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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 Klub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존 스몰츠가 4월 22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5피안타 1실점 10탈삼진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역대 16번째로 통산 3,000탈삼진을 돌파한 투수가 되었다. 경기는 아쉽게도 브레이브스 타선이 침묵을 지키면서 시즌 첫 패전을 기록하였다.

G GS W L CG SHO GF SVO SV Hld
IP ERA SO BB BAA OBP SLG WHIP
706
465
210
146
53
16
204
169
154
5
3390.0
3.25
3006
990
.235
.292
.356
1.168

톰 글래빈, 그렉 매덕스와 함께 투수 3인방으로서 1990년대 브레이브스 왕조를 구축했던 존 스몰츠이지만, 그가 처음으로 입단한 팀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였다. 고교를 졸업하던 1985년에 드래프트 22라운드(전체 574순위)에 타이거스의 지명을 받은 존 스몰츠는 투구 폼의 수정 등으로 루키리그와 1A에서 뚜렷한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하였다. 그런 그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은 1987년 8월에 브레이브스로의 트레이드였다. 당시 3년 만에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던 타이거스는 브레이브스의 베테랑 선발 투수인 도일 알렉산더를 받는 대신에 존 스몰츠를 브레이브스에게 넘겨 주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타이거스가 땅을 치고 후회할 트레이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거스의 유니폼을 입은 도일 알렉산더가 9연승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지구 수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소기의 목적을 거둔 Win-Win 트레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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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3A에서 20경기에 선발 등판해서 10승 5패, 방어율 2.79 등을 기록한 그는 7월 말에 메이저리그로 승격되었다. 7월 23일 메츠와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룬 그는 8이닝 동안 단 4피안타 1실점만을 허용하는 역투로 승리를 거두었다. 데뷔 2차전인 레즈와의 경기에서도 8회까지 5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를 펼쳤지만, 9회에 닉 에사스키에게 결승 3점홈런을 허용하면서 데뷔 첫 패전을 기록하였고, 이후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에 부딛치면서 12경기에 선발 등판해서 2승 7패 방어율 5.48 등을 거두는데 그쳤다. 90마일 중후반대의 패스트볼과 최대 90마일 초반대에 이르는 고속 슬라이더, 스플리터, 커브 등을 앞세운 존 스몰츠는 1989년에 12승 11패 방어율 2.94 등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였고, 1993년까지 5년 연속 두자리 수 승리와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였다.

특히, 1991년에는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까지 2승 11패 방어율 5.16 등 극도의 부진을 보였지만, 후반기에는 12승 2패 방어율 2.63 등을 기록하였다. 그의 활약 속에 3년 연속 지구 꼴찌에 머물렀던 브레이브스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3년 연속 지구 수위를 차지하는 등 브레이브스 왕조의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트윈스(1991년)와 블루제이스(1992년)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리그 우승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1991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트윈스의 잭 모리스와 펼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투수전은 그의 이름을 팬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경기였다. 존 스몰츠는 7과 ⅓이닝 동안 6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를 펼쳤지만, 타선이 잭 모리스에게 꽁꽁 묶인 끝에 연장 10회말에 터진 진 라킨의 끝내기 안타로 월드시리즈 챔피언 일보직전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Go Smoltzy  1992년과 1993년에는 2년 연속 15승을 거둔 존 스몰츠이지만, 브레이브스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력하였다. 톰 글래빈, 스티브 에이브리 등에 1993년에 영입된 그렉 매덕스 등 호화찬란한 멤버들로 인해 음지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1994년에 팔꿈치 수술 등으로 6승에 머물렀던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면서, 톰 글래빈과 그렉 매덕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1996년이었다.

4월 4일 자이언츠와의 시즌 첫 경기에서 6과 ⅓이닝 동안 7실점(6자책점)하면서 패전을 기록하였지만, 이후로 패전을 모르는 연승 행진을 펼쳤다. 5월 24일에 이미 10승을 올리는 등 6월 19일 파드레스전까지 14연승을 달렸다. 1904년 5월 22일에 10승을 올린 자이언츠의 조 맥기니티에 이은 역대 2번째로 최단 기간에 두자리 수 승리를 거둔 투수가 되었다. 시즌이 끝났을 때에 그는 24승 8패 방어율 2.94, 276탈삼진 등의 성적을 거두었다. 다승왕과 1992년에 이어서 탈삼진왕을 차지한 그는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케빈 브라운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따돌리고 첫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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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는 팔꿈치 수술로 시즌 개막 이후인 4월 중순에 복귀한 그는 5월 말에는 부상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7월 9일부터 8연승을 기록하는 등 17승 3패 방어율 2.90 등 사이영상급 활약을 펼쳤다. 1999년까지 다시 한번 5년 연속 두자리 수 승리를 챙기던 그는 2000년 시즌 개막 직전에 토미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한 시즌을 개점 휴업하였다. 2001년 5월 중순에 마운드로 돌아온 그는 6월 초에 부상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가, 7월 말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팀의 사정으로 인해 불펜진에서 컨디션을 조절하던 그는 8월 17일부터는 클로저를 승격되어서 10세이브를 거두었다.

2001년을 끝으로 FA를 선언한 그는 양키스와 다이아몬드백스 등으로의 이적이 이야기되었지만, 브레이브스에 잔류하면서 선수 생활을 토마호크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2002년에 본격적으로 클로저로 변신한 그는 당시 내셔널리그 기록인 55세이브를 달성하였다. 1996년에 24승을 거둔 그로서는 데니스 에커슬리에 이어서 역대 두번째로 20승과 50세이브를 기록한 투수가 되었다. 2003년과 2004년에도 각각 45세이브와 44세이브를 기록한 그는 2005년에는 다시 선발 투수로 복귀해서 2007년까지 3년 연속 두자리 수 승리와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 2006년에는 16승으로 생애 두번째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2007년 5월 24일에는 뉴욕 메츠를 제물로 삼아서 메이저리그 최초로 200승-150세이브를 달성한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1988년 7월 23일 메츠의 스타플레이어인 대럴 스트로베리로부터 첫 삼진을 뺏어낸 그는 2008년 4월 22일 내셔널스의 펠리페 로페즈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우면서 역대 16번째로 3,000탈삼진을 기록하였다. 팀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원한 선발뿐만이 아니라 클로저로서도 활약하는 등 20시즌을 오로지 브레이브스와 함께 하고 있는 그가 메이저리그 최초로 250승-150세이브라는 표적도 토마호크로 명중시키는 날을 고대하고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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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손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