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야구 해설자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트레이드 된 선수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껴서는 안된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선수들은 트레이드를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예전 폴 로두카처럼 다저스를 떠나며 피눈물을 흘린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타당한 이야기다. 선수가 한 구단에서 뼈를 묻는 일이 극히 드문 메이저리그에서 트레이드에 배신이나 버림받음과 같은 아침드라마스러운 표현을 사용하기란 무리가 있다. 게다가 무려 30개 구단의 수백명이나 되는 선수가 포지션을 차지하기 위해 피튀기는 경쟁을 벌이는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으로 옮기게 된다는 것은 선수 입장에서 보면 바람직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그만큼 철저하게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트레이드를 시도한다는 얘기가 된다. ML의 팀들은 일년에도 셀수없이 많은 선수 영입과 방출, 트레이드를 단행하지만 그중 단 하나도 무가치하게 행해지는 결정은 없다. 하다못해 바보 단장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바바시조차도 자세히 따져보면 자신의 팀에 현재 가장 필요한, 또는 앞으로 필요하게 될 부분을 채우기 위해 트레이드를 한다. 계속 소속팀에 머물렀다면 대수비 요원에 머물거나 마이너에서 소고기 햄버거를 먹었을 선수가, 자신을 꼭 필요로 하는 팀에서 실력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얻게 된다는 확신. 이게 바로 메이저리그의 트레이드가 갖는 특징이다. 물론 과거에는 구단측의 눈밖에 난 선수를 처리하기 위한 보복성 트레이드가 행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선수들의 권익이 대폭 향상된 90년대 이후로는 그와 같은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 동기가 어찌되었든, 모든 트레이드가 윈-윈으로 마감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어느 한 쪽이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거나, 압도적인 우세를 확인하는 식으로 마무리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손해를 봤다고 여겨지는 쪽의 단장이 팬들의 살인협박과 언론의 집중포화에 시달리는가 하면, 반대로 성공을 거둔 단장은 '천재'라는 찬사를 듣곤 한다. 가령 그 유명한 뉴욕 메츠와 탬파베이의 카즈미어-빅터 잠브라노 트레이드 건이 대표적이다. 이 트레이드의 실패로 인해 메츠의 짐 듀켓 단장은 시즌 종료 뒤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가 영입한 아트 하우 감독까지 함께 옷을 벗었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메츠 팬은 듀켓이나 빅잠의 이름만 들어도 오염된 쇠고기를 입에 넣은 듯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팬들이 특히 트레이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점이 있다. 우선은 트레이드가 막 이뤄졌을 당시. 이때가 논쟁이 가장 불이 붙는 시점이다. 가령 앞서 언급한 카즈미어 트레이드나 지난 오프시즌 이루어진 에릭 베다드, 요한 산타나, 댄 하렌 등의 트레이드가 그 예다. 관련된 팀의 팬들은 팀을 옮긴 선수들의 각종 스탯과 앞으로의 전망, 상대에게 받아낸 카드의 득실 등을 따지면서 어느쪽 팀이 이득을 보았는지 계산한다. 그리고 손해를 보았다고 여겨지는 쪽의 팬들은 단장의 바보같은 결정을 비난하며 떠나보낸 선수를 몹시 아까워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팬들이 선수의 지금-현재-당장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과거 1997년 플로리다 말린스의 파이어세일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에는 닭짓처럼 보이던 트레이드가 나중에는 선각자의 혜안으로 둔갑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또 팬들은 트레이드가 발생하고 수백년이 지난 뒤, 모든 결과가 드러나고 난 뒤에 비판의 공세를 재개하곤 한다. 가령 1990년 레드삭스가 단행한 휴스턴과의 트레이드가 좋은 예다. 여기서 레드삭스는 마이너리거였던 제프 백웰을 보내고 대신 불펜 요원인 래리 앤더슨을 얻어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결과는? 앤더슨은 고작 15경기만 등판한 뒤 FA가 되어 이적했고, 반면 백웰은 휴스턴의 간판 타자로 성장했다. 또 LA 다저스가 델리노 드쉴즈를 데려오기 위해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몬트리올로 보낸 트레이드도 '나중에 보니 삽질'로 판명된 사례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트레이드는 발생 당시에는 많은 팬들이 비난은 커녕 잘 했다며 '굿잡'을 연발했던 사례라는 점이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백웰이나 외계인 탄생 같은 참사가 수년 후에 발생하면, 여론은 180도로 달라진다. 처음에 굿잡이라고 칭찬하던 이들조차도 단장의 혜안 부족과 멍청함을 탓하기 바쁘다. 이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 점을 생각해보려면 우리는 다른 팀 가서 용이 된 선수가 소속팀에 계속 머물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제프 백웰의 경우. 당시 백웰의 포지션인 1루와 3루에는 각각 카를로스 킨타나와 웨이드 보그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트리플 A에는 백웰과 같은해 지명된 모 본이 연일 장타력을 과시하며 콜업을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만약 계속 백웰이 보스턴에 있었다면, 과연 제때 메이저리그로 올라가 거포로 성장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야구 몰라요"라는 명언이 있긴 하지만 장담하기 힘든 일이다. 페드로 역시 계속 다저스에 있었다면 치고 올라오는 다른 투수 유망주들과 경쟁하다가 일찌감치 인저리 프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개 트레이드된 선수가 새 팀에서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경우는, 전 소속팀에 계속 있었어도 가능했을 결과가 아니라 팀을 옮겼기 때문에 이뤄진 결과인 경우가 많다. 계속 같은 팀에 머물렀다면 계속해서 타성에 젖어 어영부영하거나 자리싸움에 밀려 마이너로 떨어지거나 했을 선수들이 새로운 팀에서 확실한 자리를 보장받거나, 마음가짐이 바뀌거나, 새로운 스승이나 동료를 만나면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카즈미어-빅잠 트레이드처럼 발표 당시에도 삽질이고, 발표 이후에도 삽질로 판명하는 트레이드는 매우 희귀한 케이스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구단들이 행하는 트레이드에 대해 결코 섣불리 판단하거나, 반대로 나중에 결과만을 놓고 비난하는 일을 삼갈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왜 그런 트레이드가 이뤄졌는지, 트레이드가 팀의 어떤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지, 새로 온 선수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차분하게 지켜보는 태도가 바람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메이저리그 구단간의 트레이드는 지금 당장이건 먼 훗날이건, 구단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현실적인 동기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저리그에는 실패한 트레이드는 있을지 몰라도 잘못된 트레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 프로야구는 과거 선수 길들이기 차원에서 보복성 트레이드가 빈번하게 행해졌고, 이 때문에 서두에 언급한 해설자의 말처럼 선수들이 트레이드를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선수협과 관련된 최동원이나 김시진 등의 트레이드, 롯데의 마해영 트레이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구단들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점차 서로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트레이드가 자주 시도되고 있다. 얼마전 삼성과 한화 간에 이루어진 이여상-심광호 트레이드가 대표적이다. 삼성에서는 뚫고 들어갈 자리가 없던 이여상은 한화에서 재능을 펼쳐 보이고 있고, 백업 포수가 필요했던 삼성은 진갑용의 뒤를 받칠 든든한 포수를 얻었다.
또 며칠전 1위 SK와 8위 기아 타이거즈 사이에 단행된 2:3 트레이드 역시 최근 프로야구의 달라진 트레이드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경우다. 포수 김상훈과 장성호 등의 부상과 빈약한 외야 자원으로 신음하고 있는 기아로서는 잠재력 있는 포수 이성우와 외야수 채종범, 좌타자에 1루수인 김형철을 얻으면서 공백을 메울 수 있게 되었다. 한편 SK로서는 기존의 풍부한 투수 자원에 전병두라는 잠재력 있는 좌투수를 추가했고, 유틸리티 내야수인 김연훈의 가세로 내야진 구성에 한층 여유가 생겼다. 모양새만 놓고 본다면 어느 한쪽이 손해라고 보기 어려운, 적절한 트레이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 트레이드에 대해 기아팬들의 반발이 거세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을 추려보면 전병두가 SK에 가서 포텐셜을 만개할지 모른다는 것과 전병두를 내주고 데려오기에는 이성우와 채종범은 카드가 맞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조범현 감독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이유로 김성근 감독에게 '퍼주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 등이다. 물론 어느 팀 팬이나 자신의 선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높게 평가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게다. 하지만 두산과 기아에서 몇년을 던지는 동안 잠재력만 높게 평가받았을 뿐 실제 보여준 것이 없는 전병두가 계속 기아에 머문다고 해서 달라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잠재력을 펼칠 수 있다면 다른 환경으로 옮기는 것이 선수 본인에게도 낫고, 또 그를 통해 팀의 필요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게 팀으로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지금 현재만 보면 이성우나 채종범, 김형철이 보잘것 없는 선수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 그들이 제프 백웰같은 사례로 남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이번 트레이드는 세 선수의 영입만 놓고 볼 게 아니라 호세 리마-발데스 등 외국인 선수 교체와 함께 종합해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아는 초반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두 외국인 선수를 모두 내보내고, 대대적인 라인업 교체를 준비하고 있다. 기아 투수진의 문제는 선발 가운데 두 명(리마, 전병두)이 7점대가 넘는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새로 데려올 외국인 투수(아마도 두 명)가 최소한 작년 스코비 정도만 해준다면 투수력의 향상을 기대할 만하다. 또 타선에서도 구멍이었던 발데스를 빼고 영입한 선수와 기존의 내야 자원들로 대체한다면 팀이 달라질 여지는 충분하다. 이런 팀의 전체적인 변화에서 이번 트레이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현재로서 예측한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기아 팬들이 시즌 초반 팀의 몰락에 마음아픈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은 미리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지켜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조범현이 자신만의 팀을 만들만큼 충분한 시간을 허용한 뒤, 그때 가서 이번 트레이드를 평가하더라도 그리 늦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미디어다음 해외야구에 기고한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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