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도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활약상을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와이번스의 감독인 김성근이 "선동렬 감독이 전성기 때 미국 메이저리그에 갔으면 20승은 충분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관련 떡밥 : 김성근, "선동렬, 메이저리그 갔으면 20승"). 솔직히 전성기의 선동열이 메이저리그에 입단했다면, 어떤 성적을 올렸을지는 하늘도 땅도 트윈스의 이쁜 배팅걸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가정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각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부정적인 시각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보인 선동열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론하면서, 그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고, 부정적인 견해로는 개인적으로는 이상훈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1999년에 드레곤즈의 셋업맨으로서 강력한 모습을 보인 그가 메이저리그에서는 끝없는 밑바닥으로 추락한 것은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충격적이었다. 이상훈 본인도 이야기했지만, 자신의 공이 전성기에 못 미치기 때문이 아니라, (1999년보다도) 좋은 상태였는데도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같은 리그라고 해도 시대를 달리할 경우에는 비교의 대상으로서 누가 우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전혀 다른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가 뛰어본 적도 없는 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떡밥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건 그렇고, 개인적으로 김성근의 발언이 아쉬운 점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보인 선동열의 압도적인 피칭을 구태여 메이저리그에 비교해서 말하려고 한 점이다. 그 당시의 선동열은 한국에서의 성적, 혹은 피칭만으로도 충분히 그 대단함을 말할 수 있는데도, '메이저리그에서 20승'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대한 열등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take me out to the ballgame을 운영하고 있는 ARAS님은 일전에 기자와 영양사, 그리고 언론이라는 글에서 양준혁의 2,000안타를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양준혁 선수의 2,000 안타 또한 그 자체로 값진 것이다. 2,000개의 안타가 터진 곳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대만이든 야구가 있는 곳에서 그같은 대기록이 완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서로 뛰는 무대가 다른데 그 기록이 모두 아라비아 숫자로 기록되었다는 이유로 한데 묶어 덧셈과 뺄셈, 나누기를 한다는 것. 그렇게 얻어진 값으로 기록의 가치를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지 않고 20년전과 오늘의 투자 수익률을 따지려 드는 것 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이며, 종합부동산세 관련 보도에서 세금 상승률 (백만원 단위)과 공시가격 상승률 (억 단위)울 단순비교한 모 언론사의 작태만큼 억지스러운 일이다.
ARAS님의 말은 그대로 김성근의 저 말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메이저리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저런 식의 논증할 수 없는 것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나 어느쪽이나 메이저리그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싶다. 메이저리그라는 단어 대신에 미국을 대입하면, 더욱 더 이해하기 쉽다. 1980년대 이후로 12환국이 어쩌니 한민족의 위대함이 저쩌니 하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그들의 말하는 개벽된 새시대의 한국(혹은, 한민족)은 미국의 지위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에 불과하다. 결국, "아메리카여 영원하라"를 외치는 쉰소리나 "21세기 정신문명을 주도하는 환국"에 목메는 흰소리나 그 바탕에는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있다고 생각한다.
카고 컬트라는 독특한 신앙
(아마도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어 보신 분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남서태평양에 있는 바누아투 공화국은 8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인 타나 섬에서는 매일 아침에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가 게양되고 있는 도시가 있다고 한다. 그곳에 미군기지가 있는 것도 USA 광신도인 시장이 도시를 미국에게 봉헌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지역의 사람들이 미국을 '신'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이 섬에서 미국은 구세주인 '존 프럼'이라고 불리고 있다.
매년 2월 15일에는 '존 프럼 데이'라는 축제를 성대하게 치루고 있다. 섬의 남자들은 가슴에 'USA'를 의미하는 표시를 하고, M1 개런드를 본뜬 대나무로 만든 라이플 모양을 어깨에 메고 절도있게 미해군식의 행진을 한다. 그 후 섬의 각지에서 각양각색의 민족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존 프럼'을 찬양한다.
역사적으로 타나 섬이 서구 세계와 직접적인 접촉을 시작한 것은 대부분의 남태평양에 있는 섬들이 그러하듯이 제임스 쿡에 의해서였다. 제임스 쿡은 영국 군함인 레절루션호를 이끌고, 1774년 8월에 타나 섬의 동쪽 해안에 상륙하였다. 이후, 역시 19세기에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된 남태평양의 섬들처럼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지배하에 들어갔다. 타나 섬에는 무역항이 정비되고, 많은 유럽인들이 기독교와 질병, 근대 문명과 함께 들어왔다. 유럽 열강의 식민지 정책으로 전통 문화는 쇠퇴하였고, 반대로 기독교로의 개종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또한, 열악한 노동 환경에 전염병 등으로 인구는 감소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백인이 배나 비행기로 운반해 온 카고, 즉 적화를 얻는 것으로 신의 은총과 구원을 받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신앙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신이 유럽인을 추방하기를 기원하였고, 카고가 자신들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갖가지 의식을 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신앙을 카고 컬트라고 부른다. 특정한 예언자가 트랜스 상태나 꿈에서 신으로부터 백인과 현지인의 권력 관계가 뒤바뀌는 계시를 받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양상은 지역에 따라서 제각각이다. 기독교도 사실은 자신들의 종교였지만, 백인들에게 신, 혹은 종교를 빼앗겼다는 카고 컬트도 있을 정도이다. 또한, 카고 컬트는 남태평양의 섬들 뿐만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등에서도 볼 수 있고, UFO에 대한 맹신도 카고 컬트의 일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국에서는 '개벽'을 외치는 종교 등에서 카고 컬트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예언이 실제로 실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태평양으로 확대되면서, 일본군에 맞선 미군이 어느날 타나 섬에 기지를 구축하였다. 막대한 물자를 실은 배와 함께 나타난 미군 속에서 자신들과 같은 피부색을 한 군인도 있는 것이 그들의 눈에 띄었다. 게다가, 미군들은 갖가지 물자들만이 아니라 의료행위도 행하였다. 이러한 미군의 모습에서 그들은 미국에는 '존 프럼'이라는 신이 살고 있고, 그 신이 자신들에게 은총과 구원을 주기 위해서 미군들을 보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것이 타나 섬에서 미국(인)이 신앙의 대상이 된 출발점이었다. '존 프럼 John Frum'이라는 말도 특정한 인물이 아닌, '미국에서 온 (흔한 이름인) 존 John From America'라는 설이 유력하다.
존 프럼이 지배하는 나라
존 프럼의 충실한 교도가 된 섬 사람들은 미군의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하였다. 성조기를 게양하고, 코코넛이나 막대기 등으로 통신기기나 전파 안테나 등을 만들어서 응답없는 존 프럼과 교신을 나누고, 가슴에는 'USA'를 표시를 하고서는 대나무로 된 총을 메고, 행진하거나 훈련을 하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미군도 이 섬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 때에 어느 한 군인이 자신이 터미네이터라도 되는 듯이 "I shall return"이라고 말했다. 이후로 섬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서 존 프럼이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미군의 카고만 도착하면 풍족한 생활이 가능했기에, 타나 섬을 비롯한 카고 컬트가 있는 지역에서는 종래의 농업이나 어업 등을 하지 않고, 건설 사업에만 전념하였다. 또한, 끊이지 않는 화수분과 같은 미국의 카고가 있었기에, 가축도 닥치는대로 잡아 먹었다. 이러한 산업의 불균형은 타나 섬의 경제적 파탄을 초래하였고, 다시 실현되지 않는 예언에 실망하면서 카고 컬트는 쇠퇴하였다. 대신에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반정부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식민지 정부나 교회 등이 공격의 표적이 된 배경에는 이들이 '존 프럼의 리턴'을 방해하고 있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1973년에는 대규모의 저항 운동이 벌어졌고, 1974년에는 프랑스 이주민을 왕으로 내세워서 독립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영국 양국의 군대에 의해서 무력으로 진압되면서, 타나 왕국은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을 맺었지만, 독립 운동 자체가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와 그 남편인 필립공이 타나 섬을 비롯해서 뉴헤브리데스의 각 섬들을 방문하였다. 그 때 필립공을 본 타나의 사람들은 그를 '존 프럼'의 형제로 간주하였고,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필립공이 새하얀 해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 프럼 운동의 리더는 필립공에게 대나무로 만든 총을 받쳤고, 그 보답으로서 "필립공이 그 총을 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 후, 타나 섬은 바누아투 공화국의 일부로서 영연방의 일원으로서 독립을 결정했지만, 프랑스계 이주민들은 '존 프럼 운동'의 리더와 손을 잡고 1980년 1월 타페아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5월 말에 영국군이 타나 섬에 상륙하자, 간단하게 분리 독립 운동은 진압되었다. 영국군이 일찍이 그들이 받친 대나무로 만든 총을 든 필립공의 사진을 보였기 때문이다. 십여년 전에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에 주위의 반응은 지금의 말로 표현한다면, '이뭐병'이었다. 바누아투, 혹은 타나 섬에 '존 프럼' 신앙이 계속해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민족 해방 운동이나 독립 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기 때문이지만, '존 프럼의 형제'가 된 필립공의 경우처럼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문득 '존 프럼' 신앙을 맹신하는 것은 타나 섬뿐만이 아니라 한국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주의가 미쳤다. 단지 타나 섬이 '비행기나 배에 실린 물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수출하는 만큼 개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또한, 타나 섬의 경제가 그들의 실질적인 삶과는 무관한 건설이 '존 프럼을 위해서'라는 주도되었듯이, 한국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슬로건 아래에 '대운하' 등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존 프럼'이 키운 미친 소가 전면적으로 수입될 예정이다. 어쩌면, 광우병을 유발한다고 말해지고 있는 '프리온 단백질'이 '존 프럼'과 같은 '프'씨인 것에 착안해서, 프리온 단백질의 섭취가 '존 프럼'과 직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매개체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싶다.
'존 프럼'의 예언자이신 2MB가 "개방은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다 개방하는 게 맞다. 그 다음은 소비자의 몫."이라고 신탁을 내리셨다. 단순히 쇠고기만 먹지 않으면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철도 999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씸시티의 최종 버전인 존 프럼이 깃든 '존스타운'을 향해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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