라는 황당 플레이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8월 초에 1919년 에드 코넷치의 팀 기록인 10타석 연속 안타에 단 1안타 모자란 9타석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타율 0.319, 11홈런, 81타점이라는 신인답지 않는 시즌 성적을 기록하였다. 1927년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원래의 포지션인 외야로 옮긴 1928년에는 타율 0.340 등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1929년에는 217안타와 21홈런, 21도루, 113타점, 105득점에 타율 0.381 등의 성적을 찍어면서 일약 다저스를 대표하는 타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하지만, 이 성적도 1930년을 위한 워밍업에 불과했다.
나에게 수비는 없다. 오로지 공격 뿐
1930년에 베이브 허먼은 타율 0.393, 241안타, 35홈런, 130타점, 143득점 등을 기록하였다. 타율 0.393는 양대 리그가 발족한 1901년 이후로 NL에서는 역대 8번째로 높은 고타율이었지만, 'NL의 마지막 4할 타율'을 기록한 자이언츠의 빌 테리로 인해 1929년에 이어서 2년 연속으로 타율 2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가 기록한 타율(0.393), 출루율(0.455), 장타율(0.678), 안타수(241) 등은 지금 현재도 다저스의 팀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31년에는 5월 18일과 7월 24일에 레즈와 파이러츠를 상대로 한 시즌에 2번의 사이클 히트를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지금까지 한 시즌에 2번이나 사이클 히트를 작성한 경우는 1883년과 1887년에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에서 존 라일리와 팁 오닐밖에 없다. 또한, 컵스로 이적한 1933년 9월 30일에도 카디널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3번째 사이클 히트를 기록하였다. 한 선수가 통산 3번이나 사이클 히트를 기록한 것은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존 라일리와 아메리칸리그의 밥 뮤절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베이브 허먼은 어떤 선수일까? 그의 기록이나 각종 일화 등을 종합했을 때에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였다. 한 시즌 최다 도루가 21도루(1929년)에 100개도 되지 않는 통산 94도루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모두의 본헤드 플레이나 통산 110개의 3루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뛰어난 스피드를 지닌 선수였음은 틀림이 없다. 또한, 파워와 정확성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강한 어깨를 가진 외야수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의 외야 수비는 작년의 라이언 브라운에 비견될 정도로 블랙홀이었다.
그의 수비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 - 사실은 이 이야기도 그의 4차원적인 정신 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저스 시절에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사칭해서 위조수표를 사용한 일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 때 그는 "앞으로 그런 자가 있다면, 플라이볼을 하나 둘 쳐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 플라이볼을 어려움 없이 잡는다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1927년에 외야에서 그가 기록한 에러 수는 16개로 수비율은 0.937에 불과했다. 그에게 외야 플라이는 만세를 부르거나 머리로 헤딩을 하는 축구선수로 변신하는 도구였다.
또 한번은 그가 스프링캠프에 참석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이유에 대한 물음에 그는 "스프링캠프에 참석하지 않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플라이볼에 맞는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고 대답하기도 하였다. 그로서는 메이저리그가 지명타자제도를 왜 그렇게 늦게 도입했는지라고 원망하지는 않았나 싶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대부분 NL에서 활약하였기에, 지명타자제도와는 어차피 인연이 없었겠지만 ... ...
야구 선수를 가장한 몸개그의 달인
1932년에는 트레이드로 레즈의 유니폼을 입고서, 타율 0.326, 188안타, 16홈런, 87타점 등을 기록하였고, 1933년에는 다시 컵스로 이적하였다. 타율 0.289로 5년 연속 3할 이상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7월 20일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포함해서 3연타석 홈런을 담쟁이 덩쿨 너머로 날려 버렸다. 이 해에 그가 기록한 16홈런과 93타점은 팀 내 최다 기록이었다. 1934년에는 다시 3할 타율(0.304)에 복귀했지만, 시즌이 끝난 후에 파이러츠로 트레이드되었다.
1935년 시즌 도중에 파이러츠에서 레즈로 트레이드된 그는 34세이던 1937년에는 AL의 타이거스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타이거스에서 타율 0.300을 기록했지만, 부상 등으로 단 17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였고, 시즌이 끝난 후에 방출되었다. 그렇게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던 그는 42세이던 1945년에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복귀하는 깜짝쇼를 펼쳤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젊은 선수들이 대거 징병되면서, 베이브 허먼과 같은 황혼기에 접어든 베테랑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왕년에 다저스의 스타였던 베이브 허먼이 에베츠필드에 복귀 첫 타석에 들어섰을 때에 관중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관중들의 응원에 힘입어서 그는 우전 안타를 기록하였다. 그의 안타에 홈팬들은 환호하였지만, 그 환호는 바로 웃음으로 바뀌었다. 안타를 치고 1루로 달리던 그가 1루 베이스에 걸려서 넘어졌기 때문이다. 정말 그다운 플레이였다. 주로 대타로37경기에 출전한 그는 타율 0.265, 1홈런, 9타점 등을 기록한 후에 유니폼을 벗었다. 은퇴 후에는 파이러츠 등에서 타격 코치나 스카우터로 활동하였다.
모두에서 말한 본헤드 플레이로만 유명한 베이브 허먼이지만,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13시즌을 뛰면서 타율 0.324, 출루율 0.383, 장타율 0.532 등을 통산 성적으로 남긴 뛰어난 선수 중의 한명이었다. 어쩌면 그는 빌 버크너의 알까기를 보면서, 레드삭스를 오랫동안 지배한 '저주'의 주인공인 '밤비노'는 베이브 루스가 아닌 바로 자기자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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