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중에 자주 써는 말로 [새옹지마]라는 것이 있다. 새옹지마의 유래는 유별나게 친절한 척하는 N포털의 백과사전 새옹지마에 맡기는 것으로 하고 ... 흔히들 인생지상 새옹지마라고 하듯이 세상의 일이란 것은 변화가 극심해서 사람의 미래 -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1월 26일(미국시간) 켄 그리피 Jr.와 함께 90년대를 대표하던 빅허트 프랭크 토머스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1년간 50만달러(인센티브를 포함해서 최대 310만달러)에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뉴스를 봤다. 행크 아론의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홈런을 깰 유일한 존재로 말해졌던 켄 그리피 Jr.가 신시네티 레즈로 이적한 후에 부상 등으로 큰 삽을 들었던 것처럼 프랭크 토머스 역시 부상 등으로 배트 대신에 삽을 선택하였다.
프랭크 토머스는 풋볼 장학생으로 오번유니버스티에 입학했지만, 부상 등으로 풋볼은 단 1년밖에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야구에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웠다. 대학 통산 49홈런과 함께 한시즌 최다 사사구인 73사사구를 기록하는 등 장타력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선구안을 보였고, 198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7번째로 화이트삭스에 지명되었다. 화이트삭스에 입단한 프랭크 토머스는 루키리그와 1A에서 총 71경기에 출장해서 3할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면서 될 성부른 떡잎임을 증명하였다. 입단 첫해의 활약을 인정받아서 1990년에는 스프링캠프에 초대되어서 텍사스특급인 놀런 라이언으로부터 대형 홈런을 치면서 강렬한 인상을 구단과 팬들에게 심어주었다.
1990년 2A에서 시작한 프랭크 토머스는 109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0.323, 18홈런, 71타점 등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8월 2일 3A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선발출장한 8월 2일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역전타를 치는 등 13경기 연속안타를 포함해서 총 60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0.330, 7홈런, 31타점을 기록하였다. 게다가 삼진/사사구비율도 54/44로 출루율 0.454, 장타율 0.529를 기록하는 등 많은 유망주들이 절망했던 메이저리그라는 벽을 가볍게 돌파하였다. 또한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하는 올해의 마이너리그상도 수상하면서 자신의 짧은 마이너리그 생활을 화려하게 마감지었다.
메이저리그 2년차로 성장이 기대되던 1991년에는 8월 한달동안 타율 0.373, 8홈런, 27타점 등을 기록하면서 생애 첫 월간 MVP에 선출되는 등 158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0.318, 32홈런, 109타점을 기록하였고, 또한 138개의 사사구를 얻어내면서 구단최고기록을 갱신하였다. 이런 활약으로 아메리칸리그 MVP투표에서는 칼 립켄 Jr.와 세실 필더에 이어서 3위를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급성장하였다.
1992년에도 프랭크 토머스의 방망이는 멈출 줄을 몰랐다. 19경기 연속안타를 포함해서 160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0.323, 24홈런, 115타점에 리그 최다인 46개의 2루타와 장타율 리그 1위인 0.439를 기록하였다. 또한 122사사구로 구단 역대 최초로 2년연속 세자리수 사사구를 기록한 선수가 되기도 하였다. 사실 프랭크 토머스의 가장 큰 매력은 그의 뛰어난 체격조건에서 나오는 장타력이 아닌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많은 숫자의 사사구와 출루율이 그를 90년대를 대표하는 타자로 꼽는 이유였다.
순조롭게 화이트삭스의 얼굴마담과 함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자리를 잡은 프랭크 토머스는 1993년 타율 0.317, 41홈런, 128타점, 112사사구(54삼진) 등으로 마침내 아메리칸리그 MVP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41홈런은 딕 알렌(1972년)과 칼튼 피스크(1985년)가 기록한 구단 한시즌 최다홈런인 37홈런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회이트삭스도 94승 68패로 텍사스 레인저스를 8게임 차이를 보이면서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였고, 프랭크 토머스는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을 경험하게 되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타율 0.353, 1홈런, 3타점 등으로 중심타자다운 활약을 펼쳤지만, 데이브 스튜어트와 후안 구즈먼이 2승씩을 거둔 호화군단 블루제이스에게 2승 4패를 기록하면서 조 잭슨의 저주를 풀지는 못했다.
큰 경기를 통해서 팀의 우승이라는 목표를 더욱 더 절감한 프랭크 토머스는 1994년 시즌 개막과 동시에 연일 홈런포를 날리면서 올스타전까지 32홈런을 기록하였고, 올스타전의 홈런레이스에서는 비거리 158.19m의 초대형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역시 예사롭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던 켄 그리피 Jr.와 매트 윌리암스 등과 함께 뜨거운 홈런레이스를 펼치면서 1961년 로저 매리스가 기록한 한시즌 최다인 61홈런을 깰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파업으로 시즌이 8월 12일에 조기에 막을 내리면서 프랭크 토머스는 타율 0.353, 38홈런, 101타점 등으로 아메리칸리그 MVP를 2년연속 수상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켄 그리피 Jr.는 시즌 40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매트 윌리암스는 43홈런으로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내셔널리그에서 MVP를 수상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제프 배그웰과 토마스 프랭크의 생년월일이 1968년 5월 27일로 같은 것도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처음으로 3개지구로 나뉘면서 중부지구에 속한 팀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1경기 앞선 수위를 달리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프랭크 토머스, 로빈 벤추라와 함께 중심타선을 이루었던 훌리오 프랑코가 태평양을 건너서 일본프로야구의 치바 마린스로 떠난 1995년에도 타율 0.308, 40홈런, 111타점 등을 기록하였다. 처음으로 부상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1996년에도 타율 0.349, 40홈런, 134타점 등을 기록하였다. 신예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아깝게 뒤져서 타격왕은 놓쳤지만, 2년연속 40홈런 이상과 6년연속 100타점, 100사사구 이상을 기록하였다.

1997년 시즌을 대비해서 화이트삭스는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타자로 군림하고 있던 알버트 벨을 FA로 영입하면서 프랭크 토머스와 짝을 이루게 하였다. 최고타자 콤비에 구단과 팬들은 열광하였고, 그들 콤비는 각자 30홈런 이상과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였지만, 투수력의 공백을 메우지는 못하면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이어서 중부지구 2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어쨋든 알버트 벨이라는 훌륭한 우산을 얻은 프랭크 토머스는 타율 0.347로 첫 수위타자에 등극하였고, 35홈런과 125타점 등의 성적을 거두었다.
1998년에는 알버트 벨이 타율 0.328, 49홈런, 152타점 등으로 맹활약하였지만, 이혼과 야구가 아닌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파산하는 등 정신적으로 힘든 한해를 보낸 프랭크 토머스는 29홈런, 109타점에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2할대 타율(0.269)를 기록하는데 그치면서 화이트삭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알버트 벨과 로빈 벤추라가 떠난 1999년에는 신예들인 폴 코네코와 매그리오 오도네스 등과 함께 처음으로 중심타선을 이루었지만, 왼발목 부상으로 시즌을 끝내지한 프랭크 토머스는 가까스로 3할 이상(0.305)의 타율은 기록했지만, 15홈런, 77타점, 87사사구를 얻어면서 8년연속으로 기록하고 있던 20홈런 이상과 세자리수 타점/사사구에 제동이 걸렸다. 시즌 도중에 통산 1,500안타, 300홈런, 1,000타점 등을 달성했던 기쁨은 결국 한때에 불과했던 것이다.
2000년 부상에서 돌아온 프랭크 토머스는 타율 0.328, 43홈런, 143타점 등으로 매그리오 오도네스, 폴 코네코와 이른바 TKO타선의 중심축다운 활약을 펼쳤고, 또한 카를로스 리와 호세 발렌틴도 20홈런 이상과 90타점 이상을 마크하면서 팀도 5년 연속으로 중부지구의 왕좌를 지키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밀어내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와일드카드로 올라온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디비젼시리즈에서 허버트 페리를 제외한 믿었던 핵타선이 침묵만을 지키면서 3연패로 스윕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어쨋든 재기에 성공하면서 아메리칸리그 재기상을 손에 넣은 프랭크 토머스는 생애 3번째 MVP에 도전했지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제이슨 지암비에 근소하게 뒤진 2위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0년의 프랭크 토머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가장 중요한 화룡정점에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었다.
1997년 말 화이트삭스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6,670만달러(2006년 팀옵션)에 연장계약을 체결했던 프랭크 토머스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10년간 25,200만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선수들의 몸값이 급등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프랭크 토머스는 구단에게 자신의 연봉을 현수준에 맞게 재조정해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구단은 No만을 외쳤고, 그는 2001년 스프링캠프를 무단이탈하는 불상사를 연출하였다. 팀의 정신적 리더답지 않는 행동에 팬들은 비난을 퍼부었고, 매스컴 역시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선수로 낙인을 찍었다.
프랭크 토머스의 불운은 시즌이 시작되어서도 여전해서 시즌 초반이던 4월 27일 스즈키 이치로의 타구를 잡으려다가 오른팔 삼두근에 부상을 입어면서 결국 20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하면서 시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타율 0.221, 4홈런, 10타점이라는 믿기 힘든 성적과 함께 ... ... 팀의 리더의 황당한 소동과 이어서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화이트삭스는 매그리오 오도네스와 폴 코네코, 카를로스 리 등이 분전했지만, 추락을 피할 수는 없었다.
2002년 부상에서 돌아온 프랭크 토머스는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0.252라는 낮은 타율을 기록했지만, 28홈런과 92타점 등으로 재기의 가능성은 보였다. 하지만, 프랭크 토머스는 팀의 중심이 폴 코네코와 매그리오 오도네스로 옮겨가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다시 한번 자신의 연봉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어면서 팀의 분위기를 저하시켰다. 그리고 폴 코네코가 공개적으로 프랭크 토머스를 비난하는 등 프랭크 토머스 자신이 점점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 되어갔다. 그래도 여전히 프랜차이즈스타로서 재기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화이트삭스는 프랭크 토머스와의 불안한 동거를 2003년에도 계속하기로 하였다.
2003년 프랭크 토머스는 작년에 이어서 2년연속 세자리수(115개) 탈삼진과 0.267라는 낮은 타율을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42홈런과 105타점을 올리면서 아직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성적으로 나타냈다. 약물의 영향 등으로 40홈런이 우스운 시대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약물이 아닌 자신의 재능으로 40홈런 이상을 기록한 프랭크 토머스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3할 이상의 타율은 기본사양이던 정교함과 자타공인의 선구안 등을 생각하면 역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 중의 한명이라고 생각한다.
2003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프랭크 토머스였지만, 2004년 7월 7일 발목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74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0.271, 18홈런, 29타점 등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프랭크 토머스는 시즌이 끝난 후에 수술대에 오르면서 재기에 대한 강한 집념을 나타냈지만, 2005년에도 부상의 후유증으로 34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219, 12홈런, 26타점 등을 기록하다가 7월 22일 다시 부상자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면서 시즌을 마감하였다. 화이트삭스가 2005년 88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지만, 16시즌 동안 오로지 화이트삭스의 유니폼을 입고 주포로서 활약한 프랭크 토머스는 구경꾼으로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에 화이트삭스는 프랭크 토머스와의 옵션을 받아들이지 않어면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짐 토미를 영입하면서 완전히 결별하였다. 리그 MVP 2회, 타격왕 1회, 실버슬러거 4회 등에 통산 타율 0.307, 448홈런, 1,465타점 등을 기록하면서 한때 마이클 조던과 함께 시카고를 대표하던 프랭크 토머스는 쓸쓸하게 화이트삭스의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와 관련된 추문들 - 연봉문제에 따른 소동과 팀의 리더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 등으로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선수의 한명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자승자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6년간 오로지 화이트삭스의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프랭크 토머스가 팀의 이익에 따라서 간단하게 내쳐지는 상황을 보면서 경쟁적 개인주의사회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한단면을 볼 수 있다. 경쟁적 개인주의는 한마디로 능력주의로 경쟁을 통해서 무능력한 인간은 사회로부터 도태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이다. 매년 가계파산의 50% 정도가 의료비부담 때문이라고 들은 적도 있을 만큼 돈이 없어면 죽은 목숨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한방부르스를 출 기회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지만, 결국 소수에게 자본이 집중되고 있고, 반면에 절대 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빈곤층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범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유의 나라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미국이지만, 그들의 자유는 24시간동안 사설경호원으로부터 지켜질 수 있는 돈(능력)이 있을 때만이다. 또한 무차별적인 보복전과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침략적인 행위들이 부메랑이 되어서 지구 어디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도 그들만의 자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빅허트 프랭크 토머스의 메이저리그 통산성적
예전과 같은 빅허트라는 닉네임에 어울리는 활약을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슬레틱스의 유니폼을 입은 프랭크 토머스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자연의 평범한 진리인 달은 차면 기운다는 사실을 .. 또한 인간은 단지 그 기우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90년대 메이저리그를 뜨겁게 달구었던 프랭크 토머스를 통해서 생각해본다.
프랭크 토머스 ...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아직은 늦지 않았다. 아직 기회는 있다.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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