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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28일 독점적인 위치를 지키고 있던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위협하는 현대 피닉스가 창단식을 가졌습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한국에서 프로야구는 정당성이 없는 정권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출범시켰고, 독점자본들을 끌어들여서 야구판에서도 독점적인 위치와 권력유착 등으로 발전을 해왔습니다. 1992년 대선에서 현대의 정주영이 자본을 바탕으로 정권장악을 도모했듯이 야구판에서도 자본을 앞세워서 새로운 리그 창설을 시도하는 첫걸음으로서 실업팀 현대 피닉스가 창단했습니다.

현대는 원래 원년부터 프로야구에 참가를 권유받았지만, 프로야구의 성공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불참했습니다. 그 후, 나날이 발전하는 프로야구에 현대는 참가하려고 했지만, 호시탐탄 노리고 있던 MBC를 LG에게 선수를 빼앗기면서 인수에 실패하였습니다. 현대의 불도저식 스포츠경영을 두려워한 타팀들의 반대로 현대는 사실상 신생팀으로 참가하는 방법도 막혀있었습니다. 그래서 빼어던 칼이 엄청난 창단 가입금 등으로 망설이고 있던 기업들을 끌어들여서 새로운 리그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메이저리그가 양대리그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독점적인 위치에 있었던 내셔널리그에 많은 리그들이 도전해서 아메리칸리그가 살아남았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자신들도 기존의 KBO에 대항하는 새로운 리그를 만드려고 한 것입니다. 새로운 리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리그와의 전쟁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선수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해 우수한 신인선수들을 올림픽참가(당시에는 아마추어만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음)라는 명예와 프로구단을 압도하는 엄청난 계약금을 내세워서 삭쓸이에 나섰습니다.

현대 피닉스의 창단멤버로는 국가대표 에이스인 문동환을 비롯해서 안희봉, 강필선, 장재명, 문희성, 조경환, 김동호, 염규빈, 최창수, 윤제성, 김낙관, 조태상 등 특급과 A급만이 아닌 B급 선수들까지 전부 현대 피닉스의 유니폼을 입히면서, 김재걸을 삼성에게 빼앗겼지만 선수확보라는 제1라운드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돈과 명예, 그리고 현대그룹의 프로팀 창단이라는 달콤한 미래를 믿었던 선수들에게 돌아온 것은 1995년 10월에 현대의 태평양 돌핀스의 인수였습니다. 태평양 돌핀스의 인수로 현대가 내건 프로팀 창단에 의한 새로운 리그의 창설은 공수표가 되었고, 또한 현대 피닉스의 선수들은 그라운드의 미아가 되었습니다.

조경환선수처럼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후에 군입대를 한 경우에는 그래도 병역을 해결이라도 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나무배트에 적응할 시기도 체계적인 훈련도 받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낸 것입니다. 기존의 프로팀에 입단하려고 해도 현대 피닉스로부터 받은 계약금의 몇 배를 위약금으로 물어야 하기 때문에 이 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문동환선수는 고교, 대학의 무자비한 혹사에 이어서 현대 피닉스에서도 혹사당함으로서 정작 프로에 들어와서는 자신의 이름값에 걸맞는 성적을 올린 적이 없었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팀 저팀을 떠돌다가 은퇴하거나 후보선수에 머물고 있습니다.

현대, 쌍방울 접수하다(?)

1990년 제8구단으로서 2군리그에 참가하고 1991년 정식으로 페넌트레이스에 참가한 쌍방울은 모기업의 열악한 재정과 선수수급의 문제 등으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또한 연고지역출신의 스타성 있는 선수들이 없었기 때문에 관중동원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런 쌍방울에도 지역연고출신의, 게다가 공수를 겸비한 뛰어난 2명의 내야수가 있어서 그들의 입단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장재명과 강필선이었습니다. 장재명과 강필선은 군산상고 동기생으로 팀은 전국대회에서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인 능력을 인정받아서 청소년대표 등으로 맹활약을 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함께 연세대로 진학했습니다.

고교시절에는 장재명이 강필선보다는 한수위로 평가받았지만, 대학에서는 강필선의 기량이 일취월장해서 강필선이 우위에 서게 됩니다. 어쨋든 두 선수 다 공수를 겸비한 그것도 장타력을 가진 대형내야수였습니다. 당연히 연고 프로팀인 쌍방울은 1차지명과 2차지명으로 두 선수 다 지명했지만, 강필선이 현대로부터 1억원, 장재명이 7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현대 피닉스에 입단해 버렸습니다. 그전까지 프로에서 야수로서는 양준혁의 1억원이 최고액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KBO와 현대의 대결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겠지만, 두 선수의 기량에 대해서는 현대 피닉스의 계약금이 증명한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 피닉스에서도 강필선은 홈런왕과 타점왕 등을 휩쓸었고, 장재명은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했습니다. 그들은 올림픽에서 메달획득 실패 등으로 병역해결을 위해서 군팀인 상무를 거쳐서 4년의 방황을 끝내고 프로에 입단할 수 있었습니다. 장재명은 연고팀인 쌍방울에, 강필선은 현대 피닉스의 계약금의 부담 등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였지만, 4년의 시간은 그들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되었습니다.

장재명은 프로에 적응하지 못하고 2000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고, 강필선은 2001년을 끝으로 현대에서 방출되어서, LG에 연습생으로서 들어갔다가 롯데를 거쳐서 2003년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다른 현대 피닉스출신들이 그렇듯이 두 선수도 4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자신들의 기량을 꽃피우지 못했습니다.

봉황, 피닉스에 불타다

1990년 봉황기는 안희봉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전국에 알렸습니다. 전경기를 완투로 장식한 성남고의 강병규와 맞붙은 결승전은 싱겁게도 안희봉의 완승으로 끝나면서, 그는 최우수선수로 뽑혔습니다. 동네야구에서도 가장 재능있는 선수가 투수를 하듯이 대부분의 투수들은 고교시절에 강타자였던 경우가 많습니다. 동산고의 슈퍼스타 위재영, 충암고의 공의식, 경북고의 이승엽, 경남고의 김건덕,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서재응과 김선우 등도 팀의 중심타자였습니다.

고교 졸업 후에 빙그레의 유혹을 뿌리치고 연세대로 진학하지만, 고교 때에 당한 발목부상과 당시 연세대는 넘쳐나는 투수들로 처치곤란이었기에 타자로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팀의 간판타자로 국가대표에서도 클린업트리오의 일원으로서 홈런타자로서의 강력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현대 피닉스의 창단멤버로 안희봉은 2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습니다. 안희봉은 현대에 입단해서 미련이 남아있던 투수로 방향전환도 모색하기도 했지만, 국가대표에서도 팀에서도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장거리타자로서의 안희봉이었기에 여전히 홈런타자 안희봉으로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안희봉은 상무를 거쳐서 3억여원을 받고 1998년 현대 유니콘스의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아마 제일의 홈런타자로서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서 프로에 입단하였지만, 아마와 프로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투수들의 변화구에 농락당할 뿐이었습니다. 변화구에 대한 약점과 자신의 포지션인 1루는 용병들이 차지했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것은 좌투수에 대한 대타로서의 역할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 시즌이 끝난 후에 현대에서 방출된 안희봉은 해태로 이적하였습니다. 해태(기아)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고질적인 무릎부상은 그의 발목을 잡아서 무엇 하나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도 못하고 2001년 기아에서도 방출당하면서 은퇴하였습니다.

현대 피닉스에 몸담았던 선수들이 프로에서 맥을 못추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여전히 아마추어패턴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현대의 처사와 그들의 재능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현대는 태평양을 인수해서 현대 피닉스로 입도선매한 선수들을 가지고 남는 장사를 해서 프로에서 우승도 하고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이 아닌 눈 앞의 이익에 따라서 현대 피닉스를 선택한 선수들에게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겠지만, 현대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업윤리의식과 선수들을 노예로 부려 온 기존 구단들의 운영이 프로무대에서 맹활약할 수 있었을 많은 유망주들을 사장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무대포의 밀어붙이기식 현대나 편법은 합법이다의 삼성 등은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없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합니다.

방만한 경영과 수백억대의 비자금으로 정경유착에 앞장 서서 기업을 파탄으로 이끈 자들이 여전히 모든 책임은 노동자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강성노조의 무책임한 파업과 고임금 등으로 국제경쟁력에 뒤진다는 논리하에 자신들의 잘못은 은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피닉스의 사태도 어쩌면 한국의 기업풍토에서는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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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손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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