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미국을 '야구의 종주국'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야구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여러가지 설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야구의
원형을 영국의 크리켓에 두고 있지만, 지금 현재는 거의 '조작된 신화'로 간주되고 있는 1893년의 '쿠퍼스타운 설'도 있고,
도미니카나 쿠바 등에도 야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 등이 존재했다. 야구의 시작은 불확실하지만, 문헌상으로 남은 최초의
야구 경기는 '뉴욕 모닝 뉴스'라는 잡지에 1845년 10월 22일에 뉴욕과 브룩클린이 경기를 가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최초의 프로팀인 신시네티 레드 스타킹스가 탄생한 것은 1869년으로, 레드 스타킹스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무려 130연승을 거두는 대활약을 펼쳤고, 레드 스타킹스에 자극을 받아서 각 지역에 프로팀이 앞다투어서 창단되었다. 1871년 3월 17일에는 10개 팀으로 구성된 최초의 프로리그인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이 창립되었고, 1875년까지 존속하였다. 1876년 2월 2일에는 8개구단이 참가한 내셔널 리그가 발족하였다. 1882년에는 내셔널 리그에 대항한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이 창립되면서, 처음으로 메이저리그는 양대 리그로 발전하였다.
1884년에는 세인트루이스의 대부호인 헨리 루카스를 중심으로 유니온 어소시에이션이 창설되지만, 어떠한 장기적인 계획없이 세인트루이스 마룬스의 오너와 리그 회장을 겸한 헨리 루카스가 마음대로 운영한 결과로 단 1년만에 해체되었다. 또한, 1890년에는 '선수의 선수에 의한 선수를 위한' 리그인 플레이어스 리그가 발족하지만, 양대리그의 방해공작과 지나친 과다경쟁으로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재정적으로 내셔널 리그에 비해서 열악했던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도 플레이어스 리그와의 출혈 경쟁의 유탄을 맞고, 1891년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지금과 같은 양대리그의 성립
유일한 생존자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던 내셔널 리그에게 강력한 도전자가 생긴 것은 1900년 1월에 발족한 아메리칸 리그였다. 아메리칸리그의 모체는 독립된 마이너리그인 웨스턴 리그로, 1899년을 끝으로 내셔널리그가 12팀에서 8팀으로 줄어드는 내분을 틈타서, 아메리칸 리그로 확대 개편하였다.
| National League | American League |
| 피츠버그 파이러츠 |
시카고 화이트삭스 |
| 필라델피아 필리스 |
보스톤 아메리칸스 (현 보스톤 레드삭스) |
| 브룩클린 수퍼배스 (현 LA 다저스)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 (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 보스톤 빈이터스 (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
볼티모어 오리올스 (현 뉴욕 양키스) |
| 시카고 오펀스 (현 시카고 컵스) |
워싱턴 세네터스 (현 미네소타 트윈스) |
| 뉴욕 자이언츠 (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클리블랜드 블루스 (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 신시네티 레즈 |
밀워키 브루어스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 |
1901년 4월 24일 오후 3시 35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선발 투수인 로이 패터슨이 클리블랜드 블루스의 올리 피컬링에게 역사적인 제1구를 던지면서 그 시작을 알렸다. 아메리칸 리그가 정식으로 출범했다고 해서, 내셔널 리그가 그 존재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내셔널리그는 2년간 아메리칸 리그를 와해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사용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1902년 시즌이 끝난 후에 내셔널 리그는 아메리칸 리그의 회장인 밴 존슨에게 "내셔널 리그로 들어오라"고 제안을 했지만, 밴 존슨은 오히려 양대 리그로의 존속과 함께 각 리그의 챔피언이 대결을 펼치는 월드시리즈의 개최를 요구하였다.
이 역제안을 내셔널 리그가 받아들이면서, 1903년부터 메이저리그는 제로섬 경쟁에서 공생적인 양대 리그 체제로 전환되었다. 또한, 처음으로 열린 월드시리즈에서는 보스톤 아메리칸스가 피츠버그 파이러츠를 5승 3패로 격파하면서,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1904년에는 그 전해에 아메리칸 리그의 오리올스가 자신들의 연고지인 뉴욕으로 이전한 것에 반발한 자이언츠가 경기를 거부하면서, 월드시리즈는 열리지 못했다.
이와 같은 상식밖의 행동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양대 리그는 7전 4승제의 월드시리즈를 공식화하였고, 1905년부터 재개되었다. 세계 대전 속에서도 한번도 중지되지 않고 계속된 월드시리즈이지만, 1984년에 파업으로 무산된 것을 빼고서는 가을의 축제는 이어지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존립 자체를 뒤흔든 블랙삭스 스캔들
양대리그의 상호 협력 속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던 메이저리그는 1914년과 1915년에는 '제3의 리그'인 페더럴 리그의 도전을 받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법적으로 반독점법에 적용되지 않는 조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1910년대 후반에는 이미 '내셔널 패스타임'로 성장한 메이저리그였지만, 1919년에는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대사건에 휘말렸다. 그 대사건은 '꿈의 구장'이나 '여덟명의 제명된 남자들' 등 영화의 소재로도 사용된 '블랙삭스 스캔들'이다.
당시 화이트삭스는 1917년에 월드시리즈를 제패했을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자랑했지만, 다른 구단에 비해서 저임금에 유니폼의 세탁비나 식비 등도 주지 않는 등 팀 지원에서는 열악함 그 자체였다. 팀의 간판인 조 잭슨과 에디 시카티 등도 연봉 6천달러 이상을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라는 이유로 에디 콜린스가 1만 5천달러에 영입되면서, 선수단의 불만은 더욱 더 고조되었다. 그리고, 그 불만은 1919년에 진출한 월드시리즈에서 폭발하였다.
원투펀치인 에디 시카티와 클라우드 윌리암스에 조 잭슨, 칙 갠딜, 찰스 리즈버그 등 팀의 핵심 선수 7명이 도박사와 짜고 져주기 경기를 펼치기로 합의하였다. 시리즈가 열리기 전에는 그 누구도 화이트삭스가 레즈를 일방적으로 이길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무성의한 플레이 끝에 5승 3패(이 해에만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 월드시리즈가 9전 5승제로 열렸다)로 레즈가 처음으로 월드시리즈를 제패하였다. 월드시리즈에서 벌어진 승부 조작에 관한 소문이 무성하게 퍼진 가운데, 1920년 9월에 구체적인 증언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블랙삭스 스캔들'은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지게 되었다.
법정에서 승부 조작과 관련된 증언과 고백 등이 있었지만, 뜻밖에도 판사인 케네소 랜디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것은 월드시리즈에서 승부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할 경우에는 메이저리그가 존속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을 것을 우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1920년 11월에 초대 커미셔너로 취임한 랜디스는 승부 조작에 관여한 7명과 그 사실을 알고서도 알리지 않은 벅 위버까지 8명의 선수를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하였다.
도덕성 회복을 위한 커미셔너 제도의 도입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여부는 불명확하지만, 블랙삭스 스캔들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타이 콥과 함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인 '맨발의' 조 잭슨이 법정에 출두했을 때에 한 소년이 "거짓말이라고 말해줘. 조!!!"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일화는 메이저리그, 혹은 미국에서 야구가 가진 의미와도 연관이 있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는 실력만 있다면, 그 출신이나 학력 등이 어떻던 명예와 부를 쥘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축소판이다. 그런 메이저리그가 실제로는 실력이 아닌 사기와 부정이 판을 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사실이 '블랙삭스 스캔들'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자신들의 존재 가치가 완전히 부정되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은 메이저리그는 "클린 야구"를 위해 1920년 11월에 커미셔너 제도를 도입하였다. 사실 커미셔너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양대 리그의 회장과 제삼자인 내셔널 커미션이 메이저리그의 최고 기관이었다. 하지만, 리그 회장의 권력 남용이 문제가 되는 등 메이저리그와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에 의한 완전히 독립된 의사 결정 기관이 설립될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그래서, 페더럴 리그이 제기한 '반독점법 위반'과 '블랙삭스 스캔들'의 재판을 맡았던 케네소 랜디스를 초대 커미셔너로 영입하였다.
종신 커미셔너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케네소 랜디스는 일단 '블랙삭스 스캔들'에 관련된 8명의 선수를 영구 추방하였고, 오너들의 부정 행위에도 철퇴를 가하였다. 그의 대쪽같은 이미지를 통해서 메이저리그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엄격함은 이미지뿐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1925년에 타이 콥 등이 관련된 승부 조작 의혹이 불거졌을 때에는 서둘러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면죄부를 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파이러츠 등이 조쉬 깁슨 등 흑인 선수를 영입하려고 할 때에도 아파르트헤이트를 내세워서 원천봉쇄한 과오도 있다.
24년간 철권 통치를 행한 케네소 랜디스는 1944년 11월에 급사하였고, 그의 죽음을 계기로 재키 로빈슨이 20세기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다. '부정과 사기로부터의 클린'을 내세워서 커미셔너가 된 그가 자신의 최후가 '또 다른 클린(인종차별의 철폐)'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된 것은 아이러니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의 커미셔너가 된 인물은 9명으로, 브루어스의 오너 출신인 버드 셀릭이 현직에 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가 '블랙삭스 스캔들'이라는 최대의 위기를 넘어서, 오히려 급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메이저리그의 영원한 아이콘인 베이브 루스 덕분이었다.
이 글은 미디어다음 해외야구에 기고된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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