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로야구 심판들은 그야말로 입맛이 병맛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90년대까지는 심판의 권위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심판이 아웃이라면 아웃이었고, 심판이 홈런이라면 그게 바로 홈런이었다. 판정이 이상하다 싶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손해를 본 감독과 선수들도 적당히 항의하다가 물러나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KBO 사무총장이 된 한 야구 해설가의 '심판은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바로 그래서 나온 얘기다. 물론 그 양반이 사무총장 되자마자 일부 심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그런데 TV 중계방송 카메라 대수가 늘어나고, MBC ESPN이 같은장면 무한반복 신공을 과시하고, 초고속 카메라에 그래픽 효과까지 등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그냥 넘어갔을 판정도 리플레이해서, 또는 캡쳐해서 다시 보니 '오심'인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자연히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와 이의 제기, 야구팬들의 비난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심판의 권위가 바닥까지 떨어진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이처럼 판정시비가 날로 잦아지자 야구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해결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나는 외국인 심판 도입이고 또 하나는 논란이 되는 판정에 대한 비디오 판독이다. 과연 이런 방법들은 오심 논란에 대한 솔로몬의 지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쪽이다. 먼저 외국인 심판이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메이저리그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메이저리그도 오심은 있다
안타깝게도, 동경의 대상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심판 판정을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 플로리다에서 열린 MLB 단장회의에서는 '심판 판정 비디오 판독'을 놓고 단장들끼리 투표가 이루어졌다. 결과는 30명 중 무려 25명이 찬성. 물론 심판 노조의 반대로 당장 도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미국야구에서도 얼마나 심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흑인-히스패닉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일부 조사에서도 상당수의 선수가 "심판의 인종이 판정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드러난 적이 있다. 많은 MLB 종사자들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프로야구에 김풍기 주심이 있다면, 메이저리그에는 매 이닝마다 기분따라 스트라이크존이 바뀌는 것으로 유명한 조 웨스트(Joe West)나 지난 WBC에서 미국 대표팀을 향한 무한 애정을 과시했던 밥 데이비슨(Bob Davison)이 있다. 조 웨스트의 경우에는 톰 글래빈(Tom Glavine)을 비롯한 컨트롤 위주의 투수들이 가장 꺼리는 심판으로 악명이 높은데, 스트라이크존이 성냥갑 모양이 아닌 별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정도로 제멋대로인 콜을 자랑한다.
하지만 조 웨스트도 밥 데이비슨에 비하면 송사리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상 최악의 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데이비슨은 최근 5월 19일 열린 뉴욕 메츠와 양키스 간의 서브웨이 시리즈 2차전에서 오심의 진수를 선보였다. 4회초 메츠 7번타자 카를로스 델가도(Carlos Delgardo)가 쳐낸 좌측 파울폴에 맞는 홈런을 파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3루심이 홈런을 선언했음에도 데이비슨은 4심을 모이게 한 뒤 지체없이 파울을 선언해 버렸다.
하지만 리플레이된 ESPN의 중계 화면에는 분명 타구가 파울폴 안쪽에 맞고 바깥으로 튀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관중이 잡은 공에도 파울폴의 검은 페인트 자국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일각에서는 '애국자' 데이비슨이 반미주의자로 알려진 델가도의 홈런을 일부러 빼앗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명백히 악의적인 오심이었다. 메츠 감독과 코치들은 격렬히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제리 매뉴얼 수석 코치만 퇴장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장면은 밥 데이비슨이 심판으로 나서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연출되곤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그를 메이저리그 심판으로 복귀하게 해준 계기가 바로 주특기인 '오심'이라는 점이다. 2006년 전까지 마이너리그 심판으로 강등되어 있던 그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를 계기로 메이저 심판으로 '승진'하게 된다. 미국 대표팀의 주요 경기 때마다 나라사랑 미국사랑을 격하게 드러내는 편파 판정 -멕시코전 홈런을 2루타로 판정, 일본전 언더베이스 오심- 으로 메이저리그 측의 환심을 산 것이다. 결국 WBC 이후 데이비슨은 메이저리그로 돌아왔고, 매 경기마다 뇌에 구멍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명판정으로 야구팬들을 흥분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메이저리그 심판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니 실수가 없을리 만무하고, 자질미달인 사람이 자리를 지키는 일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더욱이 판정 시비가 부쩍 늘어난 것은 한국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역시 마찬가지다. 중계방송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MLB에서도 심판의 잘못된 판정이 즉각 카메라를 통해 드러나고 있고, 전에없이 많은 논란과 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 심판을 데려오더라도 초고속 카메라가 노려보고 있는 이상, 오심 논란이 줄어들 것을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심판도 경기의 일부다. 하지만...
그렇다면 비디오 판독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이게 도입된다면 잘못된 판정을 번복하고 바로잡는데는 분명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인간' 심판들의 땅에 떨어진 권위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게 분명하다. 심판들도 인간인 이상, 실수와 오류를 범하는게 당연하다. 이건 박진만도 실책을 하고 손민한도 실투를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그런데 그런 인간적인 실수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기계에 의해 지적되고 교정된다면? 심판 판정을 신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중에 가서는 스트라이크/볼 판정에 대해서까지 의문이 제기될 것 분명하다. 야구가 어디까지나 인간이 하는 경기인 이상, 심판의 권위를 기계에 양도하는 해결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앞서 '심판도 경기의 일부'라는 KBO 사무총장의 말을 생각해 보자. 그 말은 기본적으로는 옳다. 심판도 경기의 일부라는 얘기는 경기 중에 비가 내린다거나, 잔디에서 불규칙 바운드가 생기거나, 바람이 불어서 외야플라이가 홈런이 된다거나 하는 요소들과 심판 판정이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왜 내가 타격하는데 비가 내리냐고 하늘을 향해 따지는 타자가 없듯이, 심판 판정에 대해서도 -설령 그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원칙적으로는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하는 일이 없는 것이 좋다. 만일 모두가 심판 판정에 대해 불복하고 딴지를 걸어댄다면 경기 자체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다. 왜냐하면 저런 주장은 어디까지나 심판이 '엄정 중립을 고수하는' 잔디나 하늘이나 바람과 같은 존재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만일 잔디가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되어서 일부러 원정팀 수비 때 불규칙 바운드를 만들어낸다면? 그러면 잔디의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게다. 또 바람이 배리본즈의 팬이라서 본즈 타석 때마다 외야쪽으로 거센 바람을 불게 만든다면? 우리는 돔구장 건설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판들이 진정으로 공정하고 중립적이며 자격을 갖추었다고 믿을 수 있을 때에만이, '심판도 경기의 일부'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만일 심판들의 자격이 근본적으로 의문스럽고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심판의 판정 자체도 경기의 일부로 수긍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지금 한국프로야구의 심판들이 '경기의 일부' 다운 중립성과 자질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이게 지금 벌어지는 논란의 진짜 문제다. 심판진의 자질이 심각하게 의문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비디오 판독부터 외국인 도입까지 온갖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만일 심판들이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판정한다는 '신뢰'가 있다면, 아무리 ESPN이 '빰빰빰빰빰~'하며 100번씩 같은 장면을 보여주더라도 사람들은 판정에 수긍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심판들이 과연 '잔디나 하늘처럼 공평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느냐, 또는 그들의 자질을 확신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잠깐 영화 얘기를 하겠다. 임창정-고소영 주연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란 영화가 있다. 임창정의 직업이 프로야구 심판이라서 야구장 씬이 자주 등장하는 영화다. 그런데 각본을 쓴 야구광 김현석 감독이 간과한 점이 있다. 영화에서 임창정은 일반인 출신으로 심판학교를 수료한 뒤 곧바로 프로야구 1군 경기에 투입되서 거의 전 경기를 출장한다. 또한 한국시리즈에서는 선배 심판의 배려로 한국시리즈 1차전 주심을 맡는 영광을 누리기까지 한다.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
물론 한국프로야구 심판학교에 일반인의 지원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속 임창정처럼 일반인이 심판학교를 거쳐 곧바로 프로야구 심판이 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다. 국내 심판학교는 단 4주간의 교육기간(그것도 주말에 3일씩 도합 12일짜리 단기 코스)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서 일반인이 선수 출신들을 제치고 선발될 가능성은 부시와 빈 라덴이 화해할 가능성보다도 높지 않다. 또한 심판들 간의 파벌 싸움과 선수 출신 간의 암묵적인 밀어주기도 일반인의 심판 진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비록 밥 데이비슨 같은 인간 광우병 환자가 가끔 등장하기는 하지만 수년간의 치열한 생존 게임을 통해 메이저 심판을 양성해 내는 미국야구와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1군 경기에 투입되는 대부분의 심판들은 좋게 말하면 베테랑, 나쁘게 말하면 닳고 닳은 기득권자들이 되기 십상이다. 자질이 뛰어난 새로운 심판이 치고 올라올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봉쇄되어 있다. 한번 1군 심판은 아무리 엉터리로 판정을 해도 심판들간 파벌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는 이상 철밥그릇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심판들 대부분이 선수 출신이라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게 된다. 대부분의 선수나 감독과 선후배 지간으로 엮여 있다보니 자연히 판정의 공정함에 의문을 낳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선수들과 일면식도 없는 일반인이 판정을 한다면 이런 류의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게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는 오심 논란에서 외국인 심판이나 비디오 판독과 같은 주장들은 사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문제의 해결은 현재의 철옹성처럼 공고한 심판들간 '카르텔'을 깨뜨리는 것, 그래서 진정으로 자질있고 야구를 사랑하는 일반인들 중에서 프로야구 심판이 나올 수 있게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심판들 중에서도 정기적인 테스트와 평가를 통해 자질 미달인 이들을 솎아내고, 그 자리를 심판의 권위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할 때 진정으로 심판의 권위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며, 선수들과 팬들도 심판의 판정을 -인간적인 실수까지도-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가능할 일이겠지만 말이다.
이 글은 미디어다음 해외야구에 기고한 원문입니다.
'기호태의 Baseballog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포수 가리지 마세요~ (8) | 2008/05/31 |
|---|---|
| 뉴욕의 가을, 올해는 어떨까 (12) | 2008/05/28 |
|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9) | 2008/05/20 |
| 힘을 내요 배리 지토 (14) | 2008/05/14 |
| 트레이드를 비난하기에 앞서 생각해볼 것들 (7) | 2008/05/06 |
| 태평양 데이 논란과 MLB (16) | 2008/04/30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