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만 [놈놈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놈놈놈]이 가볍게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면, 500만 관중 돌파를 향해 질주 중인 프로야구에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들이 존재한다. 때마침 올림픽 브레이크를 맞이한 2008 프로야구 전반기를 결산하며, 각 팀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좋은 놈'과 팬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은 '나쁜 놈', 그리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플레이로 모두의 예측을 민망하게 만든 '이상한 놈'들을 한데 모아 봤다.
SK 와이번스
좋은 놈 - 김광현 (11승 4패 방어율 2.94)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의 투구를 전반기 내내 이어갔다. 세이브를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10위 안에 들었으며, 특히 다승과 탈삼진은 전체 2위. 앞으로 SK의 에이스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 투수로 오래도록 활약할 것이다. 삼진을 잡든 홈런을 맞든 언제나 싱글벙글 미소짓는 얼굴도 '좋은 놈'으로 선택하게 만든 이유다.
나쁜 놈 - 윤길현 (10홀드 방어율 3.68)
지나간 얘기 다시 꺼내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 때 그 사건 이후 SK는 7할대 승률을 달리던'우주최강 천하무적' 강팀에서 16승 12패의 '평범한' 팀으로 변신했다. 전반기 막판 두산의 7연패가 아니었다면 아마 순위가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더 나쁜 것은 나머지 7개 구단 팬들에게 SK가 '공공의 적'으로 찍히게 됐다는 점이다. 한번 생긴 나쁜 이미지는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이상한 놈 - 레이번 (4승 2패 방어율 3.29)
구속 좋고 방어율 좋고 부상없이 꼬박꼬박 등판해 주고. 그런데 20번 선발등판해서 승수가 고작 4승이라니.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선발로 나온 경기 중 6회를 넘긴 경기가 9차례에 불과했고 퀄리티 스타트는 7번에 그쳤다. 동료들 때문일까. 그렇지도 않다. 레이번이 올시즌 패전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간 경기에서 패전을 면한 경우가 무려 다섯 차례에 달한다. 그 다섯 번이 전부 패배로 끝났다면 지금 성적은 4승 9패로 일찌감치 집에 돌아가야 했을 게다. 레이번은 소속팀이 강팀인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두산베어스
좋은 놈 - 김현수 (타율 .334 / OPS .941)
타격에 완전히 눈을 떴다. 좌투수건 우투수건, 선발이건 불펜이건, 어느 팀이 상대건 가리지 않고 골고루 균일한 타격 기록을 보였다. 특히 8-9회 타율이 3할 6푼대로 경기 후반에도 김현수의 방망이는 식을 줄을 몰랐다. 장타 생산 능력만 보강한다면 두산은 올시즌 뒤 김동주의 공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쁜 놈 - 레이어 (무승 6패 방어율 5.66)
인터넷은 이따금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러 차례 인터넷 검색으로 외국인 선수 뽑기에 재미를 봤던 두산이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낚였다'. 기록은 어제까지의 것일뿐, 결코 지금-현재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점을 간과한 탓이다. 기록상으로는 뛰어난 땅볼 유도 능력을 지닌 2점대 방어율 투수였던 레이어는 막상 데려와서 보니 130km대 아리랑볼을 던지는 배팅볼 투수였다.
이상한 놈 - 이성열 (타율 .211 도루 6 타점 22)
트레이드하기 전인 5월 한달간 타율 .357에 OPS가 무려 1.080으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혹시나 싶어 데려와서 계속 썼더니 6월 타율 .232 / 7월 타율 .195로 순식간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LG팬들에게 물어보자. "처음부터 이런 선수인 거 알고 계셨습니까?" 그에 대한 대답. "그게 바로 성열이의 매력입니다." 그래도 장점은 있다. 잠수함 투수 상대 타율 .429 / 대타성공률 .357로 경우에 따라서는 꽤 좋은 기록을 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한화이글스
좋은 놈 - 김태균 (타율 .330 / OPS 1.082 홈런 26 타점 83)
올시즌 자신의 별명 가지수만큼이나 많은 홈런을 쳐내고 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안 아픈 곳이 없는 상태에서 내고 있는 성적이다. 주자있는 상황에서 타율 .349, 득점권에서 타율 .376로 부담이 크면 클 수록 더 좋은 타격을 선보였다. 이제 남은 과제는 '멋있는' 별명을 하나 얻는 일이다. 이승엽의 한국 시절 별명은 '라이온킹'이었다.
나쁜 놈 - 유원상 (5승 3패 방어율 6.28)
유승안 전 감독은 요즘 아들 얘기가 나오면 화제를 다른데로 돌릴지도 모른다. 유원상은 김광현이 아니었고,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의 이어지지 않았다. .305에 달하는 높은 피안타율은 상대하는 모든 타자를 이용규급으로 격상시켜 놓는다. 이닝당 19개가 넘는 공을 던지면서 5회를 넘기기를 기대하기란 빠삐놈 리믹스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불어 안영명, 양훈까지 함께 삽질하면서 김인식 감독의 두 볼은 날이 갈수록 붉게 물들어만 가고 있다.
이상한 놈 - 류현진 (10승 6패 탈삼진 107)
작년보다 더 뚱뚱해졌다. 이제는 목도 보이지 않고, 허리라는 부위는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래서인지 자꾸 여기저기 아프다고 호소한다. 이쯤 되면 흔히 나오는 얘기가 있다. 혹사 후유증이다, 자기관리에 소홀하다, 야식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한번 류현진의 올시즌 성적을 보라. 다승 3위에 삼진과 이닝당 삼진율 1위, 방어율은 초반에 깎아먹긴 했지만 그래도 3.55로 여전히 수준급이다. 어찌됐든 류현진은 류현진이다.
롯데자이언츠
좋은 놈 - 장원준 (9승 7패 방어율 3.00)
누가 그를 '민지'라고 했던가. 장원준은 싸나이다. 전반기 9승으로 자신의 시즌 최다승 기록 경신, 방어율 3.00으로 리그 전체 8위, 탈삼진 76개로 리그 7위, 삼진/볼넷 비율 1.90으로 김광현과 함께 리그 7위. 더이상 의심할 것도, 불안해할 이유도 없다.
나쁜 놈 - 정수근 (타율 .291 도루 24)
이상한 놈 - 임경완 (2승 5패 7세이브 방어율 4.30)
올시즌 롯데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마무리다. 시즌 초 임경완에게 맡겨 봤지만 매 경기 청심환 없이는 볼 수 없는 블록버스터 호러물이 제작되었고, 뒤늦게 최향남에게 자리를 양도했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분명히 해둘 것은, 중간계투 시절의 임경완은 굉장히 좋은 투수였고 지금처럼 부산 시내 활보가 불가능한 수준의 성적을 내는 선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올시즌 마무리를 맡은 그는 방어율 4.30에 세이브 7개를 따는 동안 무려 5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부진을 겪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홈/원정 성적에 해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올시즌 홈인 사직에서 임경완의 성적은 방어율 5.79에 2세이브(4블론)인 반면 원정 경기에서는 방어율 2.84에 5세이브(1블론)로 홈과 원정에서 전혀 다른 투수로 변신했다. 특히 홈에서의 피안타율은 .329로 타격왕 수준인 반면 원정에서는 .188로 오승환급 위력투를 펼쳤다. 아마도 임경완에게는 사직 구장 관중들이 자신의 편으로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부산 팬들이여, 시내에서 임경완을 만나면 비난보다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베풀어 주시길. 혹시 아는가, 그가 부산을 자신의 홈 구장으로 여기게 되는 날이 올지.
삼성라이온즈
좋은 놈 - 최형우 (타율 .276 홈런 15 타점 56)
올시즌 강력한 신인왕 후보. 만일 최형우가 신인왕이 된다면 삼성은 이동수 이후 오랜만에 중고 신인왕 한 명을 배출하게 된다. 전반기에만 15홈런으로 최근 몇년간 소총부대가 되어버린 삼성 타선에 파괴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섬세하기보다는 거친 타입이고 정교함보다는 결정적인 한 방의 위력을 믿는다. 팬들이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야구를 하는 선수다.
나쁜 놈 - 탐 션 (0승 6패 방어율 10.73)
일부러 가운데로만 던져도 이 정도로 얻어맞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의 매덕스가 되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국내 무대를 밟았던 탐 션은 이름 그대로 시원하게 얻어맞고 매덕스가 있는 나라로 돌아갔다. 그가 나온 7경기에서 삼성은 전패를 당했으며, 그것도 하나같이 큰 점수차 대패를 당했다. 어쩌면 션은 없는 기량이나마 최선을 다해 던졌기에 '나쁜 놈'이라는 표현은 부당한 것일 수도 있다. 진짜 '나쁜 놈'은 이런 선수를 뽑아서 데려온 사람과, 이런 선수를 여섯 번이나 선발로 내보내는 동안 팀내의 다른 젊은 투수들은 불펜으로 기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불쌍한 놈 - 정현욱 (6승 3패 6홀드 방어율 3.20)
중간계투 요원이 규정이닝을 채우는 사태는 현대 야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정현욱은 전반기 당당히 규정이닝을 채웠고, 방어율 부문 10위 내에 들었으며, 이기는 상황 지는 상황 크게 이기는 상황 크게 지는 상황 가리지 않고 아무때나 가리지 않고 등판하고 있다. 선발로 나왔다가 며칠 뒤 다시 중간계투로 나오는 정현욱의 모습을 보며 과거 장명부를 떠올리는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올시즌 뒤에도 그의 어깨가 남아날 수 있을까. 정현욱은 토미존 서저리 경력이 있는 선수다.
KIA 타이거즈
좋은 놈 - 윤석민 (12승 4패 방어율 2.47 탈삼진 95)
지난해 7승 18패를 기록하며 '비운의 투수'로 불리던 윤석민은 올시즌엔 작년의 승-패 숫자를 완전히 뒤바꿀 태세다. 12승으로 다승 1위, 방어율 2위, 탈삼진 3위 등 KIA를 넘어 한국 최고 에이스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성적을 내고 있다. 올림픽 국가대표로 가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몸 상태를 고려하면 휴식기는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그의 8월 방어율은 5.14 / 9월 방어율은 12.60이었다.
나쁜 놈 - 최희섭 (타율 .240 홈런 6)
시즌 개막 전 최희섭이 원인모를 두통을 호소할 때부터 이미 KIA의 험난한 2008년은 예고되었다. 4월 한달간 타율 .225에 볼넷 6개 얻을 동안 21차례 삼진. 중심타선의 집단 부진에 조범현 감독은 경기 초반부터 번트를 남발하며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다행히 최희섭은 7월부터는 타율 .353에 장타율 .529를 기록하며 조금씩 살아날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KIA의 4강 진출에 열쇠를 쥐고 있는 선수는 바로 최희섭이다. 메이저리그 시절과 KIA에서의 성적이 비슷해서는 곤란하다.
이상한 놈 - 김선빈 (타율 .272 도루 5 실책 10)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타이거즈의 유격수는 이종범이었다. 고졸 신인인 김선빈이 데뷔 첫해 타이거즈의 유격수를 맡은 것이 영광인 이유는 그래서다. 현재까지 공격 면에서는 잘 해주고 있다. .272의 타율은 전체 유격수 가운데 SK 나주환 다음으로 좋은 수치고, .652의 OPS는 박기혁-김민재-박진만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수비다. 올시즌 실책 10개에 수비율이 .948로 리그 전체 유격수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쉬운 타구를 어이없이 놓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입단 당시 김선빈에게 사람들이 기대한 것은 공격력이 아니라 수비였다. 아이러니다.
우리 히어로즈
좋은 놈 - 장원삼 (9승 6패 방어율 2.89 탈삼진 94)
우리담배에는 담배만 있는게 아니다. '장원삼'이라는 효험이 뛰어난 인삼도 있다. 입단한지 3년째가 되어가지만 아직 계약금도 제대로 못 받았다. 2년 연속 리그 정상급 좌완으로 호투했지만 연봉 대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장원삼은 마운드에서 씩씩하게 자기 할 일을 다한다. 다승과 탈삼진 5위, 방어율 4위로 소속팀이 히어로즈만 아니었다면 억대 연봉이 아깝지 않은 성적이다. 아마추어 시절 풍부한 국가대표 경험을 지닌 장원삼이기에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나쁜 놈 - 프런트 오피스
우리 히어로즈는 현재 순위 7위에 불과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치고 올라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프런트가 발목을 잡았다. 사상 초유의 가입금 미납 사태는 메인 스폰서인 우리담배와의 불화로 이어졌고, 마침내 팀 이름에서 '우리'를 빼달라는 요구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사실 이 팀의 프런트는 시즌 시작할 때부터 선수단에게는 적군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수단이 무너지지 않고 단합을 유지하며 좋은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마 지난 몇년간 현대 사태를 통해 지겹도록 겪어본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야구팬들은 히어로즈 구단은 미워해도 선수단에게는 존경심을 표해야 마땅하다.
존경스러운 놈 - 전준호, 브룸바, 송지만, 이숭용
지난 겨울 연봉 '쓰나미'를 직격으로 맞은 네 명의 노장 선수. 하나같이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선수들이지만 팀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큰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들의 올시즌 성적은 눈부시다. 전준호는 아들뻘인 두산 김현수와 타격왕 경쟁을 벌이고 있고, 브룸바와 송지만은 3할 타율에 13홈런을 사이좋게 기록 중이다. 이숭용은 7월 들어 타율 .323로 맹타를 휘두르며 타율을 .279까지 끌어 올렸다. 구단으로부터 최악의 대접을 받은 네 선수지만, 팬들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대접을 베풀고 있는 셈이다. 응원하는 팀에 관계없이 모든 야구팬의 존경을 받아야 할 선수들이다.
LG 트윈스
좋은 놈 - 봉중근 (8승 7패 방어율 2.93 탈삼진 107)
LG가 아닌 다른 팀 소속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봉중근은 다승왕 경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타자를 강하게윽박지르는 봉중근의 공격적인 투구는 LG 팬들에게는 과거 이상훈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특히 도루저지율 50%에 견제아웃 5개라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자를 꽁꽁 묶는 능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다. LG의 모든 선수들은 승부에 대한 봉중근의 열정과 투지를 본받아야만 한다.
나쁜 놈 - 박명환 (0승 3패 방어율 8.61 시즌아웃)
LG의 FA 잔혹사는 계속된다. 지난해 나름대로 에이스 역할을 했던 박명환은 올시즌 단 5경기에만 나선 뒤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됐다. 그나마 출전한 5경기 성적도 3패에 방어율이 무려 8.61이다. 시즌 초반 그럭저럭 버티던 LG 투수진은 박명환 이탈 이후 급속도로 무너져내렸고, 팀방어율 5.29라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으로는 나올 수 없는 성적을 기록 중이다. 박명환의 계약기간은 4년, 총 계약액은 40억원이다. LG에는 또다른 FA 조인성도 있다.
이상한 놈 - 박용택 (타율 .272 홈런 2 도루 12)
원래 박용택은 얼굴도 잘 생기고 야구도 잘 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올해 그의 장점은 잘생긴 얼굴 하나로 압축된다. 통산 83홈런으로 연평균 12개 이상의 홈런을 쳐내던 선수가 올시즌 쳐낸 홈런 수는 단 2개. 홈런 수는 그렇다 쳐도 2루타 9개와 3루타 1개로 중거리포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단타만 쳐낸다면 이대형과 박용택의 차이가 무어란 말인가. 장기이던 빠른 발도 올해는 도루 12개로 그다지 내세울 것이 못 된다. 이대로 시즌을 마친다면, 더이상 박용택을 '스타'라고 부르기는 힘들어질 듯하다.
이 글은 미디어다음 스포츠에 기고한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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