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신시네티 레즈에 5게임 뒤진 2위를 차지한 다저스는 팀정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988년 극적인 우승의 주역이지만, 부상 등으로 전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커크 깁슨과의 재계약을 포기하였고, 발렌수엘라매니아를 몰고왔던 페른난도 발렌수엘라도 시즌 개막직전에 방출하였습니다. 대신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 대럴 스트로베리와 브렛 버틀러를 FA영입하였고, 또한 1986년 어매징 메츠의 주역이었던 밥 오헤다를 트레이드로 해오면서 투타에 걸쳐서 충실한 전력보강을 하였습니다. 굴러온 돌인 대럴 스트로베리와 에디 머레이가 타선을 이끌었고, 일약 팀의 에이스로 떠오른 라몬 마르티네스가 17승을 거두었고, 팀 벨처, 마이크 모건, 밥 오헤다와 주로 구원투수로 등판한 케빈 그로스까지 두자리수 승리를 챙겼고, 부상에서 돌아온 오렐 허샤이저도 7승을 올리면서 분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났을 때에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1경기 뒤진 아쉬운 2위를 차지하였습니다.
1992년 대럴 스트로베리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20홈런, 88타점으로 신인왕을 받은 에릭 캐로스를 제외하고 두자리수 홈런과 60타점 이상을 기록한 타자가 없을 만큼 빈약한 타격과 [투수왕국 다저스]라는 표어가 무색하게도 오렐 허샤이저와 너클볼러 톰 캔디오티를 제외하고 두자리수 승리를 챙긴 투수가 없을만큼 투타에서 완전히 붕괴하면서 구단사상 최다인 99패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1993년에는 신인왕인 마이크 피아자가 타율 0.318, 35홈런, 112타점 등을 기록하면서 팀의 얼굴로서 나섰고, 신예 페드로 아스타시오가 14승을 거두는 등 투타에 걸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조디 리드의 트레이드로 공백이 생긴 2루에 유격수를 보던 호세 오퍼먼에게 포지션이동을 요청했지만, 오퍼먼이 거부하면서 공백이 된 2루수 보강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꼭꼭 숨어있는 2루수를 찾기 위해서 나선 다저스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2루수를 발견하였습니다.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주전 2루수인 델리노 드쉴즈였습니다. 다저스는 애타는 구애의 편지를 몬트리올로 날렸고 몬트리올로부터 확답이 왔습니다. 라몬 마르티네스의 동생이자 1993년 불펜요원으로 활약하면서 10승을 거둔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주면 드쉴즈를 넘겨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븐 색스 이후로 고민거리였던 2루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드쉴즈였기에 다저스로서는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누가 볼까 한걸음에 달려가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드쉴즈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후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의 한명으로 성장하면서 이 트레이드는 다저스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였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분명히 트레이드의 결과물로 보면 다저스의 뻘짓이었지만, 트레이드 당시에는 드쉴즈를 데리고 간 다저스가 남는 장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드쉴즈는 몬트리올에서 4년간 타율 0.280대(데뷔 2년차였던 1991년에는 극심한 타격부진으로 0.238를 기록했지만)와 40개 이상의 도루를 성공시키고 있었습니다. 드쉴즈의 영입으로 다저스는 오퍼먼과 함께 발빠른 테이블세터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페드로 마르티네스에 대해서는 부상의 위험성 등을 들어서 낮게 평가를 하고 있었고, 페드로 아스타시오와 메이저리그 진입을 노리는 이스마엘 발데스, 안토니오 오수나 등을 생각하면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필요성이 없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만약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트레이드되지 않았다면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10승을 거두면서 가능성을 보인 1993년 선발등판은 2경기에 불과했습니다. 1994년이 된다고 해도 다저스의 마운드에는 검증된 노장들과 신예들에 메이저리그행을 기다리는 신인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잘해야 마당쇠 역할밖에 없었습니다. 다저스에 남아 있었다면 예전에 해태에서 마당쇠로 이름날렸던 송유석처럼 혹사만 당하거나 좌절을 경험하면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는 자원을 가지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 트레이드이기에 다저스의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트레이드한 것은 합당한 것이었고, 마르티네스 입장에서도 트레이드를 통해서 선발로 나서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특정팀의 팬이 아닌 야구팬으로서는 역설적으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트레이드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1994년 다저스는 2명의 신인투수를 마이너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올리는 깜짝쇼를 펼쳤습니다. 한명은 199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전체 1번은 알렉스 로드리게스)으로 뽑은 대런 드라이포트였고, 또 다른 한명은 한국에 MLB붐을 몰고 온 박찬호였습니다. 대런 드라이포트는 1993년 골든스파이크상을 받은 대학 최고의 투수이면서 타자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다저스의 마운드가 히스패닉계가 점령하던 시기였기에 [백인]에 전국적인 지명도, 백인투수의 로망인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가진 드라이포트는 마이크 피아자, 에릭 캐로스와 함께 흥행상 구단이미지상 매우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재키 로빈슨 이후로 메이저리그가 인종불문의 스포츠가 되었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구단주나 구단 운영진은 여전히 백인들의 잔치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는 백인선수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소수가 되면서 뛰어난 기량을 가진 백인선수들의 가치가 반대로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런 드라이포트가 연봉계약에 있어서 성적에 비해서 많이 받았던 이유도 백인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었습니다. 발렌수엘라 등으로 다저스의 흥행수익을 파이를 키웠지만, 백인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백인부자의 야구성공기인 마이크 피아자가 흥행상 중요한 요소이듯이 대런 드라이포트의 상품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다저스는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시킨 것이었습니다.
동기생인 고교야구의 빅3(임선동, 조성민, 손경수)와 차명주, 곽재성, 박재홍 등에 가려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박찬호에게 1993년에 뜻하지 않는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야구를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였고, 공교롭게도 대회가 미국 버팔로에서 열렸기에 당연히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나 관계자들이 관중석을 열심히 채우고 있었습니다. 당시 임선동과 조성민 등이 컨디션난조로 부진했지만, 박찬호는 150km대의 강속구를 바탕으로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이면서 한국이 쿠바에 이어서 준우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대회에서 1승 3세이브를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을 하였습니다. 당근 박찬호의 활약에 주목한 브레이브스를 필두로 양아치들, 다저스 등이 스카우트하러 태평양을 건너 뻔질나게 날아왔고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다저스가 다른 구단에 비해서 높은 베팅을 날리면서 우여곡절 끝에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박찬호 이전에도 최동원이나 선동렬, 박동희 등이 계약단계까지 갔지만, 적은 계약금과 병역이라는 결정적인 문제로 미국행 일보직전인 김포공항에서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박찬호를 둘러싼 다저스와 대학, 스티브 김 등이 머리를 맞댄 끝에 유학생신분으로 메이저리그행이라는 묘안을 짜내었습니다. 그리고 계약금으로 120만달러는 거금을 받았습니다. 입단 동기생인 대런 드라이포트가 130만달러(전체 1위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100만달러)였고,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이 630만달러(당시 다저스 최고연봉이 톰 캔디오티의 365만달러)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고액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다저스가 박찬호에게 거액을 투자한 것은 발렌수엘라매니아처럼 박찬호를 통해 LA의 한국인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모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흥행-장기적인 상품성을 위해서 드라이포트와 박찬호에게 메이저리그 직행이라는 선물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1994년의 다저스는 불운한 한해였습니다. 선발이나 구원진영에 믿을 만한 좌완투수가 없다는 약점은 있었지만, 신구조화 속에서 기대주인 이스마엘 발데스가 무난한 메이저리그 데뷔를 가졌고, 타선에서는 기존의 마이크 피아자에 라울 몬데시가 가세하면서 더욱 더 강력한 타선을 구축하면서 처음으로 3개지구로 재편된 동부지구에서 자이언츠에 3.5경기 차이로 수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8월12일 샐러리갭을 둘러싼 노사간 대립은 마침내 파업으로 이어졌고, 9월 14일 시즌이 공식적으로 취소되면서 모처럼 가을잔치에 참석할 꿈에 부풀었던 다저스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해야할지 재수없는 넘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해야할지 90년대 들어서 제대로 풀리는 날이 없는 다저스였습니다.
박찬호를 스카우트하면서 아시아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던 다저스는 1995년 일본프로야구의 슈퍼스타였던 노모 히데오를 영입하였습니다. 일본프로야구에 데뷔한 1990년부터 4년연속 최다승과 최다탈삼진왕 등을 차지한 노모 히데오는 어깨부상으로 1994년 한해 주춤하였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에 장기계약을 둘러싼 킨테츠와의 충돌은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노모는 돌연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하면서 다저스에 입단하였습니다. 이로서 노모는 1960년대 자이언츠에서 활동했던 무라카미 마사노리에 이어서 2번째 일본인 메이저리거가 되었습니다. 당시 노모의 메이저리그행에 대해서 일본에서도 대부분 부상경험이 있는 노모의 실패를 예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5월 2일 첫등판을 시작으로 노모는 독특한 투구폼에서 던져진 폭포수같은 포크볼에 상대 타자들은 헛방망이질만을 연속으로 하면서 미국전역에 토네이도경보가 울렸습니다. 노모는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의 스타팅멤버로 나서기도 하는 등 1981년 독특한 투구폼과 마구와 같은 스크류볼로 선풍을 일으켰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에 비교될정도로 노모의 등장과 폭풍같은 질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시즌이 끝났을 때에 노모가 받은 성적표에는 13승 6패 방어율 2.54, 236탈삼진 등으로 탈삼진왕과 생뚱맞은 신인왕을 차지하였습니다. 당시에도 노모를 신인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 이외의 프로야구를 마이너리그로 취급하는 메이저리그였기에 노모는 생뚱맞게도 일본과 미국에서 신인왕을 수상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13승의 노모와 함께 기존의 라몬 마르티네스도 에이스다운 17승 7패를 거두었고, 신예 이스마엘 발데스도 13승을 올리는 등의 활약으로 래리 워커(36), 단테 비세트(40), 안드레스 갈라라가(31), 비니 카스티야(32) 등 4명이 30홈런이상을 기록하는 등의 산동네표 방망이를 앞세운 콜로라도 로키스에 1경기 앞서면서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시네티 레즈와 치른 디비젼에서는 마르티네스와 노모가 허무하게 초반에 무너지면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3연패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장시간 애무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놓고 본게임은 5초만에 찍한 꼴이라고 항 수 있었습니다.
1996년 토드 홀랜스워스가 타율 0.291, 12홈런, 21도루 등으로 신인왕에 오르면서 1992년 에릭 캐로스를 시작으로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노모 히데오에 이어서 최초로 5년연속 신인왕을 배출하였습니다. 라몬 마르티네스, 노모 히데오, 이스마엘 발데스, 페드로 아스타시오가 선발진에 확실히 자리를 잡았고, 대런 드라이포트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인 불펜진에서도 스캇 래딘스키와 안토니오 오수나 등에 박찬호가 처음으로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면서 투수왕국 다저스가 완전히 재건되었습니다. 타선에서도 신인왕 4인방을 중심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다저스는 이제 불행끝 행복시작을 외칠 분위기였습니다.호사다마라고 해야할지 1976년 시즌 막판에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 다저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토미 라소다감독이 시즌 도중에 심장발작으로 쓰러지면서 빌 러셀이 감독대행으로 팀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파란 피로 충만했던 라소다의 부재 때문인지, 아니면 라소다의 은퇴를 축복하는 의미인지 알 수는 없지만, 1984년 한번 월드시리즈를 밟은 것을 제외하고 중하위권을 맴돌던 샌디에이고성당의 신부들이 대반란을 일으키면서 지구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래도 다저스는 샌디에이고에 1게임 뒤진 2위였지만,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운좋게 진출한 디비젼에서 90년대의 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만나면서 다저스의 행운은 그 끝을 고했습니다. 사이영트리오(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에게 간단하게 스윕당하면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1997년 FA로 영입한 토드 질과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에릭 캐로스가 30홈런 이상을 기록하였고, 박찬호가 14승을 거두면서 선발 한자리를 꿰찼고, 래딘스키, 오수나, 드라이포트 등의 불펜진도 제역활을 펼쳤지만, 팀의 마무리투수인 토드 워렐이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자이언츠에 2게임 뒤진 2위에 그쳤고, 와일드카드경쟁에서도 플로리다 말린스에 뒤지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개인자본으로 마지막까지 돈잔치로 변화한 메이저리그판에서 선전하던 오말리가 1998년 3월 19일 무성하게 나돌던 루머대로 구단매각발표가 있었습니다. 미디어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다저스의 대주주가 되면서 다저스도 공격적인 선수단 운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던 다저스가 주인이 머독임을 사람들에게 확실히 주지시킨 것은 7월 14일이었습니다. 7월 13일까지 파드레스와 자이언츠에 뒤진 지구 3위로 정확하게 반타작을 하고 있던 다저스였기에 머독으로서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성적-부임 첫해 우승-을 위해서 플로리다 말린스와 뉴욕 메츠와의 초대형 삼각트레이드를 단행하였습니다. 다저스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마이크 피아자와 토드 질을 내보내고 게리 세필드와 찰스 존슨, 바비 보니아 등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만약 구단주가 오말리였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개인 소자본인 오말리의 다저스에서 중요한 수입은 관중수입이었습니다. 피아자의 경우 박찬호와 궁합이 맞지 않아서 한국의 박빠들이나 찌라시들로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수비력-특히 약한 어깨와 볼배합 등을 이유로 박찬호의 패배는 피아자의 잘못이라는 이유로 욕을 먹었지만, 석유재벌의 아들로서 드래프트하위라운드 성공신화의 주인공인 피아자에 대한 미국백인사회의 지지는 상상 이상입니다. 오말리가 아닌 머독이었기에 흥행의 중요요소인 피아자보다는 우승을 할 수 있는 세필드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우승을 경험한 세필드의 공격력과 찰스 존슨의 수비력 등을 생각하면 트레이드 자체는 다저스의 이익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팔꿈치 수술 이후로 제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노모를 메츠로 트레이드하면서 그렉 맥미첼과 데이브 믈리키 등을 받아들였고, 토드 워렐의 은퇴로 공백이 생긴 마무리를 맡을 것으로 기대했던 오수나와 래딘스키가 중압감 등으로 제역활을 하지 못하자 신시네티 레즈의 마무리인 제프 쇼를 트레이드해왔습니다. 게다가 에릭 영에 밀려서 후보로 전락한 윌튼 게레로와 좌완 유망주인 테드 릴리 등을 엑스포스로 트레이드시키고 대신에 정상급 유격수였던 마크 그루질라넥과 당시로서는 10승대 좌완투수인 카를로스 페레즈 등을 영입하였고, 시즌 중반에는 감독인 빌 러셀을 해고하고 글렌 호프먼을 내세우면서 시즌이 시작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다저스가 되었습니다. 구성원은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루어졌지만, 다저스의 성적은 변함없이 파드레스와 자이언츠에 이은 3위에 그쳤습니다.
머독으로서는 라이벌인 테드 터너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무너뜨리면서 야구계도 지배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남아 도는 것이 돈이기에 머독의 다저스는 시즌이 끝난 후에도 돈질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찰스 존슨 등을 뉴욕 메츠와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포함된 3각트레이드로 공갈포 토드 헌들리로 안방마님을 대체한 다저스는 케빈 브라운과 7년간 1억 5백만달러에 계약을 체결하면서 브라운에게 최초로 1억달러를 돌파한 선수라는 명예를 선물하였습니다. 뉴욕 메츠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신시네티 레즈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지구우승의 경험이 있는 명장 데이비 존슨을 감독으로 임명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졸부근성의 특징인 명품도배하기-일명 호박 줄 끗는다고 수박이 되냐는 명판불변의 법칙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기대대로 우승청부업자인 케빈 브라운이 18승을 거두었고, 각각 13승을 올린 박찬호와 불펜에서 선발로 전환한 드라이포트, 승운이 따르지 않아서 발데스가 9승에 그쳤지만, 선발진 자체로는 리그 정상급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기대주인 애드리안 벨트레가 3루에 무사히 정착한데다가 세필드효과로 캐로스가 자신의 캐리어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51도루를 성공시킨 에릭 영 등 1999년의 다저스는 개인기록만 놓고 본다면 월드시리즈 우승팀이라고 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성적을 올렸습니다. 제프 쇼의 화려한 불쇼와 유일한 왼손 선발투수로 기대를 모았던 카를로스 페레즈의 추락, 대규모의 트레이드로 인해 팀의 리더의 부재와 다저스 특유의 끈끈한 팀웍이 상실되면서 팀성적은 여전히 3위로 마감하였습니다.연애를 할 때에는 적절한 밀고 당기는 것이 필요하지만, 오로지 당기기만 고집하는 라울 몬데시 대신에 숀 그린을 영입하고, 또한 다저스를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오렐 허샤이저를 영입해서 특유의 끈끈함이 부활하기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고 해도 두꺼비가 없는 한 물이 찰리가 없었습니다. 에이스 브라운은 방어울 2.58로 1위를 차지하는 등 연일 호투를 펼쳤지만, 승리는 브라운을 피해서 잘도 도망가면서 13승에 머물렀습니다. 2, 3선발인 박찬호가 18승, 드라이포트가 12승을 올리면서 팀의 1, 2, 3선발들은 제 몫을 충분히 했지만, 4, 5선발인 카를로스 페레즈와 에릭 가니에의 부진과 불쇼에 재미를 들인 제프 쇼의 불장난, 리그 이동으로 인한 부진에 빠진 숀 그린 등의 영향으로 자이언츠에 11경기 뒤진 2위에 그쳤습니다.
2001년의 다저스는 재수없는 넘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케이스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우승청부업자인 케빈 브라운과 5년간 5,500만달러라는 거액의 FA대박을 터트린 대런 드라이포트가 약속이나 한듯이 돈벌만큼 번 당신 떠나라는 모카드회사 광고에라도 출연하고 싶었는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였지만, 코리언 익스프레스로서 올시즌 후에 FA대박을 노리는 박찬호는 쉴 수가 없었습니다. 박찬호는 부상병동 다저스에서 유일하게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15승 11패 방어율 3.50으로 다저스의 마지막 버팀목으로 선전했습니다. 테리 아담스가 12승을 올리면서 뒷받침을 했지만, 기대를 모았던 앤디 애쉬비도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마운드 붕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폴 로두카의 등장과 여전히 믿음직한 게리 세필드와 세필드우산 속에서 49홈런을 친 숀 그린 등 타선이 분전하면서 애리조나와 샌프란시스코와의 치열한 선두다툼과 와일드카드경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으면서 제임스 볼드윈을 수혈하였지만, 부진을 보이면서 마운드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서 시즌 성적 3위로 마감하였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에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로 전락한 다저스는 투타에 걸쳐서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하였습니다. 부상병동에서 유일하게 제몫을 한 박찬호를 포기하고 노모 히데오를 선택하였고,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를 저하시키는 세필드를 정리하였습니다.
세필드라는 우산을 잃었지만 숀 그린은 42홈런을 치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하였고, 돌아온 노모 히데오 역시 16승을 거두었고, 세필드의 댓가였던 오달리스 페레즈와 제2의 노모로 기대를 모은 이시이 카즈히사, 오말 달 등 좌완 3인방에 클로저로서 화려한 변신에 성공한 에릭 가니에, 클리블랜드에서 영입한 데이브 로버츠가 느림보로 전락한 다저스의 발이 되면서 신선한 바람으 일으켰지만, 여전히 애리조나와 자이언츠의 벽을 넘지 못하고 3위에 머물렀습니다. 케빈 브라운이 간만에 부상자에서 돌아온 2003년에는 노모, 페레즈와 함께 3각편대를 형성하였고, 마무리로 변신한 에릭 가니에가 55번의 세이브찬스에서 100% 성공을 기록하면서 55세이브로 사이영상을 수상하는 등 대활약을 펼쳤지만, 숀 그린의 급격한 장타력상실과 함께 4, 5선발의 부진 등으로 애리조나를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선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시즌이 끝난 후에 다저스는 지방질로 가득한 비대한 몸집을 줄이기 위해서 케빈 브라운을 양아치들에게 넘기면서 한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전도유망했던 제프 위버 등을 받아들이는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다이어트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2004년 1월 마침내 밑 빠진 독에 물붓기에도 지친 머독이 두손 두발을 다들면서 다저스를 부동산업자인 프랭크 맥커트 등에게 매각하였습니다. 새롭게 다저스를 인수한 맥커트 등은 효율적인 리빌딩을 벌이고 있던 댄 에번스를 의외로 해고하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단장의 오른팔인 폴 데포드스타를 단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최근 메이저리그의 화두인 저비용을 위해서 어슬레틱스의 성공신화를 거대 자본이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 다저스는 노모 히데오가 다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를 재현했지만, 방어율 4점대에 13승 트리오인 제프 위버, 이시이 카즈히사, 호세 리마에 지독하게도 승운이 따르지 않았던 오달리스 페레즈로 이어지는 짜임새 있는 선발진에 역대 최고액 불펜이라는 달갑지 않은 비아냥을 들었지만 불펜진에서 가능성을 보인 드라이포트와 기예르모 모타, 지오바니 카라라, 스윙맨 윌슨 알바레스에 여전히 무적을 자랑한 가니에 등의 불펜진이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타선에서도 악동이나 성질 더러운 선수랭킹에서 빠질 수 없는 밀튼 브래들리와 신예 제이슨 월스 등에 FA대박을 위해서 애드리안 벨트레가 마침내 MVP급 재능-약발을 발휘한 타선도 예전과는 다른 짜임새를 보이면서 다저스의 큰 힘이 되었습니다.자이언츠와 파드레스와 치열한 순위경쟁을 펼치던 다저스는 트레이드 마감시한에 로두카와 모타 등을 주고 플로리다 말린스로부터 최희섭과 브레드 페니 등을 받는 트레이드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부터 스티브 핀리 등을 영입하였습니다. 불펜진의 핵인 모타의 공백을 대런 드라이포트에게 기대했지만, 다시 수술대 위로 올라가면서 시즌을 마감하면서 힘든 상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다저스는 10월 3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최종전을 남겨둔 시점에 자이언츠에 1경기 앞선 불안한 선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만약 시즌 최종전에서 자이언츠에게 패배할 경우 자이언츠와 동률이 되어서 지구우승을 놓고 플레이오프를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정말 오래간만에 진출한 포스트시즌인 디비젼 상대는 투타에서 내셔널리그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세인트루이스 카지널스였습니다. 3차전에서 호세 리마의 깜짝 완봉승으로 스윕을 면한 것에 만족하면서 1승 3패로 투타에서 완패하면서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에 하향세를 보이는 숀 그린을 처분하였고, 제프 켄트와 데릭 로, J. D. 드류 등을 영입하였습니다.
최강의 마무리 가니에와 장기계약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마무리를 발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인지도 관심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가니에가 넘버원 불펜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클로저들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라루사이즘의 1이닝 클로저에 부정적인, 혹은 지나친 출혈을 하지 않는 빌리 빈스타일은 오클랜드라는 스몰마켓의 한계에 의한 것인지 빈의 수제자라고 말해지는 데포드스타를 통해서 살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투타에 걸쳐서 강력한 에이스는 없지만, 고른 기량의 절대 만만하지 않는 선발진과 불펜, 그리고 신구조화 속에 짜임새를 갖추어 나가는 타선 등을 생각하면 여전히 애리조나와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와 함께 격전을 치룰 전력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가장 큰 구멍은 누가 주인이 되더라도 신뢰를 받을 수 없는 포수진을 어떻게 그리고 누가 맡으면서 파란피의 영광을 재현할 것인지 주목되는 점입니다.최희섭의 영입으로 다시 한번 한국팬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지만, 지나치게 최희섭 개인에게 매몰되어서 일희일비할 경우 야구 자체를 맛볼 수 없었던 박찬호를 통한 교훈을 잊지 말았어면 좋겠습니다.
2005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위와 같이 말했지만, LA 다저스의 2005년은 주력선수들의 부상이라는 뜻하지 않는 복병을 만나면서, 시즌 성적 71승 91패를 기록하는 등 몰락하였습니다. 부상의 여파와 함께 다저스는 투타에 걸쳐서 팀 전체의 밸런스가 무너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게다가 애써 무시하던 엔젤스와의 LA 결전도 실질적으로 패배를 기록하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더 컸습니다.
결국 시즌이 끝나자마자, 다저스는 단순히 봉합이 아닌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하였습니다. 단장인 데포드스타와 감독인 짐 트레이시를 동반 퇴출시키고, 네드 콜레티와 그레디 리들을 새로운 단장과 감독으로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엔젤스의 도발에 반격을 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네드 콜레티는 우선 다저스의 약점을 메우기 위해서, 마이너리그의 유망주가 아닌 풍부한 자금력을 동원해서, 라파엘 퍼칼을 비롯한 노마 가르시아파라, 빌 뮬러, 브렛 톰코 등을 잡았고, 케니 로프턴, 서재응, 데니스 바에스 등을 트레이드로 영입하였습니다.
'손윤의 야리꾸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판정을 둘러싼 일관성 (2) | 2006/08/25 |
|---|---|
| 잊을 수 없는 선수들 (37) (0) | 2006/08/24 |
| LA Dodgers (4) (0) | 2006/08/23 |
| 잊을 수 없는 선수들 (36) (4) | 2006/08/22 |
| 잊을 수 없는 선수들 (35) (4) | 2006/08/18 |
| 에이전트는 두 얼굴의 사나이? (4) | 2006/08/17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