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이론가로 돌아온 손혁, '40대 강속구투수의 꿈'
배지헌의 Rubber게임 2011/02/08 12:34 손혁은 "책을 낸 뒤 학부모들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책을 쓸 때는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도 많았는데, 그런 격려가 많은 힘이 됐다"고 말한다. 그의 꿈은 아들이 먼 훗날 메이저리그 마운
드에 서는 투수가 되는 것. "야구 말고 골프를 한다고 하면 어떡하냐"고 묻자, "본인의 선택에 맡길 것"
이라고 답했다. "야구, 골프 둘 다 하면 더 좋구요, 하하하." (사진=배지헌)
지난 2008년 초, 야구계 최고의 화제는 단연 박찬호의 부활이었다. 그 전해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방출과 마이너리그행의 수모를 겪었던 박찬호는, LA 다저스로 팀을 옮긴 뒤 극적으로 부활했다. 그는 불과 일 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죽었던 볼 스피드가 살아나고, 불안하던 컨트롤도 안정된 모습이었다. LA 마운드에서 박찬호는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에 여러 매체와 전문가들이 원인 분석에 나섰다. 친정 LA로의 복귀가 주는 심리적 안정, 불펜으로의 보직 변경, 새로운 주무기의 장착...... 온갖 분석이 난무했지만 ‘종결자’는 따로 있었다. 그해 5월 오랜만에 귀국해서 잠실야구장을 찾은 전 LG투수 손혁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찬호의 부활 이유로 딱 두 가지를 지목했다. 투수판을 밟는 위치의 변화, 글러브를 가슴쪽으로 당기는 동작의 수정.
손혁의 설명은 논리적이었고, 과학적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이전까지 야구계를 지배한 통념과 크게 달랐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그는 미국의 피칭이론가 톰 하우스(Tom House)가 설립한 내셔널피칭협회(NPA)에서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바이오메카닉은 기존의 경험에 의존하는 지도방식과 달리 인체공학과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피칭 메커니즘을 찾기 위한 피칭이론. 박찬호의 부활도 그해 초에 NPA에서 투구폼 수정을 거친 결과로 가능했다. 많은 이가 손혁이 배우는 피칭이론과 그가 쓰고 있다던 책의 내용을 궁금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작년 12월. 마침내 손혁은 자신의 이름을 건 첫 피칭이론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투수교과서]를 들고 돌아왔다. 꼬박 4년이 걸려 완성한 이 책에서 손혁은 미국에서 배운 바이오메카닉 이론에 자신의 현역 시절 경험과 지도하면서 익힌 노하우를 접목하며, 이론과 경험의 이상적인 조화를 꾀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풍부한 시각 자료와 쉽고 친절한 설명으로 성인은 물론 유소년 선수들까지 배려한 점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손혁은 “이 책을 시작으로 국내에도 다양한 이론과 전문서적이 나와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후배들이 부상 없이 오래도록 선수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출간 의도를 밝혔다.
<야구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투수에서 피칭이론가 겸 사업가로 돌아온 손혁을 만나, 새로 출간한 책과 그가 생각하는 피칭이론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소 인터뷰 분량이 길더라도 끝까지 읽어두면, 야구와 투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리라고 장담한다.
인터뷰 진행 - 배지헌, 윤성현
인터뷰 정리 - 배지헌
‘작가님’으로 데뷔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
책 출간 이후 언론사 인터뷰와 사인회 등을 하며 보냈다. 또 전국의 리틀과 초등학교 야구팀을 다니면서 교습도 하고, 바쁘게 지냈다. (웃음)
사실 책을 내려고 준비한다는 얘기는 몇 년 전부터 들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결과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국내에서 프로 선수 출신으로 바이오메카닉에 대한 책을 낸 것은 당신이 처음이다. 책을 낼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음, 그 얘길 하자면 꽤 긴데.
상관없다.
두산에서 뛴 2004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가서 1년 동안은 어학원도 다니고, 아내(한희원)의 골프 시합에도 따라다니면서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아내의 골프 선생이 나한테 “우리 아들이 야구 선수인데, 폼이 괜찮은지 한 번만 봐달라”고 하더라. 아마 내가 야구선수 출신이란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던지는 모습을 봤더니......
어땠나.
투구폼이 너무나 ‘예뻤다’. 정말 잘 배운 투구폼이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배웠냐고 물었더니, 톰 하우스한테 배웠다고 하더라.
그 유명한 톰 하우스 말인가. 피칭 메카닉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톰 하우스는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주: 빅리그 투수 출신인 톰 하우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오메카닉 이론가로 전설적 투수 놀란 라이언을 텍사스 시절 지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칭연구소인 NPA의 설립자인 그는 현재 미 남가주대학의 투수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맞다. 나도 톰의 이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선수 시절에도 그 사람이 쓴 책을 몇 권 본 적이 있으니까. 알고 보니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더라고. 다음날 당장 찾아가서는 톰한테 ‘재활에 대해 배우고 싶다. 아는 곳이 있으면 소개라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톰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뭐라고?
자기는 왜 동양권 사람들이 재활부터 배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재활은 미리부터 다칠 것을 염두에 두는 거라고, 재활 이전에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게 낫지 않느냐는 거다. 올바른 운동과 좋은 폼을 배우게 되면 부상을 늦출 수도 있고 어쩌면 야구하는 동안 부상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아프고 난 다음을 생각하냐는 게 톰의 얘기였다.
백번 옳은 얘기다.
나도 그 말에 완전히 혹했다. (웃음) 그래서 바로 톰 하우스의 피칭 스쿨에 등록해서 선수들 하는 것과 똑같이 교습을 받았다. 말로만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운동도 해보고 배운대로 던져보면 이해도 빠르고 다른 사람 가르칠 때도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그렇게 몇 달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어느 날 톰이 나한테 와서는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을 했다.
이번엔 또 무슨 얘기였나.
“써니, 혹시 너 야구 다시 하고 싶은 생각 없어?”라고 묻더라. 물론 야구야 당연히 하고 싶지. 그만둔지 몇 달이 됐는데도 계속 아쉽고 생각나고 했으니까. 하지만 부상으로 그만둔 내 입장에선 ‘그게 가능한 소린가’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톰의 다음 말이 더 충격이었다.
뭐라고 하던가.
“써니가 지금 던지는 걸 봐선, 한 7~8개월 정도만 운동하면 92마일(148km/h)은 충분히 던질 수 있겠는데”라고 했다.
......거짓말.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국내에서 뛸 때 최고구속이 143, 4km/h였는데, 게다가 만난지도 얼마 안 된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믿길 리가 없지 않나. 하도 내가 의심스러워하는 눈치니까, 톰이 그러더라. “어차피 너는 계속 배우는 입장이니까, 정 선수를 다시 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마음가짐 갖고 하면 더 좋지 않겠냐.” 그래서 그 말대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고 몇 달을 열심히 운동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나.
기적이라도 일어났나.
그랬다. 정말로 훈련을 하면 할수록 구속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나중엔 정말 92마일이 찍혔다. 최고구속이 아니라 평균구속이 92마일이 나왔다. 현역 때 144km/h는 평균이 아니라 최고구속이었는데, 그 이상을 꾸준히 던질 수 있게 된 거다. 그때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투수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거니까. 얼마 지나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와서 내 투구를 보기 시작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스카우트는 나한테 ‘한국팀과의 계약은 어떻게 된 상태냐’고 물었다.
당시 당신은 두산 임의탈퇴 선수 신분이었다.
그래서 두산에 전화했지. 다행히 미국에서 뛰는 거라 임의탈퇴를 푸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 담에는 반대하는 아내와 가족들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내가 수술하고 오랫동안 고생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반대가 심하더라.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야구를 다시 해야지 안하면 도저히 안 되겠는걸.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기회인데. 간신히 설득해서 마이너리그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거기서는 평가가 어땠나.
괜찮았다. 대부분 공만 빠르고 제구력은 엉망인 투수들이 많은데, 나는 원래 제구에는 자신있는 편이었으니까. 스카우트도 당장은 모르겠지만 올스타전 끝난 뒤에는 메이저 진입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할 정도였다. 사실 볼티모어가 그다지 투수력이 좋은 팀이 아닌 것도 있고. 그래서 기대를 품고 연습시합 나가서 열심히 던졌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세 번째 연습시합에서 던지고 난 뒤였다. 갑자기 목과 어깨가 아프고, 쇄골 있는 쪽이 붓기 시작했다. 그래 어깨 이상인줄 알고 병원에 가서 MRI를 촬영했다.
또 어깨 문제였나.
어깨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 말로는 쇄골 뼈가 서로 부딪힌다고 했다. LG 입단 첫해 몸이 덜 만들어진 상태에서 던지다가 쇄골이 좀 내려오는 증세가 있었는데, 그게 심해져서 공을 던질 때마다 쇄골 뼈끼리 부딪히게 된 거다. 마치 뼈가 부서지는 것 같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그런 증상이 있단 얘기는 처음 듣는다.
의사도 처음 봤다고 하더라. 고치려면 수술을 해서 쇄골을 깎아내고 위로 들어 올려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야구를 계속해야 할지, 굉장히 애매하더라. 가족을 다시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모든 고민이 깨끗이 정리됐다.
뭐라 하던가.
당시 아내가 첫 애를 임신한 상태였다.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아들이라더라. 그 순간 생각했다. ‘아, 내 야구는 여기까지구나.’ 나보다는 내 아들과 다른 아이들이 대신해서 던지라는 뜻이구나. 국내에서 은퇴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아쉬웠지만, 어쩌겠나. 결국 구단에 찾아가 그만두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게 필요한 수술을 받고 재활까지 마친 뒤, 다시 톰 하우스에게 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코칭을 시작한 건가.
그렇다. 샌디에이고에서 박사학위 받는 친구들 대상으로 야구도 가르치고, 가끔은 같이 시합도 하면서 보냈다. 근데 한번은 학생 중에 하나가 ‘우리한테 가르쳐주는 투구이론을 따로 정리해뒀냐’고 묻더라. 물론 정리를 했지. 톰에게 배우는 동안 새로 알게 된 사실이나 중요한 부분들을 여기저기 조금씩 적어두곤 했으니까. 다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 얘길 하니 뭐라고 하던가.
그랬더니 ‘기왕 정리하는 거 파워포인트로 정리해서 문서화해두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 근데 내가 그때까지 운동만 했는데 파워포인트가 뭔지 알 리가 있나. (공 던지는 시늉을 하며) 우리한테는 던질 때 이 지점이 ‘파워포인트’지. 결국 그 친구들 도움 받아가며 열심히 배워서 문서로 정리까지 했다. 덕분에 지금은 파워포인트 사용에 달인이 됐다.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