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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논란, K리그는 '반면교사'다

배지헌의 Rubber게임 2012/02/17 09:15


어제 네이트 스포츠 Pub에 올라온 듀어든의 칼럼('승부조작' 파문, K리그의 대처를 배워라)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존은 “(승부조작과 관련해) K리그가 보여준 대처가 매우 훌륭했다고 평가하고 싶다”면서, “K리그가 사태가 터진 초반부터 매우 심각한 자세로 접근해 재빠르게 처벌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구계와 농구계는 K리그 관계자들을 초청해 자리를 갖고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 K리그가 다른 스포츠계에 알려줄 수 있는 교훈이 많이 있다”고 훈수했다. 

듀어든의 글에서 승부조작을 뿌리뽑기 위해 국제적으로나 여러 스포츠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견해는 매우 새겨들을 만한 것이다. 또 그의 글이 한국 프로스포츠가 더는 승부조작으로 멍들지 않기 바라는 선의에서 쓰여진 것이라는 점도 잘 안다. 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 너무 많다. 사실 나는 저 글을 읽고 듀어든이 말하는 ‘대처’가 영국의 수상을 지낸 마가렛 대처를 말하는 것인지 잠시 헷갈렸다. 존이 하는 얘기와는 정확히 반대로, 나는 K리그야 말로 승부조작에 대해 프로스포츠가 할 수 있는 ‘최악의 대처’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연히 축구와 야구 간에 싸움을 붙이는 일이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승부조작 문제에 K리그가 대처한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달려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주의: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존은 프로야구가 K리그의 대처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대체 무엇을 배우라는 이야기인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선수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면서 일이 일파만파 커질 때까지 미적대는 대응을 배우라는 것인지, 아니면 선수들만 쥐 잡듯이 잡고 그보다 더 큰 몸통인 구단과 연맹은 대충 덮고 지나가려는 자세를 배우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차라리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나을 것 같다. 

K리그의 대처가 훌륭했다는 평가는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국격이 높아졌다는 정부 고위 인사의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정신승리’로 보인다. 얼마 전 축구협회 고위 인사가 한 인터뷰와 어제 최태욱이 트위터에 썼다가 지운 글귀는 승부조작에 대한 축구계의 보편적인 인식수준이 어떤지 잘 드러나지 않는가? 그처럼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 인식과 안이한 대처의 결과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리그 중 하나였던 K리그의 국제적인 위상이 추락했다. 생명을 잃은 사람까지 나왔다,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참으로 훌륭하고 칭찬할 만한 대처였다. 

적어도 듀어든처럼 영향력이 크고 역량이 뛰어난 칼럼니스트라면 ‘K리그가 승부조작에 훌륭하게 대처했다’는 식의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그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잘못된 인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의 한국과 K리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는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잘못까지 무조건 감싸고도는 식의 애정 표현은 나쁜 버릇을 키울 뿐이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K리그에게 배우라’는 존의 주장이 옳은지도 모른다. K리그의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앞으로 프로야구는 혹시라도 ‘승부조작’ 의혹이 조금이라도 사실로 드러날 경우, 결코 쉬쉬하면서 꼬리만 자르고 몸통은 감싸는 식의 미온적인 대처를 해서는 안 된다. 선수 몇 명 잘라내는 수준으로 대충 봉합하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부정의 뿌리를 뽑고 싹을 잘라내야 한다. 의혹이나 음모론이 남을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 가급적이면 수사기관이 손을 대기 전에 야구계 스스로가 먼저 강도 높은 대응으로 자정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언론 역시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태도보다는 사태의 본질과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른 종목이 먼저 매를 맞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배운 점이 있다는 것을, 야구계는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만한 역량을 갖춘 집단임을 증명해야 한다. 물론, 증명해야 할 만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저한 예방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단속하는 것은 수사기관의 몫이므로 여기서 언급할 성격은 아니다. 다만 선수들에게 검은 손길을 뻗친 ‘브로커’에 대해서는, 야구계가 이제는 손을 써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진수성찬이 있는 곳에는 파리떼가 꼬인다. 프로야구 인기가 치솟으면서 야구계에도 각종 이권이나 개인적인 만족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졌다. 방송계-연예계와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선수들이 다양한 유혹에 노출되는 기회가 늘었다. 

이들 중에는 순수한 의도로 선수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프로야구에 분란을 낳고 경기력에 악영향을 주는 ‘트러블 메이커’다. 이들은 선수들에게 용품 등을 미끼로 ‘스폰’을 하고, 여자 연예인을 소개하는 뚜쟁이 노릇을 하면서 환심을 산다. 그리고 야구 선수와의 친분과 자신의 영향력을 주변에 과시하면서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야구계 인맥을 활용해서 사업상의 도움을 얻기도 한다. 이들이 최근 ‘승부조작’ 의혹과 관련해서 언론에 등장하는 ‘지인’이다. 브로커와 선수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평소 많은 도움을 주는 형님이나 누님에게 “첫 타자한테 한번만 볼 던져주면 안 돼?”라는 식의 부탁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면 상황이 머리 속에 그려질 것이다. 

지난해 일부 구단은 의도가 의심스러운 ‘선수 지인’들이 덕아웃까지 드나들며 계속 문제를 일으키자 출입금지 조처를 취한 바 있다. 이제는 모든 구단이 그런 예방조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요주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덕아웃이나 야구장 내부는 물론 아예 선수들과의 교류 자체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승부조작’이나 그 비슷한 일을 하자고 꼬시는 브로커와의 연결을 막을 수 있고, 가외로 사생활 문제 구설수에 오르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아예 이참에 에이전트 제도의 정식 도입도 고려해볼 문제다. 선수에게 용품이나 편의를 제공하는 '지인‘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음성적인 에이전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양성화해서 부작용의 싹을 없애는 편이 낫다. 정식 변호사 자격을 갖춘 이들로 제한해서 에이전트를 도입하면 선수들이 이런저런 손길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사실 공정거래위원회 결정대로라면 에이전트는 한참 전에 도입되었어야 하는 제도다. 연봉 상승을 우려해서 그동안 구단들이 막아 왔을 뿐이다. 그래도 스캔들로 리그가 엉망진창이 되는 것보다는 연봉이 올라가는 편이 낫지 않은가? 

여기에 더해 선수들에게 올바른 윤리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운동선수 중에는 승부조작에 대해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뭐가 문제이고 뭐가 잘못인지를 판단하는 도덕감각이 마비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일반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운동선수들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더구나 프로야구에 제기된 조작 의혹의 경우에는 리그 전체가 관련된 총체적 병폐라기보다는, 불법 도박과 관련을 맺은 일부 선수의 도덕성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달리 보면 ‘그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는 얘기가 된다. 

신인 때 한 자리에 모아놓고 딱 한번만 하는 형식적인 교육은 아무 소용이 없다. 각 구단 차원에서 모든 선수를 상대로 인성교육과 윤리교육을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프로 전 단계인 아마추어 때부터 철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건 승부조작 문제만이 아니라, 선수들이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의 구성원에 걸맞은 언행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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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배지헌