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쾌속행진 중인 뉴욕 메츠의 선발투수인 빅터 잠브라노가 부상으로 사실상 올시즌을 마감하였다는 뉴스를 봤다. 그런데 그 기사의 댓글 중에 서재응을 내쳤을 때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글과 [낄낄 재응이랑 벤슨 생각 나겠네]라는 댓글이 있었다. 올시즌 선발로테이션에 합류한 브라이언 배니스터도 부상 중이기에 메츠로서는 트레이드카드로 활용한 크리스 벤슨이나 서재응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 오프시즌동안 서재응과 크리스 벤슨을 트레이드시킨 뉴욕 메츠의 행보는 잘못된 것일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메츠의 선택은 나쁘지 않다. 상대적으로 넘치는 선발투수로 불펜진을 보강한 메츠이기에, 그들의 선택은 트레이드로 메츠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활약 여부와는 관계없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단지 한국에서 서재응의 트레이드에 대해서 왈가불가하는 것은 트레이드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트레이드라는 것은 대부분 전력 외적인 요소들의 교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트레이드카드로 활용된 선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즘은 그래도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트레이드를 온몸으로 거부한다거나 자신을 트레이드시킨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는 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치라시들은 트레이드된 선수가 전소속팀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활약을 펼치면 복수니 저주니 뭐니 하는 납량특집극을 보이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트레이드를 주도하는 것은 각 구단의 GM이다. GM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팀을 보다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팀의 간판선수 등도 트레이드시키고 있다. 당연히 트레이드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도 GM에게 책임이 물어지기 때문에 감독 이상으로 좌불안석이 메이저리그의 GM이라고 할 수 있다. GM의 역량에 따라서 팀 성적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트레이드된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서 이해당사자인 구단들의 희비상곡선이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드래프트나 트레이드나 선수의 성적이라는 결과물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결과물에 따라서 GM의 역량이 평가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드래프트나 트레이드로 영입한 선수가 제대로 된 성적을 남기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을 받지도 않는 것이 메이저리그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수많은 트레이드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펼쳐질 것이다. 당연히 트레이드에 따른 손익대차표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어떤 트레이드도 잘못된 경우는 없다. 흔히들 말하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삽질성 트레이드도 이유는 충분히 있는 것이다. 아마도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삽질성 트레이드라고 하면, 1990년 보스톤 레드삭스와 1993년 LA 다저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례 - 1 : 레드삭스의 대삽질
1990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를 놓고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보스톤 레드삭스는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불펜투수인 래리 앤더센을 얻기 위해서 한 명의 마이너리거를 희생시켰다.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보스톤 레드삭스가 베이브 루스를 트레이드시킨 이래로 최악의 트레이드라고 평가되어지고 있다. 트레이드카드로 활용된 마이너리거의 이름은 바로 제프 배그웰이었다.
결과적으로 제프 배그웰이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보인 활약상과 기껏 15경기에 등판하였고, 또한 시즌이 끝난 후에 FA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이적한 래리 앤더센인 것을 생각하면, 배그웰을 트레이드카드로 활용한 레드삭스는 분명히 닭짓을 하였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제프 배그웰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시절의 배그웰이 아니었다. 좋게 평가해서 가능성이 높은 유망한 마이너리거 3루수일 뿐이었다.
제프 배그웰의 마이너리그에서의 성적
| G | BA | AB | R | H | HR | RBI | SO | BB | OBP | SLG | ||
| 1989 | GCL Red Sox (R) Winter Haven (1A) | 5 64 | .316 .310 | 19 210 | 3 27 | 6 65 | 0 2 | 3 19 | 0 25 | 3 22 | .412 .379 | .368 .419 |
| 1990 | New Britain (2A) | 136 | .333 | 481 | 63 | 160 | 4 | 61 | 57 | 73 | .423 | .457 |
제프 배그웰의 마이너리그 시절의 성적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에는 파워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또한 보스톤 레드삭스의 3루에는 팀의 간판스타인 웨이드 보그스가 있었고, 1루에는 이미 자리를 잡은 카를로스 킨타나가 있었다. 카를로스 킨타나 역시 파워는 별로 없는 선수였기에 제프 배그웰이 레드삭스에 남아있었다면 그를 밀어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3할에 약간 못미치는 타율을 기록하는 등 적응하고 있는 킨타나였고, 또한 마이너리그에서는 1989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로 뽑은 모 본이 3A에서 화력쇼를 펼치고 있었다.
모 본과 함께 1989년 드레프트에서 4라운드에 픽업된 제프 배그웰은 레드삭스의 입장에서는 특급유망주도 뭐도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지구수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레드삭스는 불펜진에서 큰 약점을 보이고 있었다.
1990년 보스톤 레드삭스의 불펜진 성적
| Name | G | W | L | GF | SV | IP | H | HR | SO | BB | EAR | WHIP |
| J. Reardon | 47 | 5 | 3 | 37 | 21 | 51.3 | 39 | 5 | 33 | 19 | 3.16 | 1.13 |
| R. Murphy | 68 | 0 | 6 | 7 | 20 | 57.0 | 85 | 10 | 54 | 32 | 6.32 | 2.05 |
| D. Lamp | 47 | 3 | 5 | 5 | 0 | 105.6 | 114 | 10 | 49 | 30 | 4.68 | 1.36 |
| J. Gray | 41 | 2 | 4 | 28 | 9 | 50.6 | 53 | 3 | 50 | 15 | 4.44 | 1.34 |
| J. Reed | 29 | 2 | 1 | 15 | 2 | 45.0 | 55 | 1 | 17 | 16 | 4.80 | 1.58 |
레드삭스는 불펜보강을 위해서 노력하였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리 스미스와 래리 앤더센 등을 영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레드삭스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2경차이로 따돌리고 지구 우승을 차지하였다. 리그 챔피언십에서는 당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제프 배그웰 등을 희생시키면서 불펜보강한 보람은 지구우승이라는 결과물을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래리 앤더센의 트레이드 당시의 성적
| G | W | L | GF | SV | IP | H | HR | SO | BB | EAR | WHIP | ||
| 1987 | HOU | 67 | 9 | 5 | 31 | 5 | 101.6 | 95 | 7 | 94 | 41 | 3.45 | 1.34 |
| 1988 | HOU | 53 | 2 | 4 | 25 | 5 | 82.6 | 82 | 3 | 66 | 20 | 2.94 | 1.23 |
| 1989 | HOU | 60 | 4 | 4 | 21 | 3 | 87.6 | 63 | 2 | 85 | 24 | 1.54 | 0.99 |
| 1990 | HOU BOS | 50 15 | 5 0 | 2 0 | 20 4 | 6 1 | 73.6 22.0 | 61 18 | 2 0 | 68 25 | 24 3 | 1.95 1.23 | 1.15 0.96 |
제프 배그웰이 보스톤 레드삭스에 그대로 있었다면, 아마도 그냥 그런 선수로 끝났을 확률이 높다. 매년 수많은 마이너리그의 유망주들이 나타나고 또한 그 숫자만큼 사라지고 있는 것이 메이저리그이다. 어쩌면 트레이드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프 배그웰을 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꿈을 꾸었던 레드삭스의 유니폼을 입지 못한 배그웰은 트레이드를 현실로 받아들이는데 무려 2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제프 배그웰 개인으로서는 오랜 꿈이었던 레드삭스의 유니폼을 입지 못한 아쉬움은 남겠지만, 반대로 트레이드로 배그웰의 야구인생은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례 - 2 : 다저스의 X파일
1993년 시즌이 끝난 후에 LA 다저스는 2루공백을 메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당시 유격수였던 호세 오퍼먼에게 포지션이동을 제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다저스가 1993년 11월 19일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서 한방에 특급 2루수를 영입하는데 성공하였다. 바로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주전 2루수인 델리노 드쉴즈를 트레이드로 영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 트레이드는 다저스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라고 말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드쉴즈의 트레이드 상대가 바로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다저스가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트레이드카드로 활용한 것은 대삽질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다저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트레이드가 성립했을 때에는 다저스가 남는 장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지구인이 아닌 외계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다저스 최악의 대삽질의 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 만약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다저스에 남아있었다면 어떤 결과를 이루어냈을까?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다저스의 수뇌진들은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가능성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부상 가능성이 높은 투구폼 등으로 기껏해야 몇 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불펜과 선발을 오가다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였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10승을 거둔 1993년에도 그가 선발투수로 등판한 경기는 3경기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시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이너리그에서도 젊은 영건들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메이저리그 데뷔 3년간의 성적
| G | GS | W | L | GF | SV | IP | H | HR | SO | BB | EAR | WHIP | ||
| 1992 | LAD | 2 | 1 | 0 | 1 | 1 | 0 | 8.0 | 6 | 0 | 8 | 1 | 2.25 | 0.88 |
| 1993 | LAD | 65 | 2 | 10 | 5 | 20 | 2 | 107.0 | 76 | 5 | 119 | 57 | 2.61 | 1.24 |
| 1994 | MON | 24 | 23 | 11 | 5 | 1 | 1 | 144.6 | 115 | 11 | 142 | 45 | 3.42 | 1.11 |
1990년 20승을 거둔 페드로의 형인 라몬 마르티네스와 1993년 14승을 거두면서 메이저리그에 순조롭게 정착한 페드로 아스타시오에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의 호출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스마엘 발데스 등에 1993년 드래프트에서 뽑은 대런 드라이포트 등이 있었다. 반면에 2루는 스티브 색슨 이후로 매년 주인공이 바뀌고 있었다. 게다가 2루를 맡았던 조디 리드나 레니 해리스 등이 FA로 풀린 상황이었다. 마이너리그에 2루를 맡을 만한 마땅한 자원도 없었기에 트레이드를 통한 2루수의 보강이 필요하였다.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2년연속 지구 2위에 머물렀고, 또한 에이스인 데니스 마르티네스가 FA로 풀린 상황이었다. 데니스 마르티네스가 빠져 나간 선발마운드의 공백을 메울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내야에는 외계인의 트레이드 상대인 델리노 드쉴즈 외에도 마이크 랜싱과 션 베리 등이 있었기에 내야도 교통정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1993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12승을 올린 제프 파세로를 선발로 전환할 경우에 그와 마찬가지로 스윙맨이 필요하였고, 다저스에서 롱릴리프로 활약한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스윙맨, 혹은 최소한 불펜에서 마운드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선수로 파악한 것이다.
즉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영입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X - 파일의 멀더가 있어서 그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즉시전력감의 스윙맨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델리노 드쉴즈가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보여준 4년간의 성적을 보면, 트레이드 당시에는 불쌍한 엑스포스의 닭짓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델리노 드쉴즈의 엑스포스와 다저스에서의 성적
| G | BA | R | AB | H | HR | RBI | SB | CS | SO | BB | OBP | SLG | ||
| 1990 | MON | 129 | .289 | 69 | 499 | 144 | 4 | 45 | 42 | 22 | 96 | 66 | .375 | .393 |
| 1991 | MON | 151 | .238 | 83 | 563 | 134 | 10 | 51 | 56 | 23 | 151 | 95 | .347 | .332 |
| 1992 | MON | 135 | .292 | 82 | 530 | 155 | 7 | 56 | 46 | 15 | 108 | 54 | .359 | .398 |
| 1993 | MON | 123 | .295 | 75 | 481 | 142 | 2 | 29 | 43 | 10 | 64 | 72 | .389 | .372 |
| 1994 | LAD | 89 | .250 | 51 | 320 | 80 | 2 | 33 | 27 | 7 | 53 | 54 | .357 | .322 |
| 1995 | LAD | 127 | .256 | 66 | 425 | 109 | 8 | 37 | 39 | 14 | 83 | 63 | .353 | .369 |
| 1996 | LAD | 154 | .224 | 75 | 581 | 130 | 5 | 41 | 48 | 11 | 124 | 53 | .288 | .298 |
엑스포스에서 4년간 최소 42개 이상의 도루와 3할에 근접하는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델리노 드쉴즈의 영입으로 다저스는 호세 오퍼먼과 함께 리그 최강의 테이블세터진을 구성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드쉴즈는 다저스에서 물방망이로 추락하였고, 많은 숫자의 삼진에서 알 수 있듯이 선구안의 부재로 출루율 역시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반면에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성장하였고, 외계인을 추방한 LA의 닭짓은 두고 두고 욕을 먹고 있을 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루어지는 트레이드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간판선수끼리의 트레이드이고, 두번째는 즉시전력감과 유망주 세트간의 트레이드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실력은 있지만, 적군인지 아군인지 헷갈리게 하는 골치꺼리를 퇴출시키기 위한 트레이드이다. 특히 3번째는 메이저리그 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삼성이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마해영이 롯데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된 것은 선수회와 관계된 보복성 트레이드였다.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초창기에는 구단 오너와 충돌한 선수가 트레이드된 사례는 상당히 많다.
테드 윌리암스나 타이 콥에 비견되는 사상 최고의 우타자라고 불리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로저스 혼스비와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의 프랭키 프리쉬 간의 트레이드도 지금은 세기의 대트레이드라고 포장되고 있지만, 사실상 보복성 트레이드였다. 카디널스의 감독겸 선수로 1926년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로저스 혼스비는 오너인 샘 브리던에게 장기계약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전부터 뭐던지 말하지 않어면 참지 못하던 로저스 혼스비와 오너인 브리던은 앙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브리던은 오저스 혼스비와 장기계약을 체결할 생각이 없었고, 어떻게던지 혼스비를 처분하고 싶어했다.
로저스 혼스비와 프랭키 프리쉬의 트레이드 이전까지의 성적
| G | AB | R | H | HR | RBI | SO | BB | BA | OBP | SLG | ||
| R. Hornsby | 1915-1926 | 1534 | 5798 | 1080 | 2083 | 191 | 1051 | 474 | 648 | .359 | .471 | .570 |
| F. Frisch | 1919-1926 | 1000 | 4053 | 701 | 1303 | 54 | 524 | 139 | 280 | .321 | .391 | .444 |
이 때 카디널스에게 접근한 것이 뉴욕 자이언츠였다. 팀의 주장으로서 중심선수인 프랭키 프리쉬와 감독인 존 맥그로우도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하는 사이였다. 결국 팀의 핵심이지만, 그냥 남주기에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가지고 있기에는 껄끄러운 로저스 혼스비와 프랭키 프리쉬는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악동으로 불리는 밀턴 브래들리는 오프시즌 동안 예상대로 LA 다저스에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뛰어난 자질에 비해서 온갖 사고를 다 터트리던 브래들리는 제프 켄트와의 불협화음 등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이어서 다저스에서도 퇴출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2(LA 다저스 : 밀턴 브래들리, 안토니오 페레스) : 1(오클랜드 어슬레틱스 : 안드레 이티어) 트레이드가 이루어진 것이다.
안드레 이티어는 2003년 드래프트에서 어슬레틱스에 2라운드(전체 62순위)에 지명된 선수로 - 어슬레틱스는 이티어가 고교를 졸업하던 2001년에도 37라운드에서 지명하기도 하였다 - , 작년에는 2A인 텍사스리그에서 올해의 선수로 뽑히기도 한 유망주이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특급유망주는 아닌 안드레 이티어가 즉시전력인 밀턴 브래들리와 트레이드될 수 있었던 것은 팀의 골치꺼리를 다저스가 반드시 처분하기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프로야구에서 세기의 대트레이드라고 말할 수 있는 최동원과 김시진이 포함된 트레이드 - 이 트레이드도 보복성 트레이드였지만 - 처럼 양팀의 주축선수간의 빅딜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흔하지는 않지만, 자주 볼 수 있다. 핵심선수간의 빅딜의 대표적인 경우는 1960년 시즌 개막직전인 4월 17일에 이루어진 인디언스의 록키 콜라비토와 타이거스의 하비 퀸의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인디언스의 록키 콜라비토는 리그 홈런왕이었고, 타이거스의 하비 퀸은 리그 타격왕이었다. 결국 홈런왕과 타격왕의 맞교환은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WIN WIN 트레이드로 말해지지만, 그 후의 성적을 보면 타이거스가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어쨋든 타격왕과 홈런왕을 맞교환한 것은 당시 양팀의 홈구장의 특성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2003년 시즌이 끝난 후에 추진되었던 텍사스 레인저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보스톤 레드삭스의 매니 라미레스의 빅딜이 이루어졌다면,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및 최고액간의 트레이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트레이드는 주력선수와 유망주 패키지 간의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팀 창단 이후 2번째 빅세일에 들어간 플로다 말린스는 예상대로 카를로스 델가도를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시켰다. 델가도의 트레이드로 말린스가 메츠로부터 얻은 것은 마이크 제이콥스와 유스메이로 페티트를 얻었다.
카를로스 델가도를 1년간 400만달러라는 헐값으로 활용한 후에 마이크 제이콥스와 유스메이로 페티트라는 투타의 유망주를 손에 넣은 말린스의 횡재이지만, 메츠 역시 팀의 확실한 중심타자를 영입할 수 있었기에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이크 제이콥스와 유스메이로 페티트가 앞으로 몬스터급 활약을 펼칠 경우에는 메츠의 대표적인 닭짓으로 비난받을 것이다. 잘못된 트레이드라고 비난을 받고 있는 트레이드를 하나 하나 따져 볼 경우에는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유망주가 실제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또한 우승할 수 있는 찬스에서 미래를 생각해서 손가락만 빨다가는 굶어죽을 뿐이다. 트레이드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단지 그 당시에 그 팀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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