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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너무 너무 싫어해서 양아치들이라고 부르는 뉴욕 양키스는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팀이다. 현재 뉴욕 양키스는 1988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치열한 지구 중의 하나인 동부지구에서 8연패를 달성하였고, 올시즌에는 9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와일드카드를 포함한 포스트시즌에는 11년 연속으로 참가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성적을 자랑하는 양키스를 부진하다고 하면 지나치게 박한 평가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의 최근의 상황을 조금 들여다 보면 외화내빈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고, 또한 비교도 안되는 전력을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5년동안 월드시리즈를 밟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양키스는 부진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뉴욕 양키스는 1999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페이롤 1위를 차지한 이후로 7년연속으로 씀씀이가 제일 큰 구단이 되고 있다. 게다가 뉴욕 양키스와 페이롤 전체 2위와의 금액차이는 매년 더 크게 벌어질 뿐이다.

Payroll19992000200120022003200420052006
NYY88,130,70992,938,260112,287,143125,928,583152,749,814184,193,950208,306,817194,663,079
No 281,301,59890,375,953109,675,833108,366,060117,176,429127,298,500123,505,125120,099,824
No 3015,150,00015,654,50024,130,00034,380,00019,630,00027,528,50029,679,06714,998,500
AVG48,164,11455,859,33865,428,06067,489,25170,938,73869,042,19873,062,89777,556,890

2006년 양키스의 주요선수들의 연봉
PlayerPosPayrollPlayerPosPayrollPlayerPosPayroll
A. Rodriquez3B21,680,727D. JeterSS20,600,000J. Giambi1B20,428,571
M. MussinaSP19,000,000R. JohnsonSP15,661,427H. MatsuiOF13,000,000
J. DamonOF13,000,000J. PosadaC12,000,000G. SheffieldOF10,756,171
M. RiveraCL10,500,000C. PavanoSP8,000,000J. WrightSP7,666,667
K. FarnsworthRP5,416,666R. VilloneRP2,250,000O. DotelRP2,000,000
M. Cairo2B1,000,000R. Cano2B381,000S. ChaconSP3,600,000
B CrosbyOF354,250M. MyersRP1,150,000W. NievesC328,600
A. Phillips1B333,150S. ProctorRP352,675A. SmallRP1,200,000
T. SturtzeRP1,500,000K. StinnettC650,000C. M. WangSP353,175
B. WilliamsOF1,500,000

2005년 마침내 2억달러를 돌파했던 양키스는 올해에는 조금 페이롤을 줄이는데 성공하였다. 그래도 빅세일에 들어가면서 30개구단 가운데 최하위를 차지한 플로리다 말린스와는 무려 13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고, 평균 페이롤보다도 2.5배나 많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필두로 해서 데릭 지터, 랜디 존슨, 게리 세필드, 제이슨 지암비 등 사실상 게임기 속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라인업을 만든 양키스이지만, 성적은 9년연속 지구우승이라는 타이틀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양키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은 커녕 최근에는 월드시리즈에 오르지도 못하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꼽을 수 있다. 우선 랜디 존슨이나 마이크 무시나 등이 부진한 모습을 선발투수진이 무너진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작년과 같은 경우처럼 한방부루스로 무장하였지만, 작은 야구를 펼칠 수 있는 선수가 없는 팀타선의 부조화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경제학에는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파레토의 법칙이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가 영국의 부의 분포를 조사한 결과 사회 전체의 부의 80%가 20%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놀랍게도 파레토의 법칙은 단순히 경제현상을 넘어서 자연계나 사회현상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전체 매상의 80%는 20%의 고객에 의해서 올려진다거나 기계 등이 고장을 일으키는 80%는 20%의 부품이 원인이라는 등으로 오용되고 있다.

그리고, 개미와 베짱이라는 우화처럼 오로지 열심히 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일개미들의 세계에도 80 : 20의 법칙인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근면 성실한 노동자의 상징인 일개미의 세계에서도 실제로 열심히 죽을 둥 살 둥 일을 하는 무리는 전체 집단의 80%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20%는 나와 같은 게으름뱅이에 귀차니교의 신도라는 것이다.

또한 죽어라고 일만 하는 80%와 죽어라고 게으름만 피우는 20%를 완전히 분리했을 때에도 신기하게도 80%의 근면성실한 넘들 중에서도 20%는 게으르니즘과 귀차니즘의 신도로 개종하였고, 또한 20%의 게으르니즘의 신도들 사이에서도 80%가 정신을 차리는 불상사(?)가 나타났다고 한다.

즉 이 파레토의 법칙을 뉴욕 양키스에 적용하면, 양키스의 구단주인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아무리 명품들을 수집해도, 그 명품들 사이에서 - 20%가 폐품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양키스는 막강한 자금력과 함께 핀스트라이프로 상징되는 명예 등을 앞세워서 매년 FA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큰 손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에이스로 또한 스탠포드대학의 경제학부출신으로 깨끗한 엘리트이미지로 인기가 높은 마이크 무시나를 6년간 8,850만달러로 잡은 이후로 2002년에는 어슬레틱스의 중심인 제이슨 지암비, 2003년에는 일본산 고지라 마츠이 히데키와 쿠바를 탈출한 보트피플 호세 콘트라레스 등 양키스의 명품수집은 전세계로 확대되어만 갔다.

최고 몸값을 자랑하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라이벌인 레드삭스와의 치열한 쟁탈전 끝에 손에 넣기도 하였고, 게리 세필드, 랜디 존슨, 케빈 브라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슈퍼스타들을 양키스타디움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기대대로 활약을 펼친 선수들도 적지는 않았지만, 약물파동 등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제이슨 지암비와 우승청부업자에서 만년부상자로 전락한 케빈 브라운 등등 높은 몸값에 비해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남기지 못한 선수들 역시 많았다.

제이슨 지암비의 어슬레틱스에서의 성적
OAKGBARABH2B3BHRRBISOBBOBPSLGOPS
199554.2562717645706253128.364.398.762
1996140.2918453615640120799551.355.481.836
1997142.2936651915241220818955.362.495.857
1998153.295925621662802711010281.384.489.873
1999158.31511557518136133123106105.422.553.975
2000152.3331085101702914313796137.476.6471.123
2001154.3421095201784723812083129.477.6601.137

1992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어슬레틱스에 지명된 제이슨 지암비는 원래 포지션은 3루수였다. 하지만, 팀의 사정으로 메이저리그에 승격된 1995년부터 1루수로도 기용되었고, 1루에 이어서 외야수로도 출전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팀의 주전 1루수로 기용된 지암비는 1999년부터 3년연속으로 3할 이상의 타율과 100타점, 100득점,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였다.


뉴욕에 간 제이슨 지암비를 맞이한 것은 파레토의 저주였다

레지 잭슨 - 호세 칸세코 - 마크 맥과이어 등에 이어서 어슬레틱스를 대표하는 강타자로서, 또한 팀의 리더인 제이슨 지암비는 2001년을 끝으로 FA가 되었다. 그리고 자유신분이 된 지암비가 선택한 팀은 2000년과 2001년 2년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서 어슬레틱스를 격침시켰던 뉴욕 양키스였다. 잔류를 기대했던 어슬레틱스의 팬들로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양키스의 팬들에게는 제이슨 지암비의 합류로 또 한번의 황금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제이슨 지암비의 양키스에서의 성적
NYYGBARABH2B3BHRRBISOBBOBPSLGOPS
2002155.31412056017634141122112109.435.5981.033
2003156.2509753513425041107140129.412.527.939
200480.20833264559012406247.342.379.721
2005139.271744171131403287109108.440.535.975

이적 첫해인 2002년엔도 제이슨 지암비는 타율 0.314, 41홈런, 122타점, 120득점 등을 기록하면서 구단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2003년에는 41홈런을 기록했지만, 타율에서는 0.250에 그치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04년에는 약물스캔들과 부상 등으로 메이저리그 데뷔이래로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게리 세필더 등이 합류한 해가 2004년이기에 제이슨 지암비도 파레토의 법칙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2005년에는 재기의 기틀을 마련한 제이슨 지암비이기에, 그의 재기는 또 다른 누군가가 파레토의 저주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프 위버의 타이거스에서의 성적
DET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19993029912005.55164.62711456.278.4781.42
200031301115204.32200.02613652.267.4321.29
200133331316504.08229.31915268.266.4091.32
2002171768333.18122.647533.243.3471.19

1998년 드래프트에서 타이거스가 1라운드에 지명한 제프 위버는 한때 타이거스의 에이스로서 활약을 펼치기도 하였다. 워낙 당시의 타이거스가 약체라서 그렇지 좀 강한 팀이었다면, 좀 더 많은 승수를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소꼬리가 되느니 닭대가리가 되어서 매년 향상된 수치를 기록하고 있던 제프 위버의 야구인생이 꼬인 것은 2002년 7월에 있었던 삼각 트레이드 때문이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뉴욕 양키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간에 이루어진 삼각 빅딜로 제프 위버는 뉴욕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이 삼각 빅딜로 현재까지 이적한 팀에 남아 있는 선수는 어슬레틱스에서 타이거스로 이적한 제레미 본더맨밖에 없다.

제프 위버의 양키스에서의 성적
NYY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215853004.0478.0125715.260.4371.23
2003322479005.99159.3169347.320.4811.62


                                              울고싶어라
                                              울고싶어라 이마음

                                              사랑은 가고
                                              친구도 가고 모두다

                                              왜 가야만 하니
                                              왜 가야만 하니 왜가니

                                              수많은 시절
                                              아름다운 시절 잊었니

                                              떠나보면 알거야
                                              아마 알거야

왜 우스개소리로 방송국에서 자기도 어릴 때 이쁘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자랑처럼 생뚱맞은 것이 없다는 말처럼 타이거스에서 에이스였던 제프 위버도 마찬가지였다. 호화멤버 속에서 제프 위버는 더 이상 에이스도 1선발도 아니었다. 그래도 촉망받던 젊은 영건 중의 한명이었던 제프 위버는 양키스에서는 배팅볼 투수로 전락하였고, 그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기만 했다.

양키스의 감독인 조 토레도 약체인 타이거스에서 1선발로서 유망한 에이스였던 투수를 데리고 왔지만, 제대로 활약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아직 젊은 투수였기에 불팬투수로 강등시킬 수도 없었던 조 토레의 스트레스도 제프 위버 못지 않았을 것이다. 파레토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던 제프 위버는 마침내 케빈 브라운과 트레이드되어서 나성으로 향했다.

제프 위버의 다저스에서의 성적
LAD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434341313004.01220.01915367.260.3991.30
200534341411324.22224.03515743.256.4351.17

나성에 간 제프 위버는 파레토의 저주로부터 회복세를 보였고, 2006년에는 FA로 역시 같은 지역의 엔젤스로 이적을 하였다. 과연 엔젤스에서 제프 위버는 형제는 용감했다를 찍을 수 있을 것인지 ... 어쨋든 위버로서는 지긋지긋한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케빈 브라운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을 것이다.

케빈 브라운의 2003년 이후의 성적
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33232149002.39211.01118556.236.3181.14
20042222106004.09132.0148335.262.4171.27
2005131347006.5073.355019.341.4551.72
2003년은 다저스, 2004년과 2005년은 양키스에서의 성적임.

198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한 케빈 브라운은 1992년 21승을 거두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FA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이어서 신생팀 플로리다 말린스로 이적한 1996년에는 방어율 1.89로 리그 방어율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1997년에는 창단 5년차인 말린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에이스로 제 역할을 다했지만, 우승 이후 빅세일에 들어가면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파드레스로 이적한 1998년에도 18승 7패 방어율 2.38 등을 기록하면서,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지만, 양키스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2년연속 우승반지를 손에 넣는데에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팀을 2년연속 월드시리즈로 이끈 케빈 브라운은 우승청부업자로 LA 다저스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7년간 1억 5백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1999년과 2000년에는 제 몫을 하였지만, 그 이후로는 부상에 신음하면서 다저스의 몰락을 부채질할 뿐이었다.

2003년 건강하게 돌아온 브라운은 14승 9패 방어율 2.39 등을 기록하면서 예전의 포스를 회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구단주가 바뀌는 와중에 새롭게 GM이 된 데포데스타는 고비용의 브라운을 양키스로 트레이드시켰다. 이미 핀스트라이프를 입고 있는 마이크 무시나와 하비에르 바스케스, 존 리버, 호세 콘트레라스 등에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싱커볼러인 케빈 브라운까지 가세한 양키스의 마운드는 난공불락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마운드 아래에 수맥이 흐르는 것 같아 ㅡㅡ;;

막강한 타선의 지원 속에 다시 한번 빛나는 싱커볼이 기대되었지만, 시즌에서는 그럭저럭 두자리 수의 승리인 10승을 거두었지만, 보스톤 레드삭스와의 챔피언십 3차전과 7차전에서 완전히 무너지면서 예전에 보였던 포스트시즌에서의 케빈 브라운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랜디 존슨까지 가세한 2005년에도 케빈 브라운은 끝없이 추락하면서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케빈 브라운을 영입하기 위해서 양키스는 다저스에게 제프 위버에 엔시 브라조반, 브랜던 위덴과 현금 260만달러를 주었고, 또한 브라운의 2년간 연봉인 3,100만달러(31,428,572) 이상을 투자한 보람이 없었다.

호세 콘트라레스의 양키스에서의 성적
NYY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318972003.3071.047230.202.3001.16
2004181885005.6596.6228242.250.4621.41

2003년 2월 양키스는 레드삭스와의 치열한 영입경쟁 끝에 쿠바를 탈출한 보트피플 호세 콘트라레스와 4년간 3,200만달러에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호세 콘트라레스는 다년간 아마 최강인 쿠바의 에이스로서 불같은 강속구를 자랑하는 넘버원 피쳐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어느 팀에 가더라도 1선발을 포스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콘트라레스마저 잡은 양키스의 마운드는 물샐 틈이 없는 철웅성처럼 느껴졌다.


앗싸 .. 고생끝 행복시작 .. !!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호세 콘트라레스는 전혀 제 몫을 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등 따시고 배불러진 호세 콘트라레스의 근성이 부족하다는 말도 있었다. 염병할 근성이니 정신력이니 뭐니 하는 것은 전혀 사실과는 관계가 없다. 호세 콘트라레스가 부진했던 것은 자신의 패스트볼에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양키스는 호세 콘트라레스가 적응할 시간을 기다려 줄 팀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콘트라레스는 스스로 트레이드거부권을 포기하였고, 2004년 시즌 도중에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호세 콘트라레스의 화이트삭스에서의 성적
CHW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4131354005.3075.696842.256.3531.54
20053232157103.61205.62315475.232.3081.23

                기옌 : 이 얼굴이 71년생이라고 ... 너 솔직해 말해봐 ... 나보다 더 나이 많지 .. ?
                콘트라레스 : 아 띠 .. 곧 보톡스 맞을꺼라고용 ... !!!


호세 콘트라레스는 화이트삭스로 이적한 후에 마침내 2005년에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그리고 화이트삭스는 콘트라레스, 벌리, 갈랜드, 가르시아 등의 선발진을 앞세워서 88년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파레토의 저주에서 벗어난 호세 콘트라레스는 시카고에서 조 잭슨의 저주를 무너트린 것이다.

에스테반 로아이자의 화이트삭스에서의 성적
CHW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33434219102.90226.31720756.233.3501.11
2004212195214.86141.6238345.283.4711.43

1995년 피츠버그 파이러츠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로 텍사스 레인저스,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떠돌면서 10년 동안 11승을 2번 기록한 것이 캐리어 하이인 에스테반 로아이자가 화이트삭스의 유니폼을 입은 2003년에는 21승 9패, 방어율 2.90 등을 기록하면서 리그 정상급 투수로 급성장하였다. 화이트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50만달러를 받았던 로아이자는 2003년에는 무려 8배나 상승한 4백만달러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에스테반 로아이자의 양키스와 내셔널스에서의 성적
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410612008.50183.093426.337.5522.06
200534341210003.77217.01817355.270.3891.30
2004년은 양키스에서의 성적이고, 2005년은 내셔널스에서의 성적임.


웃어도 웃는게 아냐 ... ... 살아도 사는게 아냐 ... ...

컷 패스트볼을 앞세운 에스테반 로아이자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화이트삭스이지만, 기대와는 달리 예전의 평범 모드로 전락한 그를 후반기에 처분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침내 로아이자는 마운드가 무너진 양키스로 논웨이버 트레이드되었다. 로아이자의 댓가는 돈먹는 하마로 전락한 호세 콘트라레스와 현금보조였다.

양키스는 로아이자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콧수염을 자른 로아이자는 로아이자가 아니었다. 선발로테이션에서 추락한 로아이자는 불펜투수로 나서기도 하는 등 대부진에 빠졌고, 시즌이 끝난 후 양키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아이자에게 이별을 통보하였다. 그래도 2003년에 21승을 거둔 에스테반 로아이자이기에 그는 워싱턴으로 이주한 내셔널스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파레토의 저주로부터 벗어난 로아이자는 내셔널스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올리면서, 2006년에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3년간 2,100만달러에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존 리버의 최근 5년간 성적
NYY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13434206513.80232.32514841.255.4011.15
2002212168303.70141.0158712.277.4121.17
20042727148004.33177.62010218.301.4421.33
200535351713104.21218.33314941.263.4381.21
2002년까지는 시카고 컵스, 2004년은 양키스, 2005년은 필리스에서의 성적임.

1991년의 드래프트에서 컵스에게 지명되었지만, 대학행을 선택했던 존 리버는 1992년 캔자스시티 로얄스에 2라운드에 지명되면서 프로에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로얄스에서의 존 리버의 생활은 매우 짧았다. 1993년 피츠버그 파이러츠로 트레이드된 존 리버는 1994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 개막선발투수로도 등판하기도 하였지만, 부상 등으로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그런 리버가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을 팬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FA로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후부터였다.

컵스로 이적한 1999년부터 2년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하던 존 리버는 2001년 20승을 올리면서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01년의 무리한 등판의 후유증으로 2002년에는 6승에 머물렀고, 시즌 후반기에는 팔꿈치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FA가 된 존 리버이지만, 부상에 시달리고 또한 한해를 재활로 보낼 수밖에 없는 그가 갈 곳은 없었다. 하지만, 양키스는 존 리버에게 2년간 350만달러를 안겨주면서 미래를 위한 포석을 깔아두었다.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얼굴이 ... ㅡ_ㅡ;;

1년간의 재활 후에 돌아온 존 리버는 2004년 양키스의 선발 한축으로서 활동하면서 14승을 거두면서 재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레드삭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2차전과 4차전에서 호투를 펼치는 등 존 리버의 양키스 잔류는 확실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양키스는 오프시즌 동안 FA인 칼 파바노와 자렛 라이트를 영입하였고, 존 리버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하였다. 필리스에서 존 리버는 전반기 한 때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는 등 17승을 거두면서 부상에 빠진 칼 파바노와 자렛 라이트와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하비에르 바스케스의 최근 5년간 성적
NYY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132321611533.42223.62420844.235.3741.08
200234341013203.91230.32817949.271.4431.27
200334341312413.24230.62824157.229.3801.11
200432321410004.91198.03315060.255.4411.29
200533331115314.42215.63519246.266.4561.25
2003년까지는 몬트리올 엑스포스, 2004년은 양키스, 2005년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의 성적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에이스로 4년연속 두자리수의 승리를 챙기고 있던 하비에르 바스케스는 2003년 12월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엑스포스에서는 3년연속 2자리수 패배도 기록하고 있던 바스케스였지만, 엑스포스에 비해서 월등한 화력을 지원받을 수 있는 양키스이기에 그가 몇 승이나 거둘지 관심을 모았다. 당시 하비에르 바스케스의 댓가로 엑스포스로 이적한 선수는 만년 유망주였던 닉 존슨과 후안 리베라, 랜디 초트였다.

                                    바스케스 : 전 얼마나 양키스에 있을까요?
                                    스토틀마이어 : 존 리버처럼 인상만 안써면 돼 ...

핀스트라이프를 입은 바스케스는 양키스와 4년간 4,500만달러에 장기계약을 맺는 보너스까지 챙겼지만, 시즌에서는 기대와는 달리 부진을 보이면서 14승에 머물렀다. 매년 막대한 돈자랑을 펼치면서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들을 싹쓸이하였지만, 월드시리즈에서의 우승은 점점 멀어져만 가던 양키스는 하비에르 바스케스에게 더 이상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양키스는 빅유닛 랜디 존슨을 영입하기 위해서 하비에르 바스케스와 브래드 할시, 디오너 나바로에 현금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게 지불하였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한 하비에르 바스케스는 동부지구로의 이적을 요구하였지만, 의외로 다이아몬드백스가 리빌딩이 아닌 올인정책을 펼치면서 다이아몬드백스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다. 2005년에도 11승으로 부진했던 하비에르 바스케스는 다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칼 파바노의 최근 3년간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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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33321213204.30201.01913349.265.4161.26
20043131188223.00222.31613949.253.3771.17
2005171746114.77100.0175618.315.5131.47

1994년 보스톤 레드삭스에 13라운드에 지명되면서 프로에 발을 디딘 칼 파바노는 1997년 11월 토니 아마스 Jr.와 함께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트레이드로 엑스포스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장을 보이지 못하던 칼 파바노는 2002년 시즌 도중에 다시 트레이드되어서 플로리다 말린스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말린스에서 파바노는 2003년과 2004년 2년연속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면서 2년연속으로 두자리수 이상의 승리를 거두었다.


너 왜 그래 ... 투구시에 인상써고 난리야 .. 존 리버가 왜 쫓겨났는지 몰라서 그런거야 .. !!

2004년을 끝으로 FA로 풀린 칼 파바노는 보스톤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 등의 러블콜을 받았고, 마침내 4년간 3,955만달러에 뉴욕 양키스의 일원이 되었다. 이닝이터로 기대를 모았지만, 칼 파바노도 부상으로 17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하면서 단 4승에 그쳤다. 그리고, 올시즌에도 부상자리스트에 여전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파바노이기에, 그가 핀스트라이프를 입을 시간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렛 라이트의 최근 3년간 성적
NYYGGSWLCGSHOEARIPHRSOBBAVGSLGWHIP
200350025007.3556.395031.332.5371.90
20043232158003.28186.31115970.242.3371.28
2005131355006.0864.683432.313.4751.78

한 때 클리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