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여러가지 대답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이유가 '팬'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미국이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어디서나 프로야구는 팬들을 위해 존재한다. 팬이 없다면, 프로야구는 존재할 수가 없다. 팬이 없는 야구팀은 존속할 수가 없다. 팀의 우승이나 대기록, 선수들의 생계와 같은 것들도 이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구단주가 야구팀을 통해 얻는 '이익'이라면 그 중에서도 가장 본질에서 멀리 떨어진, 제일 나중에 고려되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팬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팬이 있기에 프로야구가 존재하는 것이고, 팬들이 있기에 구단주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프로야구팀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팬'보다 우선시하고 있다면, 그 구단은 결코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가 없다.
[메이저리그]라는 오래된 영화가 있다. 쇼걸 출신의 신임 구단주인 레이첼은 만년 꼴찌팀 클리블랜드의 연고지를 마이애미로 옮겨서 거액의 이전 비용을 꿀꺽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러자면 지역 의회에서 팀의 연고지 이전을 승인할 만큼 팀의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레이첼은 어느 팀에서도 데려가지 않을법한 오합지졸 삼류 선수들을 끌어모아 팀을 구성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선수들은 자신들의 숨겨진 재능을 십분 발휘하며 승승장구하고, 구단주의 계획은 무참히 좌절된다.
나는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고, 레이첼 같은 악덕 구단주는 영화 속에만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현실의 메이저리그에도 플로리다 말린스의 제프리 로리아라는 엽기 구단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로리아는 성공적인 구단주인 것처럼 보인다. 1993년 창단 이후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고, 이는 같은 기간 연봉총액 1위 구단인 뉴욕 양키스에 이어 공동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더구나 이런 결과가 3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은 연봉과 운영비로 이루어낸 것이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고 보면 '저비용 고효율'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A-로드 한 명의 연봉만큼도 안되는 말린스의 연봉 총액은 '저비용 고효율'이 아니라 스타플레이어들을 사정없이 팔아치운 결과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2005년 말린스는 A.J. 버넷과 조쉬 베켓, 카를로스 델가도, 루이스 카스티요, 폴 로두카 등의 주전 선수들을 유망주들을 받는 대가로 다른팀으로 트레이드했고, 지난 겨울에도 투타의 양 기둥인 돈트렐 윌리스와 미겔 카브레라를 팔아넘겼다. 이건 마치 삼성이 나지완과 김선빈, 문현정을 받는 대가로 양준혁, 심정수, 오승환을 기아로 팔아치우는 것과 마찬가지 행태다. 팬들이 야구장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보기 위해서다. 팀의 간판 스타들을 단지 연봉이 비싸다는 이유로 팔아치우는 말린스에게 팬들의 사랑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팬들을 버리고 이익을 쫓은 결과, 지난해에도 플로리다 홈 구장인 돌핀 스타디움은 평균 관중 1만 6919명으로 ML 전체 꼴찌를 -당연히- 기록했다. 그럼에도 로리아 구단주는 이익을 본다. 애초에 투자한 돈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여기에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이 내는 1억 3000만불 가량의 수익 분배금 역시 캔자스시티나 말린스 같은 팀들에게 돌아오도록 되어 있으며, 말린스 경기를 중계하는 FSN의 지역방송국에서 나오는 수익 역시 무시할 수준이 못 된다. 말린스라는 팀은 팬들에게는 최악의 구단인지 몰라도, 로리아 구단주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는 셈이다. 구단주의 수익이 팬보다 우선시된다는 점에서, 플로리다 말린스와 정상적인 야구팀의 거리는 후진타오와 달라이 라마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다 하겠다.
한국에도 경우는 다르지만 비슷한 예가 있다. 지난 겨울 프로야구판을 뜨겁게 달궜던 신생 구단 우리담배 히어로즈 이야기다.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할 당시부터 우리담배 박노준 단장은 줄기차게 '메이저리그식 운영'과 '흑자운영'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숱하게 쏟아낸 그의 공약(空約) 중에서 야구팀의 가장 핵심이 되어야할 '팬'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창단 단계에서부터 이미 '수익'을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담배회사를 스폰서로 정했다는 것부터가 이 구단의 목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흑자를 내려면 구조조정은 필수. 그런데 스타들이 즐비한 구 현대의 선수단 연봉은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못 된다. 상식적이라면 플로리다가 한 것처럼 고액연봉 스타들을 저연봉의 유망주와 바꾸거나 자유계약으로 내보내는 것이 수순이겠지만, 박노준 단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구단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 규약을 활용해 외국인 선수 브룸바가 어느 팀으로도 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었다가 헐값에 계약했고, 정성훈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 연봉을 반토막냈다. 연봉은 연봉대로 줄이고, 스타들은 스타대로 보유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플로리다로 치면 미겔 카브레라를 얼러서 연봉을 반토막내고 돈트렐 윌리스를 달래서 30% 삭감된 연봉에 계약하는 식이다. 로리아가 봤다면 굉장히 부러워할, 어디까지나 한국 프로야구니까 가능한 엽기적인 결과다.
그렇다면 플로리다와는 달리 히어로즈는 주축 스타들을 지켜냈으니 팬을 위했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히어로즈와 구 현대 선수들과의 계약은 구단측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반강제로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박노준은 전준호, 김동수 등 노장들이 " 새로 창단하는 우리 히어로즈에는 필요 없는 선수들 " 이고 " 100만원만 준다해도 주는대로 받아야 할 " 선수들이라고 했지만, 실제 연봉 쓰나미를 맞은 노장들은 팀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들이다. 일례로 전준호가 빠진 초반 10경기 우리담배의 도루수(1개)를 보라.
이들은 만일 자유계약으로 풀렸다면 당장 다른 구단에서 원래 연봉 이상을 주고서라도 데려갔을만큼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지닌 선수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터무니없는 계약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자존심과 선수로서의 명예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이들이 당한 참사는 조만간 다른 구단에서 비슷한 형태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야구의 저변 확대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올시즌 뚜껑을 열고 보니, 당초 예상과는 달리 한미 프로야구의 두 비정상 구단 -말린스와 히어로즈- 이 나란히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4월 21일 현재 플로리다는 11승 7패로 뉴욕 메츠를 제치고 NL 동부 1위를 달리고 있고, 히어로즈 역시 9승 10패로 LG, 두산 등 서울 팀들을 따돌리고 4위에 올라 있다. '야구는 돈으로 하는게 아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사례라고 기뻐해야 할까? 어려운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이 피땀을 흘려 일구어낸 성적이 고스란히 누구의 이익으로 돌아갈지를 생각한다면, 마냥 박수만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감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영화 [메이저리그]에서 인디언스의 돌풍은 구단주 레이첼의 몰락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플로리다가 만일 지금처럼 1위를 달리다가 (실수로) 월드시리즈 세번째 우승이라도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우승으로 얻게 되는 각종 이익 -새 구장 건설과 같은- 은 로리아의 배를 불려주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어차피 로리아는 때가 되면 주가가 오른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팔아넘길 것이고, 팀을 위해 추가로 투자를 한다거나 팬들을 위해 프랜차이즈 스타를 붙잡는 일은 하지 않을 게다.
히어로즈 역시 마찬가지다. (유감스럽게도) 히어로즈가 이대로 4강권을 유지하다가 포스트시즌, 심지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서 우승한다고 생각해 보자. 일단 가장 좋아할 대상은 담배업계 후발주자인 우리담배이고, 그 다음은 헐값에 현대를 인수한 센테니얼 관계자들일 게다. 박노준 단장은 자신을 비난하던 야구계 인사들에게 큰소리를 치게 될 것이다. 우리담배의 사례는 프로야구판 거품 빼기의 모범사례처럼 포장되어 각광받을 것이고, 구단의 수익을 위해 선수들을 쥐어짜는 일은 예사가 될 게 분명하다. 과거 80년대 해태타이거즈의 왕조건설이 가져온 가장 큰 폐해는, 투자하지 않아도 악으로 깡으로 하면 된다는 잘못된 야구관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팬들과 선수들을 위해 투자하는 구단만 바보가 된다.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한미 프로야구 두 팀의 돌풍이 두려운 것은 그래서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절망의 끝에 놓였던 팀이 역경을 딛고 대역전을 일궈내는 장면은 스포츠만이 보여줄 수 있는 큰 묘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운영을 하고 '합리적'인 투자를 하는 팀이 해냈을 때의 이야기다. 메이저리그만 해도 대부분의 구단들은 팬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다양한 팬서비스와 프랜차이즈 스타 육성, 성적을 내기 위한 과감한 투자로 많은 사랑을 받고 그에 따라오는 '수익'까지 얻어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SK 와이번스가 '스포테인먼트'를 내세우며 우승과 관중수 대폭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고, 올시즌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그 뒤를 잇고 있다. 롯데의 경우 몇년간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자체적인 쇼핑몰 운영과 다양한 이벤트 등을 통한 팬서비스만큼은 어느 팀 부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처럼 팬들을 위해 투자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구단이 좋은 성적을 낼 때, 리그 전체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게 리그 전체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국내만 해도 팬서비스에 인색하던 구단들이 최근 많은 면에서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SK 같은 후발주자가 팬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다각도에서 노력을 기울인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LG의 스타 시스템이나 훈련시설에 대한 삼성구단의 아낌없는 투자 역시도 다른 구단들이 이어받으며 리그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팀, 또는 '비인간적으로 운영되는 팀'이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좋은 결과를 낸다면. 뿌린대로 거둔다는 자연의 섭리가 유독 야구계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면. 노력과 과정이 허사가 되고 수익과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게 된다면.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걸까. 생각해볼 문제다.
Yagoora(http://yago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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