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장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리글리 필드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카고 컵스가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것은 모데카이 브라운 등이 활약한 1908년이었다. 결국, 이번 2008년 시즌으로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도전기는 정확하게 100년이 된다. 레드삭스나 화이트삭스 등이 오랫동안 월드시리즈 챔피언과 거리가 멀었던 이유를 밤비노나 조 잭슨 등의 '저주'에서 찾았던 것처럼 컵스와 관련해서는 '염소의 저주'가 있다.
1945년에 카디널스와 치열한 수위 경쟁을 펼치던 컵스는 양키스에서 행크 보로위를 영입한 것이 적중하면서, 양대리그가 발족한 이후로 10번째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월드시리즈에서는 타이거스와 7차전까지 혈전 끝에 아쉽게도 고배를 마셨는데,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4차전에 염소와 함께 들어가려는 한 야구팬을 구장 직원들이 거부하였다. 이에 한껏 열이 받은 그 팬은 "두번 다시 리글리필드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할 것이다"고 악담을 퍼부은 것이 바로 '염소의 저주'의 시작이었다.
이 '염소의 저주'가 정말로 강력한 효력을 발생한 것인지 - 사실은 전력 자체가 약한 것이 원인이었지만 - 컵스가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은 39년 후인 1984년이었고, 1989년과 1998년, 2003년, 2007년에도 가을 잔치에 참가했지만,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데는 실패하였다. 100년이 되는 2008년을 대비해서 컵스는 후쿠도메 코스케 등을 영입하는 등 전력 보강에 힘쓰고 있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지상 최대의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Heaventh inning Stretch
어쨌든 컵스가 배출한 슈퍼스타로는 '세 손가락의 마술사'인 모데카이 브라운이나 마이클 조던 이전에 시카고를 상징하던 어니 뱅크스, 1980년대를 대표하는 2루수인 라인 샌드버그, 도미니카의 홈런왕인 새미 소사 등이 있지만, 진정한 컵스 - 컵스를 넘어서 시카고를 상징하는 것은 리글리필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리글리필드와 함께 시카고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인물이 해리 캐리이다.
해리 캐리는 '세븐 이닝 스트레치'로 야구팬뿐만이 아니라 여성이나 가족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이는 등 반세기 이상이나 메이저리그의 브로드 캐스터를 담당하였다. 야구의 저변 확대에 공헌한 점 등이 인정을 받아서, 1989년에는 포드 C. 프릭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또한, 그의 아들과 손자도 메이저리그의 브로드 캐스터가 되면서, 메이저리그의 브로드 캐스터를 3대가 하는 의미깊은 역사를 만들기도 하였다.
고교를 졸업한 후에 세일즈맨으로 직업 전선에 뛰어든 그가 처음으로 방송과 관련을 맺은 것은 1930년대 후반에 일리노이주 졸리엣에 있는 WCLS에서 스포츠와 이벤트 아나운서로 일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1944년에는 세인트루이스의 라디오 방송국인 KXOX에서 아나운서가 되었고, 그 해 가을에는 역시 세인트루이스의 라디오 방송국인 WIL에서 스포츠 아나운서로 데뷔하면서, 53년간에 이르는 메이저리그의 브로드 캐스터로서의 인생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45년부터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라디오 중계를 담당하면서, 1969년까지 25년간에 걸쳐서 카디널스와 희로애락을 함께 하였다.
중계 부스를 직격한 파울볼로 인해 그의 기록북이 그라운드에 뿌려졌을 때에는 심판이 볼 데드를 선언하면서, 그가 그 종이들을 회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1964년에 카디널스가 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에는 "The Cardinals win the pennant!!!"라고 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방송 부스에 뛰어나오기도 하였다. 아마도 해리 캐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더운 여름날에는 팬티 차림으로 스탠드에서 일광욕을 즐기면서, 야구장을 찾은 팬들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일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방송 부스나 스탠드 등에서 배출한 것이 그의 매력이었다. 1968년 11월에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무려 25만통 이상의 쾌유를 비는 편지가 쇄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단순히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아닌 카디널스의 일부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카디널스는 1969년을 끝으로 해리 캐리와 연장 계약을 맺는 것을 거부하였다. 사반세기 동안 자신의 열정을 쏟았던 팀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은 그는 1970년에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브로드 캐스터를 담당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닉네임인 'Holy Cow'를 팀의 마스코트인 'Holy Mule'로 바꾸려고 한 어슬레틱스의 오너인 찰스 핀리와 부딛치는 등 그에게는 최악의 1년이었다. 그리고, 1971년에는 마침내 해리 캐리는 화이트삭스의 브로드 캐스터로 바람의 도시에 입성하였다.
그의 전매특허와 같은 'Seventh-ining Stretch'도 1976년에 화이트삭스의 오너로서 흥행의 귀재인 빌 빅이 몰래 방송 부스에 마이크를 설치해서, 그가 오르간 연주에 맞춰서 큰 소리로 'Take me out to the ballgame'을 부르는 것을 관중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코미스키 파크를 찾은 관중들이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를 바라면서, 매경기마다 7이닝이 종료한 후에 그의 주도 속에 관중들이 합창하는 'Seventh-ining Stretch'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화이트삭스에서 뼈를 묻을 것만 같았던 해리 캐리에게 또 한 번 변화가 온 것은 시카고 불스의 오너로서 부동산 재벌인 제리 라인스도프가 화이트삭스를 매입한 1981년이었다. 제리 라인스도프 등이 화이트삭스의 TV 방영을 유료로 전환하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이전에 쓴 케이블 TV 시대를 맞이한 MLB의 명암에서도 말했지만, TV 중계의 유료화는 당장에는 구단에게 수익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야구의 저변을 축소시키는 제 살을 깔아먹는 행위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야구'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던 해리 캐리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 결국, 해리 캐리는 1982년부터는 코미스키파크가 아닌 리글리필드로 출퇴근지를 바꾸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코미스키파크가 1990년을 끝으로 철거된 것을 보면서, 일찍이 화이트삭스를 탈출할 수 있었던 것에 슬프게도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리글리필드에서의 그의 인기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주도하에 리글리필드에서도 'Seventh-ining Stretch'은 변함없이 행해졌다. 1987년 2월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그는 시즌이 개막한지 한달 이상이 지난 후에야 다시 현장에 복귀하였는데, 당시의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으로부터 축하의 전화를 받기도 하였다. 사실 로널드 레이건도 예전에 시카고 컵스의 브로드 캐스터를 한 적이 있었다. 또한, 그와 관련된 가장 뜨거운 스캔들(?)은 1994년에 컵스의 광적인 팬인 힐러리 클린튼의 뺨에 열정적인 키스를 한 사건일 것이다. 후에 그의 마지막을 전해 들은 힐러리 클린튼은 "천국에서도 7이닝 스트레치를 주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은 애도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인 스킵 캐리가 1976년부터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브로드 캐스터가 되었고, 1991년에는 손자인 칩 캐리가 시애틀 매리너스의 브로드 캐스터로 데뷔하였다. 게다가, 1997년 말에는 칩 캐리가 시카고 컵스에 채용되면서, 1998년부터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방송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메이저리그가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만남을 - 게다가, 이게 돈이 된다 -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손자와의 방송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에게 1998년 2월 14일에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발렌타인 데이의 파티에 참석한 그가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 것이다.
이미 1987년과 1994년에 뇌졸증과 부정맥 등으로 쓰러진 후에 오뚝기처럼 일어선 전례가 있었기에, 팬들은 그의 쾌차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3지만, 2월 18일에 그가 더 이상 리글리필드에 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힐러리 클린튼의 말처럼 그는 아마도 천국에서도 '7이닝 스트레치'를 주도하면서, "Take me out to the ballgame"을 큰소리로 부르고 있을 것이다. 시카고 컵스가 '염소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원하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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