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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 영입, 두산이라 가능했다

배지헌의 Rubber게임 2011/03/08 12:16

           두산 새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는 2층에서 공을 던진다. 반칙이라고 항의해봐야 소용은 없다.
           (사진=두산 베어스)


프로야구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투수의 실력을 미리 알아보고 싶다면, 심판에게 물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일본 오키나와에 차려진 두산 베어스 스프링캠프에서 한 관계자가 그렇게 한 것처럼 말이다. 

일본 프로팀과의 연습게임이 끝난 뒤, 그는 주심에게 다가가 선발투수의 공이 어땠는지 넌지시 질문했다. 심판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연신 위로 치켜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문명사회에서 이 제스처는 대개 ‘아주 좋다’는 의사를 전달할 때 사용된다. 그리고 심판이 이런 평가를 내린 투수가 실패하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이날 두산의 선발은 새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Dustin Nippert)였다. 맞다. 애리조나 유망주 출신으로 한때 BA(베이스볼 아메리카) 랭킹 100위권에 두 차례나 진입했던, 작년 텍사스에서 4승 ERA 4.29를 기록한 뒤 포스트시즌까지 출전했던, 바로 그 니퍼트다. 

“일본 타자들은 설령 2군 소속이라 해도 선구안이 매우 뛰어난 편입니다.” 이날 투구를 지켜본 관계자의 말이다. “그런 타자들이 니퍼트의 공에 헛스윙을 연발하더군요. 장신(2m)에서 내리꽂는 빠른 볼 공략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습니다. 빠른 볼의 구속도 구속이지만, 안정된 컨트롤이 인상적이었어요. 낙차 큰 변화구도 아주 좋았구요.” 

지난 시즌 빅리그에서의 투구를 분석해 봐도 니퍼트는 ‘레알’이다. 빠른 볼 구속이 보통 147에서 150km/h 사이를 기록하는데다, 낮은 쪽으로의 로케이션과 공 끝의 움직임도 뛰어나다. 주무기인 체인지업은 빠른 볼과 10마일 전후의 이상적인 구속 차이를 보이며, 스트라이크존 가까이에서 급작스럽게 변화한다. 무엇보다 릴리스 포인트가 ‘높다’. 타자들이 적응하려면 굉장히 오래 걸릴 만한 유형의 투수다. 한때 일본의 호시노 감독이 니퍼트를 영입 대상자 목록에 올려놓았던 것도 이해할 만하다. 

여기서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생긴다. 니퍼트가 정말로 그렇게 좋은 투수라면, 대체 왜 메이저리그를 떠나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려고 한단 말인가?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서른 살(81년생, 지난해 홈런왕 호세 바티스타보다 한 살 어리다)로 아직 충분히 빅리그에서 성공할 기회가 남아 있지 않은가? 바꿔 말하면 대체 두산은 어떻게 니퍼트를 설득해서 영입에 성공한 것일까. 니퍼트만이 아니라 오달리스 페레즈, 라몬 라미레즈 등의 ‘빅네임’이 계속해서 두산의 레이더에 포착된 데는 어떤 비결이 숨어 있을까. 

단지 두산의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가 지닌 뛰어난 협상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만일 그게 전부라면, 그 담당자는 당장 외교통상부로 보내 FTA 협상을 책임지게 하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담당자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주요한 비결은 그가 입은 점퍼와 그가 내민 명함에 새겨진 ‘로고’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두산 베어스 소속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곤색과 빨간색이 조합된 로고 말이다.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어떤 평판이 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일전에 한 기자가 들려준 얘기다. “선수들끼리 다른 리그나 팀에 대해서 정보를 주고받고 소문이 나거든요. 가령 국내의 모 구단 같은 경우에는 한때 외국인들 사이에는 기피 대상이었어요. 구장 시설이 형편없는데다 선발투수를 5회 이전에 마구 강판시킨다고 소문이 났거든요. 그래서 해당 팀의 스카우트가 외국인 선수 뽑는데 애를 먹기도 했죠.” 

두산 베어스는 이 면에서 가장 유리한 팀이다. 우선 서울 구단으로 외국인 선수가 적응해서 ‘즐겁게’ 생활하기에는 최고의 입지 조건을 갖췄다. 적어도 지방 팀 외국인 선수들처럼 숙소에서 ‘김씨표류기’의 주인공이 되는 고충은 겪지 않아도 된다. 또한 외국인 선수를 가족처럼 대하는 특유의 팀 분위기도 이미 외국인들과 에이전트 사이에는 공인된 사실이다. 이런 소문이 한국을 거쳐 간 외국인 선수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평판’을 이룬다. 그리고 두산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특히 평판이 좋은 팀에 속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거물급 외국인들의 경우 일본 진출도 염두에 두는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두산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에 니퍼트를 잡았잖아요. 외국인 선수와 에이전트들이 알고 있다는 거죠. 한국에서 1년 정도 뛰면서 좋은 활약을 하면 거액을 받고 일본에 스카우트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한국 무대를 교두보로 삼는다고나 할까요.” 이 면에서 매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이자, 막강한 타력과 수비력을 자랑하는 두산만큼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구단도 없다. 

물론 구단이나 팬들 입장에서는 기껏 정을 붙인 선수를 1년 만에 일본에 빼앗기는 것 아쉽고 서운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금전싸움에서 일본 구단을 한국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한일 양국 리그간에 신사협정 같은 것을 맺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한 야구 관계자의 말이다. “일단 있는 동안에 좋은 활약을 하는 게 우선 아니겠어요? 일본에 가거나 말거나는 그 다음 문제죠. 혹시 선수가 의리를 중시해서 한국에 남기로 결정할 수도 있는 부분이구요. 어차피 다년계약을 할 게 아니라면, 1년 있으면서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쪽이 훨씬 낫잖아요.” 

몇몇 구단은 문제를 겪기도 한다. ‘다음 목표’를 염두에 둔 외국인 선수가 종종 개인 성적을 앞세워 팀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 하지만 특유의 끈끈한 팀 케미스트리를 자랑하는 두산은 어떤 외국인 선수가 와도 팀의 일원으로 만들 자신감을 보인다. 윤석환 투수코치는 “두산은 선배들 때부터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온 팀의 전통이 있고, 선수들 간에 결속력이 매우 강하다. 외국인 한 명이 함부로 분위기를 흐릴 수 있는 팀이 아니다. 누가 오든 그 사실을 빨리 깨닫고 팀에 융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지난해 뛴 히메네즈와 왈론드 모두 팀에 헌신적인 선수들로 동료들과 두루 가깝게 지내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상황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니퍼트를 비롯한 특급 외국인 선수의 영입은 분명 두산 야구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자, 한국 야구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남은 과제는, 외국인 선수들이 일본 진출 대신 한국에 남는 쪽을 택하는 리그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Posted by 배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