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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미국 동부시간) 샌프란시스코의 AT&T 파크에서 열린 자이언츠와 브레이브스의 경기에서 마이크 햄튼이 7이닝 4피안타 2실점하는 호투를 펼치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오랜 부상에 시달린 마이크 햄튼으로서는 1,088일만에 맛본 승리의 기쁨이었다. 그는 3년전인 2005년 8월 14일에 디백스를 상대로 통산 138승을 거두었다. 사실 먹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비난받고 있는 그이지만, 한 때는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로, 또한 실버슬러거를 5년 연속으로 수상한 적이 있을 정도로 타격 능력도 뛰어난 내셔널리그에 최적화된 선발 투수 중의 한명이었다.

약관이던 1993년에 매리너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는 1994년에는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되었고, 1996년에 10승을 거둔 이후로 2001년까지 6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하였다. 특히, 1999년에는 애스트로스 구단 역대 최다승인 22승(4패)으로 리그 다승왕을 차지하였다. 2000년에는 데릭 벨 등과 함께 메츠로 이적해서,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등 15승 10패, 평균 자책 3.14 등을 기록하였다. 또한, 양키스와의 지하철 시리즈에서는 부진했지만, 카디널스와의 NLCS에서 2경기에 등판해서 16이닝동안 평균 자책 0과 함께 2승을 거두면서, 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오프시즌에 FA자격을 취득한 그는 로키스와 8년간 121MM이라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덧붙여서, 마이크 햄튼을 잃은 메츠는 그 댓가로 얻은 보충픽(전체 38순위)에서 뽑은 선수가 데이빗 라이트였다. 당시에는 팀의 에이스를 잃은 상황이기에, 죽을 맛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위대한 유산이 된 셈이다. 확실히 야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 어떤 무빙이 장래에 '전화위복'이 될지, 아니면 '설상가상'이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도 매력의 하나는 아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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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3년만에 승리 투수가 된 마이크 햄튼  ⓒ MLB.com

어쨌든 기대반 우려반 속에서 산동네로 간 마이크 햄튼은 카디널스와의 개막전에서 8과 ⅓이닝동안 무실점으로 승리를 장식한 이후 6월 10일까지 9승 2패, 평균 자책 2.98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거두면서, 강력한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분명히 평균 자책이 하락하겠지만, 3점대 후반에 15승을 올린다면 1999년에 놓친 사이영상은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5승 11패 평균 자책 7.37로 무너지면서 '역시 마이크 햄튼'이 아닌 '역시 쿠어스필드'가 되었다. 2002년에는 7승(15패)에 머물면서, 산동네에 묘비명이 세워진 또 한명의 투수가 되었다.

결국, 산동네를 극복하지 못한 마이크 햄튼은 2002년을 끝으로, 3각 딜(형식적으로는 말린스로 이적한 후에 다시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을 통해서 브레이브스로 이적하였다. 토마호크를 가슴에 단 그는 2003년과 2004년에는 각각 14승과 13승을 거두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였지만, 팔꿈치 부상을 시작으로 해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2005년 5경기에 등판한 이후로, 메이저리그의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 그가 마침내 2008년 7월 26일 필리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면서,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였고, 8월 5일에는 3년만에 승리 투수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를 볼 때마다 묘하게도 한 선수가 오버랩되어서 3번의 등판마다 조마조마함을 느꼈다. 특히, 감격적인 승리를 거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더욱 더 불안했다. 왜냐하면, 마이크 햄튼의 모습에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데이브 드래벡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이크 햄튼과 같은 좌완 투수인 데이브 드래벡키는 1978년에 21라운더로 파이러츠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승격을 눈앞에 둔 1981년에 파드레스로 트레이드된 그는 1982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 5승 3패, 평균 자책 2.57 등을 기록하였다.

1983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해서, 14승 10패 평균 자책 3.58을 거둔 그는 올스타 게임에도 출전하기도 하였다. 1984년에는 선발과 불펜, 마무리를 오고가는 마당쇠 역할을 하면서, 9승 8패 8세이브, 평균 자책 2.93을 기록하였고, 그와 타율왕에 오른 토니 그윈 등의 활약으로 파드레스는 1969년에 창단한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컵스와의 NLCS에서 3경기에 등판해서 6이닝동안 무실점 호투를 하였고, 월드시리즈에서도 타이거스를 상대로 4와 ⅔이닝동안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1승 4패로 무릎을 꿇어면서 우승 반지를 끼지는 못했다. 1985년에도 13승을 거두는 등 파드레스에서 53승을 기록하던 그는 1987년에 시즌 도중에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에 7승 5패를 올리면서, 자이언츠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카디널스와의 NLCS에서는 2차전에서 2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는 등 15이닝을 던지면서, 평균 자책 0.60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자이언츠는 7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3승 4패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데는 실패하였다.1988년에는 다저스와의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해서, 1실점 완투승을 거두는 등 5월말까지 2승 2패 평균 자책 3.16 등을 기록하고 있던 그에게 청천벼락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오른팔의 관절에 암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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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찾아온 불운을 딛고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데이브 드래벡키  ⓒ outreachofhope.org

결국, 10월에 암을 제거하기 위해서 삼각근의 반 이상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그가 다시 마운드 위에서 볼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부와 같은 야구를 암으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꾸준히 재활에 힘쓴 그는 1989년 7월에 하이 싱글 에이에서 2경기에 선발 등판해서 완투승을 거둔데 이어서, 쓰리 에이에서도 2실점 완투승을 올렸다. 당연히 자이언츠는 8월에 그를 메이저리그에 다시 콜업하였다. 8월 10일 레즈와의 홈경기에 약 15개월만에 마운드에 돌아온 그는 8회초에 3점 홈런을 허용했지만, 8이닝을 3실점으로 막아내면서, 감동적인 복귀전에서 4 : 3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의 승리에 대해서, 다저스와 메츠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당시 자이언츠의 감독인 로저 크레이그는 "1956년에 월드시리즈에서 돈 라센이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는 것을 보는 등 지금까지 수많은 경기를 경험했지만, 오늘만큼 믿기 어려운 경기는 단 한번도 없었다. 정말 평생동안 잊을 수 없는 경기이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감동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데이브 드래벡키는 8월 15일 엑스포스를 상대로 복귀 2차전을 가졌다. 5회까지 그는 엑스포스의 타선을 3피안타 무실점으로 봉쇄하고 있었고, 자이언츠의 타선은 5회초에 선취점을 올린 후에 6회에는 맷 윌리엄스의 2점 홈런으로 추가 득점을 올렸다.

순조롭게 복귀 2승째를 향해 달리던 그에게 비극이 찾아온 것은 6회였다. 6회말 선두 타자인 다마소 가르시아에게 홈런을 허용한 그는 다음 타자인 안드레스 갈라라가도 힛바이피치로 출루시켰다. 이 때 그는 팔에 이상을 느꼈다고 한다. 사실 그가 암으로 인해 수술을 받을 때에 팔의 뼈를 얼렸기 때문에, 뼈가 약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의사는 조금이라도 이상이 느껴지면 피칭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그는 어떻게던 이번 이닝을 끝내고 싶어했다. 타석에 들어선 팀 레인스를 향해 던진 볼은 포수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와일드 피칭이었다. 그리고, 데이브 드래벡키도 마운드 위에 쓰러졌다. 팔의 뼈가 부러진 것이었다.

게다가, 암도 재발하면서, 그는 팔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공교롭게도 그가 상대한 마지막 타자가 후에 암을 극복한 안드레스 갈라라가였다는 점도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진다. 메이저리그에서 8시즌을 보낸 데이브 드래벡키는 64승 57패, 평균 자책 3.13 등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 안드레스 갈라라가나 마이크 로웰, 존 레스터 등 암을 극복한 선수들만이 아니라, 마이크 햄튼 등과 같이 큰 부상으로 잊혀지다가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온 선수들을 볼 때마다 그가 떠오른다. 과거와 같은 훌륭한 성적을 거두지 못해도 좋으니까, 마이크 햄튼이 그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야구 공을 다시 잡는 것이다. 야구 볼은 그것을 원하고 있다. 또한, 야구 공은 던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데이브 드래벡키의 자서전인 '컴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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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손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